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궁극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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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궁극의 독서
  • 최용성
  • 승인 2020.10.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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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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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출판계에 따르면 통상 가을은 책이 잘 안 팔리는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가을에 안 팔리는 책을 좀 더 팔아보려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있다. 지금 당장 밖에 나가 가을 하늘과 날씨를 느껴보시라. 가을에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금세 알 수 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여행하고 놀기에 이보다 좋은 날씨가 없다. 이 쾌적한 계절에 방에 틀어박혀 책만 잡고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가을에 책이 안 팔리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이 가을에 유독 책 읽기를 좋아해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게 된 이유에 관하여, 농경문화의 유산이라거나,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시작된 것이라거나, 봄여름보다 가을에 몸의 호르몬 분비가 줄어 고독해지기 때문이라거나 등등 여러 가지 말이 있다(강철승, 가을은 왜 ‘독서의 계절’일까, 서귀포신문 2008년 10월 20일 자). 아무래도 독서 캠페인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대다수 사람이 아무 때나 책을 잘 읽었다면 “독서의 계절”을 따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요즘 세상에 책 읽기는 더 어렵다. 속도가 느리고 정적(靜的)인 전(前) 근대사회와는 달리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경쟁사회에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도피처를 찾게 마련인데 그 대상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시무시한 놈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 기기가 그것이다. 스마트 기기는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그 안으로 인간의 모든 정보, 영상/음향 매체, 소통체계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앞으로 무엇이 더 빨려 들어갈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쩌면 SF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도 가상현실에서만 존재가치를 느끼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스마트 기기의 위력은 역사상 어떤 발명품보다 더 강하다. 스마트 기기 안—기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자—에는 당연히 책(정확히 말하면 전자책)도 들어가 있다. 검색어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찾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그럼 스마트 기기를 통하여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닐까? 개개인이 두꺼운 책을 수백 권 갖고 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마트폰 세상에서는 수백만 권이라도 전자책으로 다 보유할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 읽을 수 있어서 말이다. 전자책을 통하여 인간의 지성이 확장된다고 보는 낙관론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사람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文解力)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문자가 발명된 이래 6천 년간 진화되어 온 후천적인 능력이어서 책 읽기를 통한 고도의 학습이 필요한데,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에 파묻혀 있다가 책을 읽을 때 집중하기 쉽지 않아 문해력, 심지어 공감능력이 퇴보한다는 것이다(매리언 울프). 스마트폰에 익숙한 사람은 책을 읽을 때도 스마트폰의 글을 읽듯이 보기 때문에 문장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니 각자 판단할 수밖에 없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 읽기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준다. 특별한 목표 없이 재미를 찾는 책 읽기는 주제와 분야를 막론하고 대체로 즐거운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이 넘어간다. 이런 책 읽기는 오락거리이고 취미로 하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연구나 보고, 시험공부와 같이 한정된 목표를 위한 책 읽기는 대체로 괴로운 편이다. 이때에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거나 아니면 평소 관심도 없던 TV 프로그램이 보고 싶어지고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는 저질기사라도 클릭하고 싶어진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책 읽기를 지루하거나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박찬운 교수(한양대학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는 최근 펴낸 <궁극의 독서>(한양대학교 출판부, 2020)에서, 인생을 살면서 잘한 일을 꼽으라면 오직 ‘독서’밖에 없다면서 여행과 독서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고(‘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 젊은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여행 둘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책 읽기는 즐거운 것일까, 괴로운 것일까? 여행은 즐거운 일이니 당연히 책 읽기도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고백한다. “제게 독서는 고통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제가 읽어온 책 대부분은 제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책 속에서 지식을 구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더 큰 고통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저자가 <궁극의 독서>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 모두 만만치 않은 다양한 주제에 더하여 분량 자체로 엄청난 대작들이니 말이다. 이걸 모두 즐겁게 읽기는 몇몇 별난 사람들을 제외하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저자는 고지식하게 이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냈고 그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아마 거기 실린 책들을 단 한 권도 완전히 읽지 못할 나 같은 사람에게 이 기록은 선물이다. “분명 고통이지만 동시에 묘한 즐거움,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독서”라는 저자의 역설적 언명을 공유하면서 나만의 ‘궁극의 독서’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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