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합 “양도담보 설정된 동산 처분, 배임죄 불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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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합 “양도담보 설정된 동산 처분, 배임죄 불성립”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0.03.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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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물 보전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 기존 판례 변경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대법원이 채무자가 점유개정에 의한 양도담보가 설정된 동산을 처분한 행위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종전 입장을 변경했다.

피고인 A는 피해자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1억 5천만 원을 대출받으면서 크라샤(골재생산기기)를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A에게는 중소기업은행이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크라샤를 성실히 보관·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으나 이에 위배해 크라샤를 제3자에게 매각해 피해자 중소기업은행에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A에게 배임죄의 유죄를 인정했으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 견해를 뒤집고 배임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대법원 2020.2. 20. 선고 2019도 9756 전원합의체 판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경우를 횡령죄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해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를 배임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안에 대해 종래 대법원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채무자가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되 점유개정에 의해 채무자가 이를 점유하기로 한 경우에는 약한 양도담보가 설정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이 경우 소유권은 신탁적으로 이전됨에 불과하여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가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이를 보관할 의무를 지게 되어 이를 부당히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 기타 담보가치를 감소케 하는 행위가 금지된다”고 봤다.
 

아울러 “채무자인 양도담보설정자는 채권자에 대해 위 약정에 따른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게 된다 할 것이고, 채무자가 양도담보된 동산을 처분하는 등 부당히 그 담보가치를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한다(대법원 1983. 3. 8. 선고 82도1829 판결 등)”는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했더라도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채무자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며 종래 입장을 변경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다수의견의 입장이다.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해야 그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다수의견은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을 요하는 진정신분범으로 채무자가 계약을 위반했고 그로 인한 채권자의 재산상 피해가 적지 않아 비난가능성이 높다거나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1도3247 판결 등)”며 “이는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설시했다.

다수의견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는 담보목적의 달성, 즉 채무불이행 시 담보권 실행을 통한 채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므로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 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의 변제에 있다”며 “채무자가 위와 같은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같은 법리는 동산 외에 주식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2명의 대법관은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수의견과 입장을 같이 했지만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이를 심리·판단할 수 있도록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동산의 양도담보는 소유권을 이전하는 양도담보로서 신탁적 양도, 즉 동산의 소유권은 채권자에게 완전히 이전하되 다만 채권자는 채권담보의 목적범위 내에서만 소유권을 행사해야 할 채권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라며 “동산 양도담보를 신탁적 양도로 보는 이상 점유개정에 따라 양도담보 목적물을 직접 점유하는 채무자는 횡령죄의 주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종전 판례와 같이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반대 의견도 1명 있었다. “담보권설정계약에 따라 ‘담보를 설정할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로 볼 수 있지만 채권자가 ‘양도담보권을 취득한 이후’에는 채무자의 담보물 보관의무 또는 담보가치 유지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종래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 담보가치를 유지할 의무 등이 있다는 이유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종래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배임죄의 행위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사무의 본질에 입각해 엄격하게 제한해석한 판결“이라고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유사한 쟁점 등이 제기된 사례로 부동산에 관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해당 부동산을 제2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했다.

매수인으로부터 중도금을 지급받은 후 목적물인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동산의 이중 매매에 대해서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고 봤다.

하지만 부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여전히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하고 있다. 대법원은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에서는 어느 당사자나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그 배액을 상환해 계약의 구속력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중도금이 지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봤다.

즉, 매수인은 매도인이 소유권을 이전해주리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중도금을 지급하고 따라서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에는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함으로써 부동산 이중매매를 억제하고 매수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판단도 고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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