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1 / 감정평가의 못된 관행, ‘은휘’(隱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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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의 감정평가 산책 181 / 감정평가의 못된 관행, ‘은휘’(隱諱)
  • 이용훈
  • 승인 2019.08.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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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br>
이용훈 감정평가사

내부고발자와 공익신고자.

『공익신고자보호법』,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이들을 보호한다. 법의 보호날개도 사각지대를 덮진 못한다. 그래서 ‘의인’의 험한 길과 ‘범인’의 편한 길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 ‘1급기밀’ 엔딩 크레딧은 영화 결말과 달리 관객을 씁쓸하게 했다. 영화가 끝난 직후 스크린 자막을 통해 제공되는 영화 제작과 관련된 상세 정보인, 배급사, 제작사, 감독, 주요 연기자, 제작진 따위를 소개하고 마쳤어야 했는데, 굳이 이런 말을 섞었다. ‘내부고발자는 자의반타의반 현 직장에서 나왔다.’ 영화는 흐뭇한 결말을 줬지만 현 직장을 떠난 공익신고자의 현실은 또 다르다는 말처럼. 숨기려는 자는 처벌받아야 하지만 들추려는 자가 왜 내상을 피하지 못하는 것일까.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제7조는 감정평가서의 심사와 관련된 조항이다. 내용이 이렇다. “감정평가법인은 제6조에 따라 감정평가서를 의뢰인에게 발급하기 전에 감정평가를 한 소속 감정평가사가 작성한 감정평가서의 적정성을 같은 법인 소속의 다른 감정평가사에게 심사하게 하고, 그 적정성을 심사한 감정평가사로 하여금 감정평가서에 그 심사사실을 표시하고 서명과 날인을 하게 하여야 한다.” 심사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규정이다. 외부로 표시되는 것은 ‘법인’명의의 보고서지만, 보고서의 최종 책임자는 서명한 감정평가사다. 여기에 심사평가사를 끼워 넣었는데, 생산라인의 책임도 묻고 품질관리실(QC)도 책임을 나눠지라는 의미다. 혹시 평가서에 문제가 생기면, 평가서의 적정성을 다투는 사람 입장에서도, 평가자와 심사자 양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의 기록 중, 예수의 사후에 시신을 수습하는 자의 행방이 있다.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예수가 소환되고, 취조 받고, 사형 언도받고, 처형될 때까지, 그를 따르는 제자 한 명이 숨죽이고 있다가 뒤늦게 시신은 챙기겠다고 용기를 발휘했다는데, ‘무서워서’의 종전 단어는 은휘(隱諱)였다.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할 때 사용한다. 부자라고도 했고 신분이 꽤 높았다는 기록도 있어, 어수선한 시국 잠시 소나기 피하자는 심사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증권사, 회계법인 등 사업체 deal 담당자의 투자설명서는 잊을 만하면 메일함을 찾아온다. 거기에 M&A 매물로 나온 업체의 ‘Investment Highlight’ 페이지를 통해, 제품의 가격경쟁력, 원가절감요소, 독보적인 기술력, 이월결손금을 통한 미래 과세소득 절감 효과를 내세워, 매력적인 사업체임을 부각시킨다. 왜 회생절차에 들어갔는지 연혁도 짧게 소개되긴 했다. 그래도 인수희망자에게 정작 말하고 싶은 건, ‘과거는 과거일 뿐, 빛나는 미래가 있어요.’다.

감정평가서는 많은 가격 자료를 담고 있다. 찾고 찾은 질 좋은 자료들만 넣었을까 싶겠지만, 뺄 건 빼고 선별해서 실었다. 역설적이게도 부실한 감정평가서에서 가장 담기 꺼리는 자료가 있다. 적정한 시세를 나타내는 최근, 최 인근 거래사례 또는 평가 선례다. 그걸 사용해서 가격을 도출하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저 먼 곳의 가격자료를 포착해서 굳이 그걸 적용하고 있다. 이게 단순히 고가평가의 문제일까.

둘 다 한국의 대기업인 동종업계 A사와 B사의 입사를 저울질하는 취준생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두 회사의 상대적 우열은 선명하다. 연봉, 처우, 회사의 장래성 등만 고려하면 족하다. 반면, 국내 A사와 해외 B사, 업종도 상이하다면, 앞선 고려사항 외에 따져볼 게 많아진다. 과연 해외에서 일하는 게 국내 잔류보다 괜찮은지, 해외에서 결혼 후 자녀들 키우는 건 어렵지 않은지, 인종 차별은 없는지, 음식은 맞는지, 국내로 들어와야 할 때마다 경비부담이 크지 않은지 등등. 토지를 다른 토지와 비교하여 평가할 때 환경조건이나 접근조건 등은 바로 옆에 있는 토지와 비교할 때는 신경 쓸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원거리 토지와 비교할 때는 어떻게든 주변 환경이나 접근성 등을 보정해야 하는데, 정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줄곧 대치동에만 살았던 학부모한테 ‘평촌 교육환경은 어때요?’ 묻는 것처럼.

질 좋은 자료를 쓰지 않고 숨기고 다른 자료를 채택하는 건 조작 가능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조작인 것으로 밝혀져도 조작의 범위는 또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 자료 선택하지 말라는 게 아니겠는가! 자료를 아예 기재하지 않는 ‘은휘’의 문제보다 질 좋은 자료를 기재하고 그것을 선택 안하는 것도 피곤할 것이다. 이유가 궁색할 테니까. 그래서 감정평가서의 심사자는 늘 ‘은휘’하는 자가 숨긴 질 좋은 자료가 어디 있는지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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