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9)-조선 500년 존속의 비밀, 과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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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49)-조선 500년 존속의 비밀, 과거제도
  • 강신업
  • 승인 2020.02.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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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조선은 세계 왕조 역사상 유례없이 긴 500년 간 존속했다. 그 이유를 두고는 시민정신 자체가 태동하지 못한 때문에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관료채용의 공정성과 관료의 우수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고려 광종 때 후연에서 온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 실시되었지만 고려에선 음서제도 역시 관료 등용의 관문이었던 데 비해, 조선은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청·요직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과거제도는 동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시스템이었다. 사실 과거시험보다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료 채용 방법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제비뽑기는 무능력자 선발, 공화제 국가에서의 선거는 큰 비용과 마타도어, 중세까지 흔했던 세습제는 기회차단, 천거나 발탁은 문벌주의와 세도정치라는 폐단을 각기 안고 있었다. 그에 비해 과거제도는 능력에 따른 선발이라는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조선조 내내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조선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시스템의 정교함이라는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먼저 시험을 소과와 대과로 나누고 소과인 생원시(유교 경전으로 시험)와 진사시(문장, 즉 글짓기로 시험)는 다시 초시와 복시로 나눠, 초시에서는 생원시와 진사시 각 700명, 복시에서는 생원시와 진사시 각 100명을 선발했다. 소과에 합격한 이들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대과는 초시, 복시, 전시로 나눠 초시에선 240명을 선발하고 복시에선 33명을 선발했다. 마지막 전시는 복시에 합격한 33명을 상대로 순위를 정하는 시험으로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을 뽑고 각 과마다 다시 등수를 정했다 우리가 장원급제라고 하는 것은 갑과 1등을 말하는 것이다. 성적에 따라 제수되는 관직의 품계가 달라 장원에겐 종6품, 갑과 합격자에겐 정7품, 을과에겐 정8품, 병과에겐 정9품이 부여되었다.

조선 과거시험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시험이 지역주의와 능력주의를 매우 절묘하게 결합한 시험 제도였다는 것이다. 소과나 대과 모두 초시(1차 시험)에선 각 도별로 할당된 인원(지역균형)을 먼저 뽑은 뒤 복시(2차 시험)에서는 점수 순위로 최종합격자를 뽑는 방법(능력주의)으로 지역과 능력의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진 과거시험의 특징은 이 시험이 공직자 선발시험에 그치지 않고 신분취득이나 유지의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소과의 경우 합격하면 생원이나 진사라는 직함을 부여받는데 이는 관직에 나가는 것과 상관없이 평생 동안 유지되는 일종의 신분이었다. 또한 조선에서는 평민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던 반면 양반도 직계 4대 내에 최소한 소과를 합격해야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 합격은 곧 신분의 상승 내지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정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식년시는 3년마다 시행되었지만, 이외에도 왕이 성균관의 문묘를 참배한 후에 실시하는 알성시, 나라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별시 등 부정기시험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고, 이러한 시험들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흔히들 조선말 매관매직이나 부정행위의 병폐를 들며 과거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제도 운영의 문제였을 뿐 과거 제도 자체의 문제점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은 과거라고 엄격한 시험제도를 통해 관료의 정당성과 우수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시험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신분을 얻고 유지하는 방법이자 관직 진출의 유일한 방법으로 기능함으로써 신분에 따라 관직을 얻는 게 아니라 능력에 따라 신분을 정하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했다.

관료 선발의 공정성은 나라의 존립근거이자 기반이다. 지금 장차관이나 청와대의 비서실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고위직 공무원들은 모두 소위 ‘줄 잘 선자’가 온통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웬만한 정치인 모두가 온통 입만 열면 공정을 외치지만, 과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만큼이나 공정한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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