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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07) / 떠나는 뒷모습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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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07) / 떠나는 뒷모습을 기억한다
  • 정명재
  • 승인 2020.09.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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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 시험합격 8관왕 강사)

오랜 시간 노량진에서 생활을 하였다. 2013년 겨울에 노량진에 들어왔다. 당시, 다니던 무역회사를 떠나 자영업의 삶을 무턱대고 시작하였다. 회사원 생활은 5년 정도 하였다. 출장으로 부산, 울산 등을 돌아다니며 재미있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회사 경영사정이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남아있던 정든 동료들을 뒤로 하고 나는 노량진에서 울타리 없는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했고, 바람이 불면 오롯이 그 바람을 견뎌야 하는 삶이 바로 자영업의 일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힘들고 지친 생활의 연속이었고 끝내 그만 둘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다시 삶의 탈출구를 찾아 다녔다. 누군가를 위해 책을 쓰고 시험공부를 연구하는 지금의 일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015년 처음으로 공무원 수험생을 만나기 시작했고,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위해 시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황무지 같은 노량진에서 작은 꿈을 일구며 자그마한 공간, 단출한 책상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공부하고 책을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보람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수험서를 쓰는 일과 수험생을 위한 칼럼을 쓰는 일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다. 없는 형편에 시작한 공부와 책 연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더군다나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 일이었다. 개인 출판사를 만들어 편집자를 구해 책을 낸 적도 있었지만, 대형서점에 책을 입점하기는 어려웠다. 수험생을 만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대형학원의 영업력과 광고 그리고 자본 앞에서 나의 존재는 한낱 노량진 3평 남짓의 작은 공간인 서재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작은 서재는 내게 꿈을 만드는 공장과 같았다. 시중에서 만나기 힘든 서적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과목으로는 존재하지만 기출문제집이나 문제집이 구비 안 된 과목에 집중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이니 내게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산직, 방재안전직, 도시계획직, 조경직 등의 수험서는 시중에 교재가 많지 않다. 한 해에 선발하는 인원 자체가 매우 적은 공무원 시험 직류이다 보니, 보통의 학원에서나 강사 입장에서도 메리트(merit)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노량진에서 나는 초보 수험생들이나 장수생들을 많이 만났다. 상담을 할 일이 많다보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을 공부해도 합격을 못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절박함과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 긴 한숨을 같이 내 쉬는 일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그들에게 내 역할을 생각해야 했다.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법, 행정학 등 공통과목에 신경을 써 책을 출간하였다. 수험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형학원의 책과 대형학원의 커리큘럼을 따라 공부를 시작한다. 저명한 누구의 강의, 저명한 누구의 책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바로 여기에 그들의 고민이 묻어난다. 차별화 되지 않은 방법으로써 나만이 유독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일에는 각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남의 지식을 나의 지식으로 바꾸어,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무턱대고 강의를 신청해 성의 없는 공부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책을 대하고 강의를 대한다면 합격생이 되는 길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책을 써 보니 알겠다. 책을 쓰는 과정에 참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를 그리고 강의를 해 보니 알겠다. 강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이란 것을 말이다. 불안전한 삶의 연속이다. 휴일이 따로 정해지지 않으며 수입조차 일정하지 않은 어려운 삶이 바로 강사로서 마주하는 일상이다. 강사의 고단함을 잘 몰랐기에 시작한 일이지만, 알았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함께 노량진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영어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 하며 이별을 고하였다. 5년 가까이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던 선생님이셨다. 나처럼 노량진 작은 공간에서 영어 책을 쓰시고, 수험생 몇몇을 가르치면서 우리는 강사로서의 고충과 어려움을 이해하며 격려하곤 하였다. 가난한 직업인으로 존재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합격시키기 위해 고전분투하며 자존심 하나를 지키며 노량진에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올해는 너무 힘들다고, 이젠 모두 그만두고 싶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서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여느 수험생을 대하듯 그에게 공무원 시험에 관한 코칭을 하였고 올해 6월 지방직 시험에 응시하였다. 그리고 지난 주 최종합격을 한 것이다. 그래, 김민수 선생님과도 여기까지가 마지막이구나. 늘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친구가 없어졌고, 힘들 때 너스레를 떨면 너털웃음으로 받아주던 존재가 없어졌으니 가을의 스산한 바람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해야 했던 한 주였다.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던 그 도전과 걸음이 멈추면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다. 익숙했던 공간과 시간과 이별하는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숙명이다. 나는 노량진을 떠나 신림동 작은 공간에 서재를 꾸렸다. 고독한 시간이었으며 처절하게 밤을 새우던 노량진에서의 시간은 기억에 묻고 다시 신림동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꿈꾼 적도 없었고, 대박이라는 한 순간의 이익을 바란 적도 없이 하루를 사명감으로 보낸 날들이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조금씩 변해갔으며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졌다. 현명하게 늙고 있으며, 덤덤하게 세상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을 마치고 각자의 공간으로 향하던 그 걸음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떠나는 자와 남은 자의 평행선에서 나는 남는 것을 택했고 선생님은 떠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아주 오래 전, 이별을 대하며 느꼈던 감정이 몽글몽글 되살아났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 비쳐지고 있을까. 내가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느껴야 할 그 감정을 누군가도 나를 바라보며 가지고 있었으리라.

가을의 문턱에서 공무원 시험의 최종합격자 발표가 났고, 이제 내년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만이 노량진 또는 신림동의 작은 공간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떠나는 자와 남아있어야 할 자들이 나뉘고 서로의 안부를 멀리서 전할 뿐이다. 남은 우리에게도 때가 되면 익숙한 모든 것과의 이별을 고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고 힘든 이 순간을 아련히 추억이라 여기며 맞이할 것이다. 힘겹게 하루를 버티며 합격이라는 무지개를 향해 쉼 없이 달리는 수험생이라면 지금의 고통은 돌아보기 싫은 시간과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약 없어 보이던 수험시간도 끝이 난다. 그리고 덤덤하게 남아 괜찮은 척 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것임을 믿자. 서로의 온기를 잊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고 위로하자.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일이 떠날 것을 예비하는 여행자의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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