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22)-친일본부재증명(親日本不在證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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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22)-친일본부재증명(親日本不在證明)
  • 강신업
  • 승인 2019.07.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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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1950년 2월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J. R. McCarthy)는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미국은 이후 수 년 동안 이 논란으로 들끓었다. 심지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딜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 정책까지 공산주의와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배층인 보수 강경파가 전시 총동원체제로부터 전후체제로 순조롭게 체제를 재편성하고 헤게모니를 잡고자 의도적으로 일으켰던 공산주의자 사냥, 이를 일컬어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 부른다.

매카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격화되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 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의 6·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 국민으로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기승을 부리자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조차 공산주의자로 몰릴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심지어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은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걸었다. 매카시즘은 예술계와 언론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낳았고, 할리우드 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수십 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그런데 70년 전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이 태평양을 건너 2019년 대한민국 한복판에 다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7월 13일 민중봉기를 부추기는 노래 “죽창가’를 잊고 있었다”며 친일 논란에 불을 붙였다. 18일엔 “‘좌냐 우냐’가 아닌 ‘애국이냐 이적이냐’”라고 하더니 20일엔 “일제 징용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까지 했다. 조국의 발언이 나오자 친일이냐 반일이냐는 논란이 불붙었다. 한쪽에서는 감정적 반일을 선동하고 정부 비판 세력을 친일로 낙인찍으며 국민을 편 가르는 내용이라고 조국을 비판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국의 발언을 지지하며 조국을 비판하거나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라는 날선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이런 편가르기를 더욱 부추켰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21일 “경제 한·일전에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친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이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안 증액을 막는 것을 ‘신친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민경욱은 대변인은 24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근처 영공을 침범했는데 일본놈들이 자기네 땅에 들어왔다고 발광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못한 문재인 대통령! 그대야말로 친일파 아닌가"라고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뿐 아니라 "선대인께서 친일파였다고 하던데 무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되는 분께서 그래서야 되겠는가"라고 적어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그 가문까지 친일 프레임으로 가두겠다는 의사를 노골화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늘 협력과 갈등의 관계에 있었다. 때로는 협력관계보다 갈등관계가 더 부각되기는 했지만 양국은 상호 이웃국가이자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로서의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 노선과 문재인 정부의 친북민족주의 노선이 맞부딪히더니 드디어 난데없는 친일논란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불거진 것이다. 친일논란의 시발점이 어디에 있든 간에 최근의 친일논란은 오랫동안 계속된 좌우의 헤게모니 싸움을 ‘친일이적’과 ‘반일애국’으로 바꿔 놓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지속되면 조만간 정계는 물론 경제계나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까지 ‘친일본부재증명’을 요구하며 자신의 경쟁 상대를 친일로 묶기 위한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오명을 쓰고 정통성과 인권을 무시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공산주의자 사냥인 매카시즘이 전후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듯이 이른바 ‘친일분자사냥’인 조국시즘이 대한민국을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호히 말하건대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정치권도, 국민도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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