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고정애 시인의 “날마다 기적”, 위대한 붉은 피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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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고정애 시인의 “날마다 기적”, 위대한 붉은 피톨
  • 오시영
  • 승인 2020.05.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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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5월 중순, 노출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봄꽃들이 먼저 보이더니 그들이 지면서 5월 장미꽃이 한창이다. 강의하러 가는 길목 어느 집 담장에 붉은 장미꽃이 활짝 피었음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 이쁘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계절은 어김없이 5월 붉은 장미를 피어나게 한다. 현대사회는 보여주기 사회이다. 아니 보이기 사회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의 보여주기, 보이기 삶을 절제하도록 강제한다. 오랫동안 몸에 익혀진 습관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지만,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으로 쉽지 않은 습관 바꾸기 연습에 열중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하기야 70억 인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은 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이태원 춤꾼들 클럽에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감염이 방역 당국과 전 국민을 다시 한 번 긴장시키고 있다. 모두의 경각심이 높아짐에 따라 조만간에 잡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지만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현실이 스트레스이긴 하다.

고정애 선생의 시 “날마다 기적”을 본다. “3초 2초 1초/ 곧장 레이스로 나아간다// 총길이 약 9만 킬로미터/ 달까지 거리의 4분의1 거리를/ 1분에 세 번, 서로가 뒤질세라/ 굽이굽이 빈틈없이 내달리는// 핏줄 속 피톨이다// 살고 있는 한/ 하루 4320회, 연 157만6800회// 우주여행 순환선을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붉은피톨 흰피톨// 날마다 기적이다.” (전문, 시집 ‘날마다 돌아보는 기적’에 수록, 문학의 전당, 2020 간)

86세 노시인이 진력하여 쓴 시 “날마다 기적”은 우리 몸의 경이로움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 몸속의 핏줄의 길이가 9만 킬로미터에 이르고, 그 긴 거리를 피가 하루에 4320번이나 돈다는 사실을 접하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피톨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노년의 삶을 관조하고 있는 노시인이 보내온 시집을 읽으며 유독 눈에 띄는 시 “날마다 기적”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었다. 달까지 거리의 4분의 1이나 되는 우리 몸속 핏줄의 연장선이, 실핏줄로 얽혀 우리 몸을 살리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피는 소리소문없이 자기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관중 없는 프로축구가 개막되고, 관중 없는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프로스포츠 개막 국가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재밋거리가 없어진 사람들이, 심심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프로축구가, 프로야구가 우리 삶의 실핏줄이 되어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자국 경기가 열리지 않아 심심해진 세상 사람들이 그동안 수준이 낮다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국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 관심을 보이고, 돈을 지급하고 중계권을 사가는 진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관중이 없어 썰렁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선수들이 골을 넣거나 홈런을 쳐도 세레머니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관중들의 환호성마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정정당당한 스포츠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투명성 기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즐겁다. 그러한 중계방송을 접하며 각 팀 서포터스 중심으로 소수의 관중일망정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장될 수 있을 정도의 좌석배치를 통한 관중들의 관람과 응원을 허용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었으면 한다. 관중들의 신청을 받고 추첨 등을 통해 관람 특혜(?)를 주는 것도 한 방안이라 하겠다. 그러한 제한적, 선별적 관중 입장이 코로나19에도 절대 굴하지 않은 인간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보이지 않은 사회 실핏줄이 되어 사회적 피톨의 움직임으로 사회를 정화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래통합당 민경욱 국회의원 낙선자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총체적 부정선거였다며 구리시 지역구 투표용지 몇 장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구리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 투표용지를 분실하였다고 뒤늦게 수사 의뢰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남은 선거용지가 적법절차에 따라 폐기되지 못하고 외부에 유출되어 낙선한 야당의원의 손에 들려 흔들리고 있는 것도 희한한 일이지만, 이번 총선이 관권 부정선거라고 믿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이 너무 황당하기도 하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사회에서는 음험한 일이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다. 아니 거의 없다. 모든 것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야참관인과 경찰들이 상호감시와 견제를 통해 공정한 선거를 보장하고 있는 현행 선거시스템에 불법선거가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확신하는 민경욱 의원의 위 돌출행동은 오히려 “선거용지의 불법탈취”라는 범죄혐의를 받게 되어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인이야 자신이 수사를 받는 것이 총체적 불법선거 여부를 밝히는 수사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환영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의도된 결과가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고 있는 국민에게 왜 저렇게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케이비에스방송국 앵커로서,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미래통합당 대변인으로서 등등 그동안 무언가 남에게 보여주기에, 보이기에 몰입해 온 과거의 모습이, 사람의 관중을 받으며 살아온 직업적 습관이 코로나19사태와 겹치면서, 낙선과 겹치면서, 개표 과정에서 한참을 앞서 가다가 새벽녘에 역전되어 낙선된 충격과 겹치면서 스스로 현실적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확증편향의 잘못을 고착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천을 받았다가 다시 탈락하였다가 다시 받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호떡 공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마지막 “호떡 당선”을 기대하며 투표용지를 증거보전 신청하고, 재개표를 희망하고 있지만, 한두 표 차이도 아니고 2893표 차이로 낙선된 개표결과가 뒤집히리라는 것은 기대난망의 일이 아닌가 싶다. 이제 20대 국회가 보름 정도 남았다. 지난 4년간 국회 운영을 보면 끊임없는 소모전,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목소리를 높였던 비효율적 국회였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그러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앞장섰던 의원이나 후보들 대부분을 낙선시킨 시민의식의 지혜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붉은피톨, 흰피톨이 1분에 세 번 우리의 몸을 휘돈다는 고정애 선생님의 깨우침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우리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우리를 살리는 것, 우리를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바로 저 보이지 않은 피톨들의 헌신적 운행에 있음을 생각하니 감사하게 된다.

같은 시집에 수록된 “세뇌(洗腦)”를 읽는다. “귀에 쟁쟁하다/ 상기도 또렷이 들리는 노랫말// “붉은 피 끓는 예과 연습생/ 일곱 개 단추에는 벚꽃과 닻 무늬/ 오늘도 날아오른다 카스미가우라에선/ 커다란 희망의 구름 솟는다”// 살아서 돌아올 확률 제로인/ 출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 안팎 홍안(紅顔)의 청년들/ 가미카제 특공대가/ 발걸음을 맞추던 행진 노랫말이다// 손톱만큼도 청년 스스로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릿속 뇌수에/ 정교한 마이크로칩 살그머니 삽입하는,/ 인간어뢰 인간폭탄 자살테러 부추기는 노랫말이다// 기나긴 세월 훌쩍 뛰어 건넌 오늘까지/ 입가에 빙빙 맴돌게 하는/ 일제(日帝) 군부(軍部)의 끈질긴 세뇌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전문)

1934년생이신 고정애 선생은 어린 시절이지만 일본통수 치하를 살았고, 해방을 맞았고, 광복된 조국에서 살아오셨다. 거의 80년 세월 전 어린 시절에 들었던 저 가미카제 특공대 행진곡 노랫말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아픔에 대한 생생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대동아전쟁의 광분 속에서 일본군들이 스스로 자살특공대가 되어 전투기와 함께 자살테러범처럼 죽음의 길로 나아갔던 당시 상황이 저 짧은 한 편의 시 속에 농축되어 있다. 우리의 슬픈 역사이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아픔이다. 최근 보수언론이 중심이 되어 “정의기억연대”가 국민으로 모금된 기금을 횡령하였다는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의 이사장으로 30여 년간 수고해 온 윤미향 전 이사장이 더불어시민당 비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그를 상대로 공금 횡령이 있지 않으냐 하는 회계부정의문을 제기하며, 자녀의 유학자금 조달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물론 윤미향 전 이사장이나 현 이나영 이사장은 그러한 사실이 없으며 정당하게 회계처리가 되었고 주무관청에 회계보고가 이루어졌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저술하여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였던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다시 한 번 일본 식민지배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편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단행했던 반도체 부품 금수조치의 해제 및 화이트리스트 문제에 대해 이달 말까지 해제 여부에 대하여 확답을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 회신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가 조건부 유보했던 지소미아 해지 문제와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일본의 불공정무역규제조치에 대한 제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정의기억연대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나 시민들은 보수언론들의 도가 넘는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의혹 확대제기는 사실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시민들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끊게 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지원, 소녀상 설치,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집회 개최, 일본 정부 만행에 대한 국제적 여론전 전개 등의 힘을 약화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청산되지 못한 일본의 침략지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수 언론을 비판하고 있고, 보수언론은 그런 의도는 없으며 순수하게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가 회계부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 밝힐 필요에서 보도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30여 년간 보수정권이 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국민의 친일청산 여론을 형성하고, 국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일본 정부 홍보의 허위성을 밝혀내어 일본의 불법적 침략과 성 노예 착취를 벌여온 반인권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왔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동참했고, 지금의 긍정적 상황을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거의 80년 전에 들었던 가미카제 특공대의 출정가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고정애 선생의 세뇌된 기억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붉은피톨 흰피톨 임무를 누가 수행할 수 있겠는가? 정의기억연대에 회계처리의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의기억연대가 지난 30년간 열악한 환경 아래에서 묵묵히 수행해 온 친일청산의 시민운동은 결코 폄훼되거나 비난해서는 아니 될 고귀한 민족정기의 회복운동이다. 언제 보수언론들이 친일청산에 앞장섰으며, 민족정기를 회복하는데 이바지였던가? 오히려 일본 정부의 입이 되지 못하여 안달이었고, 친일의 불법행위를 감추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았던가?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하고, 손이라고 아무 글이나 쓸 수 있는가?

고정애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 기적의 강을 매일 건너며 대한민국의 국민 됨이 자랑스럽고, 오늘의 우리가 스스로 대견스럽다. 민경욱 낙선자의 확증 편향적 부정선거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고, 같은 당 의원들마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고정애 선생님의 세뇌된 기억에서 벗어나 날마다 몸의 피를 맑게 하고, 기억의 피를 맑게 하는 날마다 기적 같은 삶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아무리 일본 사사키 재단의 자금 지원을 받았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의 궤변이 우리를 세뇌시키려 하지만, 그 외침이 공허한 것은 그 외침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의 코로나19확진 원인제공이 우려스럽지만, 우리는 능히 이겨낼 것이다. 모든 국민이 날마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붉은피톨 흰피톨이지 않는가? 오늘도 9만 킬로미터의 우리 몸속을, 세계를, 우주를 하루에 4320번 돌고 돌아보자. 돌수록 깨끗해지는 우리는 위대하다. 축구장에서, 야구장에서 이태원 클럽에서 추었던 춤을 실컷 추는 축배의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원 없이 춤을 춰보자, 그날을 꿈꾸며 세뇌당해 보자.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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