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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1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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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1년이 왔다!
  • 최용성
  • 승인 2020.12.3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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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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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인 1999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달나라를 정복한 인류는 이제 여러 행성으로 자유로이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연에너지원이 개발되어 공해가 사라지고 첨단기술이 발전하여 인류가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상상도 있었다. 암을 비롯한 불치병이 정복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물론 세기말을 앞두었으니 불길한 전망도 적지 않았다. 환경오염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화석연료의 고갈로 <매드 맥스>에서나 볼 법한 황량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대표적이었다.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컴퓨터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밀레니엄 버그(Y2K)로 인하여 사회적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심지어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기들>이라는 책을 가지고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떠들던 사람들도 있었다. 원초적 불안본능을 가진 인간의 특성으로 인하여 이런 식의 어리석은 주장은 계속 반복되는데, 2012년을 앞두고도 고대 마야의 달력을 근거로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교적 종말론도 있으나, 이건 신앙의 영역이니 여기서는 거론하지 말자.

낙관이든 비관이든 모두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세기말이라는 것도, 매해 맞이하는 해(年)라는 것도—절기를 반영하기는 하였지만—인간이 편의상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 1999년과 2021년이 다를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일부 예측대로 첨단기술은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상에 구현되기보다는 사이버 세상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술이라는 것이 한계이다. 스마트 기술로 관리나 금융, 물품 거래, 결제 방법이 달라졌다고 우리의 삶의 조건이 더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우리는 먹고살기 위하여 무리한 노동을 해야 하고,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환경오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첨단기술 운운하는 21세기에 사람들은 주거공간의 층간소음이라는 원시적(?) 문제로 말미암아 이웃 사이에 싸우고 미워하며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첨단의 스마트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 발명품은, 사람들을 성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손바닥 작은 화면만 조건반사적으로 들여다보는 왜소한 존재로 만든 점에서 오히려 인류 최악의 실수일지도 모른다. 우주여행은 세계의 부자들이 투자에 뛰어들면서 희망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안전하고 대중적인 별나라 여행을 21세기 안에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건강과 보건의 영역은 문제가 심각하다. 불치병이 정복되기는커녕 21세기가 5분의 1을 넘어선 시점에 인류가 해가 넘게 역병에 시달리며 현대의료의 한계를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나마 비관론이 제기한 인류 멸망은 면했으니 다행일까? 시기만 틀렸을 뿐이지 불행히도 비관론의 전망이 더 먼저 실현될지도 모른다. 화석연료와 공장형 육식산업으로 인하여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고 이것이 인류뿐만 아니라 대다수 종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이것이 ‘세기의 대예언’ 운운하는 수준의 엉터리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객관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내놓은 과학적 예측이라는 점에서 더 무서운 종말론인 셈이다.

흐름을 이처럼 크게만 보면, 우리 삶은 보잘것없어지고 진리, 선, 아름다움, 정의, 덕, 공정 등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나 제도 개혁도 다 부질없어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처럼 다 통달한 듯한 태도는 내게도, 세상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지구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종말이 온다면 그건 그대로 맞을 일이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에, 삶이 유한하므로 지금 이곳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간다운 삶은 관계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안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나 역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빈곤이나 인권침해의 현장에 뛰어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인간다운 삶이, 지금 이곳에서, 촘촘히 연결된 관계망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내가 얻은 것이 그 망 속에 있는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 아닌가 하는 작은 성찰이라도 하자는 제언이다.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누군가 노력하거나 제도를 개혁하려고 할 때 최소한 응원이라도 하자.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 모든 분에게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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