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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4) / 2019년 연말, 말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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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4) / 2019년 연말, 말과 생각
  • 박준연
  • 승인 2019.12.27 10: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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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지옥과 같던 1년”

가장 기억에 남는 연말은 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보냈던 그 연말이다. 뉴욕에서 처음 맞는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다. 이스트 빌리지에서도 맨하탄 섬의 동쪽 끝에 있던 그 아파트 내 방에는 벽에 구멍이 있었다.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낸 구멍은 내가 가지고 간 에어컨에 맞지 않아서 결국 벽에 뚫린 구멍을 금속 패널로 막았지만,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겨울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 이유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나만 겪은 일은 아니겠지만, 로스쿨 첫 두 학기는 학업으로, 2학년 첫 학기는 졸업 후 진로 문제로 많이 힘들었다. 로스쿨을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거친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을 졸업하였다. 졸업 전부터 그림자를 드리운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로스쿨을 졸업할 무렵에는 영향과 희생을 더욱 늘려가고 있었다. 결국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졸업과 바 시험 응시 직후 일을 시작하기로 했던 회사에서는 예년보다 업무 시작 시기를 많이 늦추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뿐만 아니고 로스쿨 동기들도 겪는 상황이었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있던 나는 더욱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기다리면 예정대로 일을 시작할 수나 있는지, 그렇지 못하면 3년이 넘은 고생이 헛수고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에 뾰족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연말을 보냈다. 게다가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체류 자격 문제도 생기고, 바쁜 로스쿨 생활, 바 시험 준비를 마치고 예정에도 없이 주어진 몇 개월의 시간도 어떻게 써야하는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때 집어든 지역신문 빌리지 보이스의 연말 특집에선 이런 문장이 있었다. “지옥과 같았던 한 해도 이제 거의 끝나니 지금은 파티를 할 때.” 매년 쓰는 문구였는지, 경제 불황의 영향을 크건 작건 모두들 체감할 때여서 쓴 문구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조금 위안을 받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성공의 비결은…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연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많이 바쁘게 보내고 있다. 늘 바쁘다, 쉴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변호사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클라이언트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변호사로서의 본분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이 많은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로스쿨 졸업한 직후, 업무 시작 시기가 늦춰진 것도 결국은 금융 위기로 경기가 침체되고, 취직 예정이었던 회사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신입 변호사가 할 일이 부족해서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언제나 할 일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도 않다.

올해 몇 번인가 회사 선배 변호사들과 어떤 자세로 업무에 임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남다른 비결은 없었다. 대 선배 변호사는 일을 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면서 바쁜 중에서도 꼭 운동을 하고 식생활에도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다. 또 팀 내에서 싫은 소리를 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잘 하는 선배, 동료를 보고 어떤 부분을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침 이런 얘기도 다른 선배와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좋은 부분, 내가 절대 피해야 할 나쁜 부분을 남한테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의 정체성은 쉽게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또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 싶다

일이 많아지고 그 부담도 커지면,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한 상황인데도 늘 즐거워 보이고, 또 팀원들에게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 선배 변호사에게 그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어떤 업무 과제를 통해 성취해야 할 목적이 있는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역시 이해한 다음, 그 목적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러한 과정을 여러 번 경험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안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하는 판단력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단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고, 더 여유를 가지고 더 즐겁게 하는 것을 내년 2020년의 목표로 삼으려고 한다.

공원의 토라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는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이른바 지역묘(community cat) 시스템인데, 중성화 수술을 마친 고양이들이 공원을 거처로 삼아 생활하면 인근 주민,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과 물을 챙겨준다. 나는 가방에 작은 캣푸드 봉지를 넣어다니다가 출퇴근길에 공원을 지나다 고양이들을 만나면 캣푸드를 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치즈색 태비 고양이 토라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기 전 이른 아침에 길 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보면 먹을 걸 달라고 야옹야옹 보채기도 해서 친해졌다. 날씨가 궂거나 또 추워지기 시작하면 마음 한 구석의 걱정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이 공원에 사는 게 수 년째이고 태풍이나 한파도 한두 번 겪은 것은 아닌데다 날씨가 궂으면 근처 상점에 피신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일기예보도 모르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지낼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올해 도쿄엔 늦은 가을까지 태풍이 지나갔다. 그 직후엔 출근길을 멀리 돌아서 공원을 기웃거리는데, 그때마다 토라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오늘은 어떤 캣푸드 가지고 왔는지 좀 내놓아봐, 이렇게라도 말하는 듯 야옹야옹 다가오는 것이다. 밖에서 사는 것이 고단할텐데도 능청스럽기만 한 고양이를 보면, 고달픈 생활이라도 조금 힘을 내봐야겠다는 용기가 난다.

오늘도 비둘기를 키우며

도쿄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시절 세미나 수업의 필드트립에서 부 활동, 그러니까 과외활동으로 마술부에서 활동한다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내가 읽던 문고본 책을 가지고 최근 익히는 마술이라며 서투른 마술을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까이에서 마술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신기하기만 해서, 대단하다는 감탄을 연발했다. 그리고 마술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었다. 마술부실은 엄청날 것 같다는 내 얘기에 그는 별거 없다면서 덧붙였다. 부실에서는 비둘기를 키워. 그리고 신입생들이 돌아가면서 비둘기 모이를 주고.

기회가 있으면 이 이야기를 써먹을 정도로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화려한 마술의 뒷편에도 비둘기를 키우는 일상의 노력이 잊기 마련인데, 마술만 보면 이런 일상을 잊기 쉽다. 이런 평범한 진실을 잊어버리는 일 없이, 성실하게 비둘기를 키워나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좋은 한해였건, 그저 그런 한해였건, 지옥 같은 한해였건 마무리하고, 잠시 한 숨 돌리고, 또 다시 시작할 때이다. “The year from hell is almost over. So let's start over and have a happy new year.”

박준연 미국변호사 
이메일: jun.park@lw.com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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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농장주 2020-01-07 06:09:3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ㅇㄹㅇ 2020-01-06 23:56:04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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