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별금지법 논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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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금지법 논란 유감
  • 송기춘
  • 승인 2020.08.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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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6월 29일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였다. 차별금지 사유와 차별금지 영역이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이 법률안을 흔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도 부른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차별금지법안을 공개하였다.

이 법률안에 관한 논란 가운데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성(性)을 남성과 여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정의하고 사람이 여성이나 남성 등에 이끌리는 경향인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를 규정한 부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대개 이성애(異性愛)가 일반적이고 또 권장되므로 논쟁은 동성애나 양성애에 집중된다. 즉, 동성애 등을 이유로 하여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이 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는가이다. 특히, 동성애나 양성애 등을 종교적인 신념으로 반대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제재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런 주장이 흔히 범하는 잘못이 있다.

우선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지향과 성행위를 혼동한다는 점이다. 동성애가 반드시 동성간의 성행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동성애자의 성행위가 행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것을 포함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성행위가 백주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남녀가 하듯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것을 탓할 이유가 무엇일까? 1986년 미국연방대법원은 구강과 항문 성교를 금지하던 미국 조지아주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Bowers v. Hardwick). 질서화된 자유(ordered liberty) 또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이라는 관념이 그러한 판단의 기저에 있다. 그러나 2003년 Lawrence v. Texas 판결에서 동성간의 일탈적 성행위를 금지하는 소도미(sodomy)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사적이고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적법절차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동성애 금지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성서를 이해하고 믿고 사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만도 아니다. 소돔성이 망한 것이 동성애라는 죄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옳은 해석은 아니다. 창세기 18장에 등장하는 얘기는 특수강간죄에 해당할 범죄행위이지 동성애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서에서 문제로 삼는 동성애는 남자들끼리의 성행위이다. 여성들끼리의 동성애나 성행위가 없는 성적 이끌림 자체를 나무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대변화와 지식의 발전에 따라 성서도 재해석되어야 하는 법이다. 경전에 충실하게 코셔 또는 할랄음식만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돼지고기와 새우나 오징어(레위기 11장)를 맛있게 먹는 이들도 있다.

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질병이며 치료의 대상이라고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 현대 의학지식에도 맞지 않거니와, 설사 그게 그 사람의 신념이라고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몇 년 전 헌법개정 토론회장에서도 목격한 것이지만, 이런 신념을 가졌다 해도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권리는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동성애처벌법이 없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는 억압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그게 어디 그런가. 아예 사회적으로 말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모르는지. 법률안의 조항을 오독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식에게 동성애 하지 말라고 하면 친권이 박탈된다느니 교회설교로 처벌받는다느니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성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사람을 만나도 상대방의 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면 크게 당황한다. 성이 사회적 관계의 매우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사실 성이 사적인 것이고 만남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글이 동성애를 옹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누군들 이성에게 끌리는데 일부러 동성애를 하겠는가? 그저 그런 성향을 그대로 존중하자는 것뿐이다. 성적 ‘지향’이라는 용어도 그 점에서는 오해를 낳는다. 그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 경향이나 성향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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