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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514)-‘말, 사슴, 사냥꾼’이란 이솝우화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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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514)-‘말, 사슴, 사냥꾼’이란 이솝우화 읽는 법
  • 신희섭
  • 승인 2020.04.03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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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br>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여기 이솝우화가 있다.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거든 내가 고삐로 널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우고, 사슴을 쫓는 동안 내가 편히 앉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어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말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단 말이야.” - <말과 사슴, 그리고 사냥꾼>, 『이솝우화』

이 우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렛(Daniel Ziblatt)은 이 우화에서 ‘민주주의의 자발적 붕괴’를 읽었다. 말(기성 정당)은 사슴(반대 정당)을 물리치기 위해 위험한 사냥꾼(극단주의자 혹은 민중주의자)을 끌어들이고 결국 지배받는 ‘비극적(민주주의 자체의 붕괴) 상황’이 된다. 실제 이 우화는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위의 두 학자가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원 제목 HOW DEMOCRACIES DIE)의 도입부에 나온 것이다.

이솝우화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한 바는 명료하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두 가지 방식 중 첫 번째 방식인 쿠데타 말고 두 번째 방식인 선거란 민주적 제도를 이용해서 민주주의가 ‘자발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발적이고 정당한 방식에 의한 민주주의의 붕괴. 말도 안 될 듯하지만, 유명 사례들은 차고도 넘친다. 1920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 1930년대 브라질의 제툴루스 바르가스, 1990년대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2000년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이보다 더 많은 사례에서 민주주의는 “자발적으로” 살해당했다. 이유는? 독재연구의 권위자인 두 학자는 ‘민중의 무지’에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 스스로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문지기’에 집중하였다. 첫째 문지기는 ‘기성 정당들’로 이들이 극우파나 민중주의자들을 제도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둘째 문지기는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두 가지 규범이다. 이 규범들이 극한으로 가는 경쟁을 막고 극단적인 지도자를 배제한다. 이 규범이 무엇인지는 심판 없이도 큰 싸움 없이 운영되는 길거리 농구를 생각해보라!

이 우화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겠는가! 이 우화의 핵심은 말이 사슴에 대한 미움을 제거하기 위해 더 큰 위험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즉 ‘자발적 복종’이다. 이 현상은 수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다. 토크빌의 ‘민주적 전제’, 한나 아렌트의 ‘사사화’,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 하이예크의 ‘예종에의 길(Road to selfdom)’….

다시 우화로 돌아와 보자. 만약 위의 이솝우화가 들려주고 싶었던 교훈이 ‘자발적 복종’이라면 자발적 복종은 다른 차원에서도 진행된다.

먼저 국제정치다. 국제정치에서 사냥꾼(제3 자)을 끌어들여 더 큰 위험에 빠진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아주 멀게 3국 시대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루었지만, 영토의 상당 부분을 내주었다. 19세기 조선 후기 위정척사와 개화파는 정치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각기 다른 국가를 끌어들이려 했고, 결국 일본에 국가를 침탈당했다. 2차 대전 이전 영국은 프랑스를 견제하겠다고 히틀러의 독일이 팽창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 사례들은 대내외적인 반목과 갈등을 제거하기 위해 더 위험한 세력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만약 위의 이솝우화로 비유하자면 말이나 사슴은 서로 치명상을 입힐 수 없지만, 사냥꾼은 둘 다 죽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이전에 국가의 존립이 문제인 것이다.

가치관을 다루는 ‘사상’ 차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날카로운 ‘합리성’과 인간 간 공감이란 ‘감성’이 충돌할 때를 생각해보자. ‘합리성’은 그의 영원한 적수인 ‘감성’을 억누르기 위해 ‘냉담’이라는 사냥꾼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냉담은 합리성 자체를 거부하고 세상과의 고립을 선택해 사회화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다. 분노를 뛰어넘는 무관심.

그런데 따져보면 민주주의는 3가지 경우 모두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기성 정치인이 독재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도움을 요청한 국가에 의해 지배받음으로써 민주주의가 파괴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선행 조건인 국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냉담과 무관심이 민주주의의 기본 덕목인 ‘우린 다르지만,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합의’를 파괴할 수도 있다. 정확히 무엇이 더 민주주의에 위험한지는 알기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지금의 정치적 갈등과 경쟁이 꼴 보기 싫다고 더 위험한 ‘사냥꾼’과 손잡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새로운 선거제도를 이용한 어처구니없는 정치경쟁. 가치 기준이 모호해 누구를 적으로 삼아야 할지 헷갈리는 이념경쟁. 세계화를 증오하게 만드는 코로나.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정부 시스템에 대한 불신. 전체 사회체계에 대한 냉담. 이런 도전들은 자꾸 주위에서 ‘사냥꾼’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이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천천히 위협받고 있다. 거꾸로 이 도전을 자양분 삼아 민중주의나 극단주의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다.

그럼 희망은 없을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우리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헌신. 사회적 거리 두기로 버텨내는 시민들의 놀라운 투지. 매일 밤 의료진들을 위해 박수와 노래를 보내는 각국 시민들의 공존에 대한 의지.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부족한 자원을 나누는 국가들. 이들은 우리가 어렵게 만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증표이다. 또 지금 피어나는 꽃처럼, 오고 있는 희망의 봄을 알리는 전령(harbinger)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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