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PSAT 언어논리 알고리즘 (41) / 인사혁신처 7급 모의평가_기초 유형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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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PSAT 언어논리 알고리즘 (41) / 인사혁신처 7급 모의평가_기초 유형 해설
  • 이유진
  • 승인 2020.12.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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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박문각남부고시학원

안녕하세요, <국어 독해알고리즘>의 저자 이유진입니다. 수능에서 공무원 수험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국어 독해알고리즘>에 이어, <PSAT 언어논리 알고리즘>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출간에 앞서,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가장 효율적이면서 이상적인 언어논리 접근과 훈련’에 대한 저의 고민과 판단을 공유하려 합니다.
제 커뮤니티(http://cafe.daum.net/naraeyoujin)에 시중 출간 전까지 초벌 원고를 공개하고 여러분의 피드백을 받을 생각이니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려요.
 

기존 7급 국어 독해에도 존재하던 기초적 유형의 문항들

1.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3운동 직후 상하이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채택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기초할 때 조소앙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정부 명칭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하자고 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가 담기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한국인들이 만든 민국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민국이란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의미가 담긴 용어다. 조소앙은 3운동이 일어나기 전, 대한제국 황제가 국민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국권을 일제에 넘겼다고 말하면서 국민은 국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밝힌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선언에는 구한국 마지막 날은 신한국 최초의 날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신한국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한국을 의미한다. 조소앙은 대한제국을 대신할 새로운 한국이란 다름 아닌 한국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말했다.

조소앙의 주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독립 운동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독립운동가들은 황제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1941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러한 의지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건국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8년에 소집된 제헌국회도 대한민국임시헌장에 담긴 정신을 계승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제헌국회는 제헌헌법을 만들었는데, 이 헌법에 우리나라의 명칭을 대한민국이라고 한 내용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강령을 통해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공포했다.

조소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동단결선언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되기 전에는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독립운동가가 없었다.

제헌국회는 대한제국의 정치 제도를 계승하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은 민주공화제를 받아들이는 데 합의했다.

1일반 추론 긍정 발문

글에서 참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선지를 고르는 문제입니다.

[정답해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은 민주 공화제를 받아들이는 데 합의했다.

>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채택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으므로 이들이 민주 공화제를 받아들이는 데 합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답해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강령을 통해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공포했다.

> 대한민국임시헌장은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채택된 것이고, 건국강령은 이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1년 발표한 것입니다. 건국강령을 통해 이미 채택된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추후 공포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조소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동단결선언을 만들었다.

> 31운동 전에 조소앙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이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되기 전에는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독립운동가가 없었다.

>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채택한 것은 31운동 직후입니다. “구한국 마지막 날은 신한국 최초의 날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조소앙의 대동단결선언은 3.1운동 전에 발표되었으므로, ‘한국이라는 명칭은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되기 전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헌국회는 대한제국의 정치 제도를 계승하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 제헌국회가 제헌헌법에서 우리나라의 명칭을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은, 대한민국임시헌장에 담긴 정신을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 ‘대한민국은 황제가 지배하는 대한제국과는 달리,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헌국회가 대한제국의 정치 제도를 계승하려 했을 리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군에 포위되어 있을 때, 신하들은 척화론과 주화론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했다.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은 청에 항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끝까지 저항하자고 했다. 그는 중화인 명을 버리고 오랑캐와 화의를 맺는 일은 군신의 의리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달리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은 나아가 싸워 이길 수도 없고 물러나 지킬 수도 없으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는 명을 섬겨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보다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나라가 없어지면 명을 섬기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일단 항복한 후 후일을 기약하자는 것이었다.

주화론과 척화론 사이에서 고심하던 인조는 결국 최명길의 입장을 받아들여 청에 항복하는 길을 선택했다. 청군이 물러난 후에 척화론자들은 국왕이 항복의 수모를 당한 것이 모두 주화론자들 탓이라며 비난했다. 그들은 주화론자들을 배신자라고 공격하는 한편 김상헌을 절개 있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인조 때에는 척화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화론을 내세웠던 사람들이 정계에서 쫓겨 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이 청에 복수하겠다는 북벌론을 내세우고, 예전에 척화론을 주장했던 자들을 중용하면서 최명길의 편에 섰던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효종에 의해 등용되어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던 송시열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을 때 주화론을 주장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정계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송시열 사후에 나타난 노론 세력은 최명길의 주장에 동조했던 사람들의 후손이 요직에 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이는 송시열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써 김상헌의 가문인 안동 김씨들은 정계의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최명길은 중화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화론을 주장했다.

효종은 송시열의 주장에 따라 청군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상헌은 명에 대한 군신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화론에 맞섰다.

인조는 청에 항복한 후 척화론을 받아들여 주화론자들을 정계에서 내쫓았다.

노론 세력은 주화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조를 설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일반 추론 긍정 발문

글에서 참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선지를 고르는 문제입니다.

[정답해설]

김상헌은 명에 대한 군신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화론에 맞섰다.

>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은 중화인 명을 버리고 오랑캐인 청과 화의를 맺는 일은 군신의 의리를 버리는 것이라며 청에 항복하자는 주화론에 맞섰습니다.

[오답해설]

최명길은 중화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화론을 주장했다.

>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도 명을 섬겨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에는 동의하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주화론을 주장한 것은 우선 나라를 보존해 후일을 기약하기 위한 것이지, 중화인 명을 섬기는 세계관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아닙니다.

효종은 송시열의 주장에 따라 청군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 청군에 항복한 것은 인조 때의 일이며 효종은 인조의 뒤를 이은 임금입니다. 효종이 청에 복수하겠다는 북벌론을 내세웠고 그에 의해 송시열이 등용된 것은 알 수 있으나, 청군이 이 시기에 다시 항복 요구를 했는지, 만약 그랬다면 송시열과 효종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조는 청에 항복한 후 척화론을 받아들여 주화론자들을 정계에서 내쫓았다.

> 청에 항복한 후 척화론자들이 주화론자들을 비난하긴 했으나, 그들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화론자들이 정계에서 쫓겨 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노론 세력은 주화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조를 설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 노론 세력은 효종 때 정계에 진출한 송시열의 사후에 나타난 세력입니다. 따라서 인조의 통치 시기에 존재했던 세력이 아닙니다. 또한 노론 세력은 최명길의 주장(주화론)에 동조했던 사람들의 후손이 요직에 오르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였으므로 주화론이 아닌 척화론 측의 입장을 옹호한 사람들입니다.

3. 다음 글의 논지로 가장 적절한 것은?

사람들은 보통 질병이라고 하면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떠올리고, 병에 걸리는 것은 개인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면 그 사람이 평소에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발병 책임을 전적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묻는 생각이다.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사람이나 비만, 허약 체질인 사람이 더 쉽게 병균에 노출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나 발병한 사람들 전체를 고려하면, 성별, 계층, 직업 등의 사회적 요인에 따라 건강 상태나 질병 종류 및 그 심각성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질병의 성격을 파악할 때 질병의 발생이 개인적 요인뿐만 아니라 계층이나 직업 등의 요인과도 관련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질병에 대처할 때도 사회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치료에 대한 부담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편견과 낙인이 더 큰 고통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질병이 나타나는 몸은 개인적 영역이면서 동시에 가족이나 직장과도 연결된 사회적인 것이다. 질병의 치료 역시 개인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고 가족과 사회의 문제로 확대되곤 한다. 나의 질병은 내 삶의 위기이자 가족의 근심거리가 되며 나아가 회사와 지역사회에도 긴장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질병의 치료가 개인적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적 영역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질병의 대처 과정에서 사회적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병균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신체적 이상 증상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 위기를 야기할 수 있기에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다.

한 사람의 몸은 개인적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 영역이기에 발병의 책임을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만 묻는 것은 옳지 않다.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보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므로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

질병의 성격을 파악하고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3주제 찾기

글의 논지를 묻는 것은 주제를 묻는 것입니다.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중심 화제를 찾아야 합니다. 글의 중심 화제는 질병입니다. 중심 화제를 주어로 가지는 글의 주제는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글을 빠르게 읽으며 각 문단의 중심 내용을 요약하여 통합해야 합니다. 이 유형은 선지를 먼저 보면 오답의 함정에 빠지기 쉬우니, 가답안을 능동적으로 만든 뒤 선지 중 그와 가장 가까운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지문 요약 과정]

첫째 문단의 앞 부분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 요인으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역접의 접속어 그러나뒤에서 이를 반박하는 근거가 나오고, 결론을 유도하는 접속어 따라서뒤에는 질병의 성격을 파악할 때 개인적 요인뿐 아니라 계층, 직업 등의 요인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글쓴이의 주장이 제시되었습니다.

둘째 문단에서는 질병에 대처할 때도 사회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둘째 문단의 주장을 통합하여 질병의 성격 파악과 질병 대처 시 사회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논지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부합하는 정답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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