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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황교안 대표의 빛바랜 삭발, 오시영의 “정오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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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황교안 대표의 빛바랜 삭발, 오시영의 “정오의 빛”
  • 오시영
  • 승인 2019.09.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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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수영을 배우지 못한 자는 물에 빠졌을 때 살겠다며 발버둥 친다. 발버둥 칠수록 더욱 물에 가라앉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의 이치를 몰라 더욱 발버둥치는 슬픔이 있다. 2019년 9월, 대한민국은 발악적 정치(發惡的 政治)의 화면으로 가득하다. 필자의 눈에 비치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한 줄 평은 “발악적 단발의 허무성(虛無性)”이다. 이외의 다른 평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단발(斷髮)은 단발(單發)일 때 상징성이 있다. 斷髮이 연발(連發)이 되어 버리면 단발 스스로 희화화를 자처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단발은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처절함이 있어야 한다. 저항으로서의 단발, 즉 삭발은 미용을 수단으로 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남자 삭발의 처절함은 바리깡으로 이마의 중심부에서 머리 뒤통수를 향해 머리 중심부를 가로질러 단숨에 거칠게 깎아 나갈 때 실감나고 현실적 절박감이 있다. 바리깡이라는 일본어가 우리말화 되어 여전히 바리깡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음 또한 통탄스럽지만,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머리 깎는 기계” 정도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이발기”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바리깡이라는, 쓰고 싶지 않은 저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의 고교학창시절은 빡빡머리 시대(빡빡머리가 굴종을 강요했던 일제 강점기의 유물이었음은 지금도 필자를 슬프게 만든다)였다. 하지만 멋내기에 골몰하던 일부 남학생들은 완전한 빡빡머리를 싫어하여 2부머리, 3부머리라고 하여 머리카락을 2-3미리 정도 남기고 깎는 이발을 하였다. 물론 빡빡 미는 이발보다 이발비도 비쌌고, 또 상대적으로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길어 보이므로 선생님들의 단발의 타겟이 되기도 하였지만, 빡빡 밀어버린 머리로 살기 싫었던 학생들 중에는 위와 같은 고급(?) 이발을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당시 훈육선생님은 아예 바리깡을 들고 다니면서 그런 비싼 이발을 정성들여 한 학생들을 아주 처절하게 응징하였으니, 바로 머리 중심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내어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남학생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머리 한 가운데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리는 폭거가 얼마나 반인권적 행위인지 비난에 비난을 가하겠지만, 그때 당시는 “에이, 재수 없네.”하는 정도에서 저항이 그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그 처절한 머리카락 잘림의 시대였던 고교시절을 마친 순간, 우리 젊음은 장발의 세계로 들어가, 60년대 전파된 미국의 히피문화와 함께 젊음의 상징이 되었고, 당시 독재권력의 서슬퍼런 칼날에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까닭에 다시 박정희 정권은 장발단속과 미니스커트 단속에 나섰으니, 아마 당시 기준으로 하면 지금 대한민국 모든 남성과 여성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매일 숙식을 해야 할 처지나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다.

효경(孝經) 개종명의(開宗明義)에는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고 하여, 공자가 제자 증자에게 효의 근본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선생 공자의 사상은 “효란 덕의 근본으로,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으로 이를 손상하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이렇게 몸을 세워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편안케 하고 드러내는 것이 효의 완성이며 이런 자세로 임금(국가)을 섬기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생각으로 머리를 감히 자른다는 것은 결국 효를 모르고 국가에 대한 충을 모르는 것이 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에 이어 몇몇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이 릴레이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황교안, 그의 단발은 단발의 처절성과 거리가 먼 희화화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삭발 결기의 처절함을 스스로 깎아먹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정치적 삭발은 능숙하고 세련된 이용사를 불러 멋진 머리깎기 기술을 총동원하여 머리를 예쁘게 깎는 예술적 행위가 아니다. 삭발은 “내 목을 치는 죽음” 이외의 다른 수단이 없음을 정적에게 각인시키는, 자신의 정치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최후의 결기여야 한다. 그 마지막 결기가 웃기는 개그가 되어버릴 때 “삭발은 결기가 아닌 스스로를 죽이는 죽음의 행위로 전락”해 버린다.

우선 조국 법무부장관은 이십여 명의 국무위원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한 명의 국무위원 임명에 대한 저항으로, 그의 사퇴를 촉구하며 100명이 넘은 국회의원을 구성원으로 둔 제1야당의 당대표가 죽음 직전의 최후수단인 삭발을 단행하는 것은 너무나 비대칭적이다.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저 땅바닥으로 패대기치는 자기비하의 극한행동으로 자기 권위의 추락일 뿐이다. 제1야당 대표로서 제1여당의 정치적 책임자인 대통령과 정치적 동등한 위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야 할 대인의 모습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슬픈 자화상의 모습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지휘하고 있는 수십 명의 국무위원 중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하여 제1야당 대표라는 이가 대통령과의 대등한 정치적 지위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것은 겸손함이 아닌 어리석음의 진수일 뿐이다. 자중하였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삭발 과정 역시 삭발의 처절함과는 먼, 가을햇살 속 단감이 익어가는 듯한 “예쁜 나이든 동자승 한 명”을 출가시키는 연출이었음이 한없이 아쉽다. 미용기술이 뛰어난 미용사를 일부러 불러 옆머리부터 예쁘게 커트질하는 자상하고 섬세한 삭발과정을 보여준 것은 시중의 아낙네나 필자 같은 평범한 아저씨들의 한가로운 오후의 이발 모습과 다름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티브이를 통해 생중계된 삭발의 순간은 그렇게 아름답게 방영되는 가을사진의 한 컷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삭발은 분함과 억울함의 격정적 분노와 저항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바리깡으로 머리 한 가운데를 거칠게 순식간에 잘라나가야 하고, 그 모습 또한 평생 바리캉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같이 저항하는 동료의 거친 손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막기술의, 분노의 표출이어야 한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의 삭발과정은 세련된 미용사의 정성스러운 옆머리 커트로 시작하여 수시로 잘린 머리카락을 털고, 가운데 머리를 조금씩, 아끼듯 잘라나가는 조심스러운 예술행위였으니, 그리고 그것도 옆머리를 완전히 치고, 머리 윗부분은 이부머리나 삼부머리쯤 되게 이발하였으니, 필자에게는 학창시절 이부머리, 삼부머리를 하며 빡빡머리 친구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려 했던 몇몇 친구들의 득의양양한 얼굴을 갑자기 떠올리게 만들어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94년 김홍집 세력은 갑오경장의 근대화개혁을 실시하였다. 같은 해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국내적으로 동학혁명의 횃불을 잠재우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로 인해 동진정책에 불안함을 느낀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연합하여 소위 삼국간섭사건(1895년)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 침략 정책이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최후수단으로 을미사변을 일으켜 배일세력의 핵심지지세력이었던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조선 백성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분노하였고, 소위 국모 시해에 분노한 백성들의 반일투쟁의식이 점차 고조되었으니, 어찌 보면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 우리 국민이 일본제품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는 지금 형국과 유사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건을 기만적으로 처리한 김홍집 내각에 대한 조선 백성들의 불신도 점차 깊어져 갔다.

1895년의 을미사변을 통해 다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일본은 친일파였던 유길준, 조희연 등을 내세워 제4차 김홍집 내각을 구성한 후 조선에 단발을 강요하였고, 결국 유길준, 조희연 등이 고종을 압박하여 단발령을 발령토록 한 후 고종은 당시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로 하여금 “내 머리를 깎으라.” 명령하여 단발하였고, 곧이어 유길준 내부대신이 태자의 머리를 깎았다. 이처럼 단발은 일본의 조선 통치의 한 수단으로,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조선의 유교사상을 허물어뜨리는 수단으로, 조선인의 가치체계를 붕괴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당시 김홍집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의정이었고, 고종에 의해 선포된 대한제국의 제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일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외국을 국가대표로 방문하는 등 국제적 감각에 탁월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내각에서부터 4대 내각까지 참가하여 계속하여 국정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면 그의 정치적 수완 역시 대단히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종은 단발령 명령 다음 해인 1896년 2월 11일 일본의 살해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고, 그곳에서 총리대신 김홍집, 내부대신 유길준,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군부대신 조희연을 을미4적으로 선포하고 거기에 법부대신 장박을 역적으로 지명하여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눈치 챈 유길준, 조희연, 장박 등은 일본으로 피신하여 죽음을 면한 후 결국 일본의 조선 침탈에 알게 모르게 기여하는 친일 행각을 벌였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김홍집만은 자신은 역적이 아니라며 고종의 역적처형 명령에 대해 결백을 밝히겠다며 자신의 출정을 만류하는 가족을 뒤로 한 채 고종을 배알하러 나섰다가 친일파 정병하 농상공부대신과 함께 길거리에서 붙잡혀 광화문으로 끌려가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삭발 후 개최된 자유한국당 제2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옛날에 율 브리너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더 멋있나?”라고 물으며 “제가 머리가 있었으면 훨씬 더 멋있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웃었다. 물론 같이 있던 이들도 모두 웃었다. 율브리너는 머리를 면도기로 빡빡 민 민머리 스타일로 유명한 세계적 영화배우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율브리너는 자신의 스타로서의 아이덴디티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민머리 스타일을 고수하였지, 자신의 저항적 결기를 드러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그런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유명세를 유지하기 위한 영화배우로서의 율브리너와 자신을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다시 말해 반대 상황의 극대치점에 있는 사람을 자신과 비교대상으로 삼으면서 “누가 더 멋있나?”라고 묻는 황당한 의식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삭발을 “율브리너라는 유명스타의 연출된 모습”으로 가치상실을 연상케 하는 우매함을 보이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오래전 발표한 “정오의 빛”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동자승이 부처님 귀에 대고 물었다/ 부처님은 왜 항시 웃으세요?// 부처님이 대답했다// 이놈아/ 네가 내 귀를/ 간지럽히니 웃지” (전문, 시집 ‘여수’에 수록, 황금알 간). 짧은 시다. 오래 전 현대시인 100선집에 선정되어 수록되기도 한 시다. 배불뚝 부처님의 여유와 어린 동자승의 천진스러움이 가을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픈 필자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두 까까머리 노승과 동자승이 어우러져 조화될 것 같지 않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평화를 노래하고 싶었던 필자의 속내가 있다. 동자승의 머리깎음은 저렇게 순수해야 한다. 부처님의 머리깎음에는 저런 어린 아이의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밝은 웃음으로 반응하는 너그러움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게 세상 사는 재미이고 평화이고 예쁨이다. 죽임이 아닌 살림의 미학이다.

세상을 자꾸 살벌해지게만 만드는 황교안 대표의 삭발과 이어지는 자유한국당 구성원들의 삭발 릴레이를 지켜보며, 목따기 직전의 최후의 결기보다는 패스트트랙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치 생명을 옭죄고 들어오는 검찰의 수사망에 대한 자신들에 대한 수사의 느슨함을 비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조국 법무부장관 몰아내기(조국 법무부장관의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이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심심찮다)를 통한 검찰 조직에 대한 협력의 메시지전달,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는 총선출마희망자들의 간절한 구애몸짓, 어떻게든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아 발전적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정략적 반대의 검은 그림자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발, 아니 삭발은 목숨 끊기만 뺀 마지막 분노의 표출이어야 한다. 분노하려면 제대로 분노하라, 자꾸 가벼워지지 마라, 정치인들, 당신은 결코 새털이 아니다. 새털처럼 행동하면, 정말 새털 되어 날아가고 만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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