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5 / 공익성과 자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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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5 / 공익성과 자율성
  • 이용훈
  • 승인 2019.12.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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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br>
이용훈 감정평가사

오랜 만에 큰 딸과 그의 진로를 놓고 대화했다. 대입까지 학업에 매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사, 국내외 가리지 않고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확인했다.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고루고루 잘 하는 타입,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고 봤다. 해외 나가서도 봉사하기 가장 좋은 직업은 의사로 보이는데, ‘괜찮아?’하니, 마다할 이유는 없단다. 그래서 가배정하듯 딴 생각이 들기 전까지 의대 가는 것으로 협의했다.

공공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은, 물욕보다 명예욕을 높이 사는 인간 본연의 속성이지 싶다. 생계의 퍽퍽함에 찌들면 무슨 명예냐 하겠지만, 일단 먹고 살게 되면 명예를 생각하고 보람을 찾는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내가 사회에 국가에 또 인류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뿌듯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렇다. 전문성과 자율성 외에 공익성이라는 단어는 가슴 설레게 한다.

다행히 감정평가사협회의 추천을 받아 감정평가를 수행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평가 의뢰가 대표적이다. 다분히 사적 영역에서 협회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최근 주택금융공사는 안심전환대출 수 만 건을 시급히 평가하느라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협회에서는 평가법인 등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 산재한 부동산을 평가하도록 다리를 놔줬다. 담보평가 일감을 거저 줬는데 공익성 운운하느냐고 보겠지만, 안심전환대출은 딱 직원 인건비만 건질 정도의 저 수익성 물건이다. 평가업자로서는 굳이 참여할 이유 없는데,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하자는 협회 측 부탁에 모두가 힘을 보탠 것이다.

보상평가와 공시가격을 평가하는 일이 대표적으로 공익성을 들먹일 수 있는 업무다. 평가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정하냐?’ ‘부적정하냐?’의 문제다. 따라서 평가자는 운신의 폭도 있고 재량도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재량을 일탈할까봐 감정평가사에 대한 견제장치가 촘촘하다. 협회에 적정성 심의를 요청하고 감정원에 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감정평가의 적정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적정성과 타당성 조사에 대해 당사자는 전문가의 자율성이 침해받고 통제받는다고 느끼겠지만 일반론에서는 ‘관리’와 ‘지도’에 불과한 것으로 가볍게 본다.

경기도 한 곳의 공공주택지구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공공주택지구에서 협의보상평가액의 격차가 커 재평가 사유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몇 개월 사업이 지연됐다는 지적이었다. 여기서 감정평가사 간 의사합치가 되지 않아서, 즉 우리들만의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두 독립성의 충돌인가? 아니면 감정평가 본연의 공익성과 감정평가사의 사익 간 충돌인가? 1천억 원의 보상금이 지급되는 사업이 1억 원의 용역수수료가 지급되는 감정평가에 의해 발목 잡혔다는 비난이 일면, 감정평가업계로서는 이런 오비이락이 없다.

또 얼마 전 LH는 감정평가사협회를 방문해 3기 신도시 보상평가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보상평가액이 사전 추정한 보상금을 넘어서 나올까 하는 걱정과, 한 공공주택지구의 협의보상평가 불협화음으로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은 사태가 이번에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시에 보상금이 풀려 주택시장에 유입되고 주택가격을 끌어올리지 않을까 하는 정부의 우려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상의 영역에서, 감정평가사가 추구하는 자율성은 ‘적정가격’을 찾아내는 것이고, 놓치지 말아야 할 공익성은 과다보상과 과소보상의 지적에서 자유로운 ‘정당보상액’을 짚는 일이다. 보상지구에서는 요즘 소유자가 똘똘해졌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똘똘한 외부인이 더 많아진 것이다. 너무 자극적일 수 있지만, 대규모 사업이 개시되면 콩고물을 얻으려는 각종 용역업체가 정글에서 벌어지는 시체파티를 방불케 하는 장사진을 친다. 법률과 세무, 건설과 철거, 평가와 컨설팅, 운영과 각종 외주업무를 보는 곳 등이다. 그들의 업무수주 단계에서 소유자는 부추김을 당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누가 ‘공익성’을 논하겠는가? 감정평가사는 외주 용역업체 중 유일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소유자들의 추천을 받을 수 있는 협의보상평가에서 특정 몇 개 업체에 소유자들의 추천이 몰리는 이유는 생각해 봄직하다.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이유는, 홍보에 계속 열을 올리고 추천과 소개가 끊이지 않고, 현장 브리핑을 워낙 잘해서일 수 있다. 그런데 1억 따내려는 자가 1천 억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이 날아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공익성의 색채를 스스로 옅게 하는 일, 그것은 언론사가 언론사를 위해 기사를 쓴다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공익성을 그 어떤 시대보다도 내팽개친다고 지탄을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익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공익성을 이유로 자율성은 박탈될 수 있다. 감정평가사 모두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고 있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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