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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허망한 필리버스터, 노혜봉 시인의 “하늘바라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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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허망한 필리버스터, 노혜봉 시인의 “하늘바라기 꽃”
  • 오시영
  • 승인 2019.12.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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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한 해가 저물어간다. 벌써 올해 마지막 글을 쓰게 되었다. 수많은 말을 해야 했던 한 해, 그 말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말이 몇 개나 있을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했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 소송절차에 보면 단순병합, 선택적 병합, 예비적 병합이라는 제도가 있다. 셋 다 하나의 소송절차에서 여러 개의 권리를 주장하는 제도로 한꺼번에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단순병합은 원고가 여러 개의 권리를 주장하면, 법원이 이 여러 개의 권리를 모두 판단해야 한다. 두 개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두 개의 권리를 각각 판단하여 두 개를 모두 이기게 할 수도 있고, 한 개는 이기고 한 개는 지게 할 수도 있고, 두 개를 모두 지게 할 수도 있다. 하여튼 법원은 두 개를 모두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선택적 병합이란, 두 개 이상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원고가 바라는 것은 하나만 이기면 되는 소송절차이다. 따라서 원고를 이기게 하려면 법원은 그 중 하나만 이기게 판결해 주면 되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면 된다. 반대로 원고를 지게 하려면 법원은 여러 개의 권리를 모두 판단하여 모두 이유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해야 한다. 예비적 병합이란, 두 개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두 권리가 서로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계약이 유효라고 주장하며 아파트소유권을 넘겨달라고 하면서, 반대로 계약이 무효라면 이미 지급한 아파트매매대금을 반환해 달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계약은 유효이면 유효이고, 무효이면 무효이지, 유효와 무효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하는 소송절차이다. 특히 예비적 병합은 만일 유효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재판에 진 다음에, 그렇다면 계약이 무효라며 두 번째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재판하는 판사가 다른 사람이다 보니 그 두 번째 재판에서 그 계약이 첫 번째 재판과 달리 유효라고 인정하면서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이유 없다며 또 원고를 지게 하는 판결을 하게 되는, 즉, 두 재판 중 한 번은 이겨야 하는데, 두 개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서로 달라 모두 반대로 판단하여 유효와 무효 중 한 번은 이겨야 하는 원고가 두 번 모두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소송절차이다. 따라서 예비적 병합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한 번은 이겨야 할 원고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다. 계약이 유효 아니면 무효이니까, 둘 중 하나에서는 이길 것이니까 말이다.

지난 한 해, 우리들은 위 세 유형의 소송 중 어떤 소송에 몰두하며 살아왔을까? 세 가지 유형 모두 이겨야 할 재판이라면 이기게 되어 있지만(져야 할 재판이라면 지게 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모른 채 자기 주장에 함몰되어 생각이 다른 이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올 한 해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천지개벽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수많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우리의 평안과 고요를 깨뜨려 왔다. 사세에 민감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한 해였다는 생각이다. 시세에 민감한 이들은 여전히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공의의 실현에 매진하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부동산 투기에, 나 홀로 재테크에 열중하며 실속을 챙겼다. 그게 인생사니 누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리라 싶다.

이틀 전은 성탄절이었다. 2천 년 전 예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날이었다. 그가 이 세상에 뿌려놓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생각에 생각을 갖게 된다. 한기총 대표라는 목사 같지 않은 전광훈 목사가 정치목사가 되어 종교를 왜곡하고 있고, 국내 최대 대형교회 중의 하나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김하늘 목사 부자의 교회 세습문제가 사회적 이목을 받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정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앞두고 크리스마스인 25일 자정까지 필리버스터가 전개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공직선거법 개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필리버스터까지 끝났으니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고, 곧이어 공수처법에 대한 처리가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난리가 나겠지만, 그렇게 진행되어 갈 것이다.

노혜봉 시인의 “하늘바라기 꽃”이라는 시 한 편을 본다. “...아직, 오늘은 우리가 죄인들을 위해 단 하나의 희생도 하지 않았지 언니, 이 무화과로 희생을 바치자/ 히야친따는 바구니에 담긴 무화과를 집으려다 놓았다//...지난번에도 넌 포도를 가난한 애들에게 주었는데,/...루치아 언니, 기도뿐만 아니라 고통까지 바쳐야 마음이 기쁘니까, 정말로 목이 마르지만 참을래// 그녀가 손에 꽉 움켜쥐어 피를 흘렸던 쐐기풀이/ 내 손가락과 가슴을 찔렀다/ 루치아의 회고록 밑줄 친 붉은 줄마다 눈물이 흘렀다/ 오! 아름다우신 부인과의 약속은 얼마나 빛이 영롱한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숨겨진 눈길은, 숨겨진 손길은, 마음갈피의 오열조차,/ 포도송이 같은 히야친따의 눈물로 알알이 물결치며/ 내 안의 무엇인가를 툭, 툭 터뜨리고 있었다// 넌 어린 가장을 위해 한 끼 밥을 굶은 적이 있나/ 허리에 밧줄을 꽉 조여 묶고 하루라도 지낸 적은 있나// 마른 입술, 얄팍한 혀로 했던 수많은 거짓말/ 네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죄, 진심 어린 고해성사/ 숨어 계신 하느님을 간절히 찾으며 영성체를 모셨나// 별들은 천사들의 눈빛이야, 달은 히야친따의 초롱등이야,/ 태양은 예수님의 불타는 얼굴이야, 이 밤, 나도 간절하게/ 멀리서 내 초롱등을 바라보며 두 마음을 모읍니다” (전문, ‘시터’에 수록, 현대시학사, 2019)

노혜봉 선생이 루치아 수녀님의 “파티마의 기적 회고록”에서 열한 살이던 루치아 수녀가 사촌 여동생 히야친따(당시 8세)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부분을 읽고 감동으로 쓴 시이다. 포르투칼 파티마를 여행한 관광객은 파티마의 기적 – 성모님의 발현 - 이야기를 듣거나 보아서 알 것이다. 루치아(당시 10세)와 히야친타(당시 7세), 프란치스코(당시 8세) 세 명의 아이는 1917년 5월 13일에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그 후 5개월에 걸쳐 매달 한 번씩 다섯 차례 더 나타났다고 한다. 그때 히야친따는 성모 마리아에게 서약을 했고, 이를 실천하겠다며 여덟 살짜리 어린 히야친따가 “...아직, 오늘은 우리가 죄인들을 위해 단 하나의 희생도 하지 않았지 언니, 이 무화과로 희생을 바치자/ 히야친따는 바구니에 담긴 무화과를 집으려다 놓았다”라고 회고록에서 회상하고 있다. 어린 히야친따가 자기가 먹고 싶은 무화과를 먹지 않고 더 가난한 이웃에게 예수의 사랑,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며 굶음의 희생을 실천하겠다는 말을 들은 루치아 언니가 “...지난번에도 넌 포도를 가난한 애들에게 주었는데,”라고 무화과를 먹으라고 만류하는 대화 내용이 위 회고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히야친따가 “...루치아 언니, 기도뿐만 아니라 고통까지 바쳐야 마음이 기쁘니까, 정말로 목이 마르지만 참을래”라고 자신이 먹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기어이 무화과를 더 배고픈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착한 모습을 루치아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회고록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히야친따는 아깝게도 열 살 때 죽었고, 프란치스코는 열 한 살까지밖에 못 살았지만, 루치아 수녀는 97세까지 살았다. 마지막 성모 마리아 발현 현상은 1917년 10월에 약 7만 명의 군중이 모여 태양의 기적(태양이 지상에 수직으로 떨어지며 회전하는 등)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혜봉 시인은 무화과를 따다가 “그녀가 손에 꽉 움켜쥐어 피를 흘렸던 쐐기풀이/ 내 손가락과 가슴을 찔렀다”라고 마음 아파하며, “루치아의 회고록 밑줄 친 붉은 줄마다 눈물이 흘렀다/ 오! 아름다우신 부인과의 약속은 얼마나 빛이 영롱한지”라며 성모 마리아 앞에서 여덟 살짜리 어린 소녀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 노혜봉 시인은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을 읽으며, 어린 소녀 히야친따의 선한 마음을 따라 걸으며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숨겨진 눈길은, 숨겨진 손길은, 마음갈피의 오열조차,/ 포도송이 같은 히야친따의 눈물로 알알이 물결치며/ 내 안의 무엇인가를 툭, 툭 터뜨리고 있었다”라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의 세례명이 “히야친따”인데) 딸을 향해 “넌(딸을 지칭하는 듯) 어린 가장을 위해 한 끼 밥을 굶은 적이 있나/ 허리에 밧줄을 꽉 조여 묶고 하루라도 지낸 적은 있나”라며, 허리띠 졸라매며, 배고픔을 참으며 누군가에게 헌신적이었던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묻고, 우리 독자에게 묻고, 예수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드는 이들에게 묻는다. “마른 입술, 얄팍한 혀로 했던 수많은 거짓말/ 네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죄, 진심 어린 고해성사/ 숨어 계신 하느님을 간절히 찾으며 영성체를 모셨나”라고 위선적인 예수쟁이들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노혜봉 시인은 “별들은 천사들의 눈빛이야, 달은 히야친따의 초롱등이야,/ 태양은 예수님의 불타는 얼굴이야, 이 밤, 나도 간절하게/ 멀리서 내 초롱등을 바라보며 두 마음을 모읍니다.”라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인생 칠십이 넘은 노 시인의 고백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한 번쯤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국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치적 싸움이나, 국가의 사법정의를 실현하겠다면서 무리하게 검찰권을 남용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체제나, 더 배불리 먹게 해 주겠다면서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며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수많은 재벌, 그 재벌을 욕하면서 재벌의 생리를 닮아가는 수많은 소시민들, 종교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필자의 인식 속에는 그들이 지도자가 아니지만)이라 통칭되는 욕심쟁이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수많은 갑질과 사리사욕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들로서는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 저 파티마의 어린 소녀 히야친따만이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고, 진정 배고픔이 없는 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히야친따처럼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자기가 먹고 싶은 무화과 열매를 먹지 않고, 더 배고픈 이에게 나눠주다 보면 열 살까지밖에 못 산다고? 그러니 남 주지 말고 자기가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혼자 배불리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며 백세까지 살아야겠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 ‘배불리 먹고 혼자 잘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노혜봉 시인이 바라보는 히야친따의 희생만이, 별들을 천사들의 눈빛으로 볼 수 있고, 달이 히야친따의 초롱등임을 알 수 있고, 태양 예수님의 불타는 얼굴임을 깨달을 수 있고, 그래서 이 밤 간절하게 멀리서 자신의 초롱등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선한 마음의 하루가, 악한 마음의 백일을 능히 이길 수 있고, 의로운 하루의 삶이 불의의 천년을 휘어잡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비록 쐐기풀을 움켜쥐어 우리의 손바닥에서 피가 흐를지라도, 포도송이 같은 히야친따의 눈물로 알알이 물결치며, 내 안의 무엇인가가 툭 툭 터져 나오는 소중한 감동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단순병합이든, 선택적 병합이든, 예비적 병합이든 어떻게든 결론은 자신을 이기게 해 달라며 끊임없는 발악과 억지를 부리며 살아온 한 해였다는 생각이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여전히 북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한일관계도 여전히 악화상태이고, 무엇인가 도움이 될 듯 싶던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함몰되어 한반도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국 “선하고자 하면 힘이 세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약한 선은 언제든지 짓밟힐 수밖에 없음을 깊이 깨닫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우리 모두 자각해야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내일 모레는 마지막 주일이다. 교회에서 실시하는 사랑의 헌금함에 얼마를 넣어야 하나 계산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지만, 히야친따의 마음으로, 노혜봉 시인의 마음으로 “허리에 밧줄을 꽉 조여 묶고 하루를 지새워볼 작정”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사랑의 온도가 유독 오르지 않는다는 올해, 우리의 체온이 아직 따뜻함을 깨닫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아듀 2019!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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