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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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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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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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


요즈음 Renaissance Man이라는 용어를 많은 이들이 즐겨사용한다. 르네상스적 교양인, 우리말로 하면 팔방미인이라고 의역될 수도 있는 단어이다. 현대는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법학, 의학, 미술, 음악 등 모든 분야에 다방면으로 통달했던 것처럼 현대가 그런 전지전능한 사람들,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고 있다는 상징적 단어이다. 한 때 박사라고 하면, 모든 것을 아는 넓을 박이 아니라 제 전공 이외에 다른 분야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엷을 박()이라며 놀리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박사이면 통하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지식의 공유화가 이루어졌고, IT산업의 발달로 정보와 통신, 예술과 과학, 생활과 기술이 접목되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통합적 산업체제로 접어든지 오래이다.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리모콘으로 통제되고, 인공위성의 위성 수신을 통해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한 분야에서만 전문가가 되어서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으니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대인들은 갈수록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신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르네상스(Renaissance)는 부활이나 재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 리나시타(Rinascita)라는 단어에 어원을 둔 프랑스어이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중세 기독교시대에서 절대자인 하나님중심사상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격의 재발견이라는 대명제를 전제로 학문과 예술의 새로운 도약이 이루어진 시대를 상징한다. 오죽하면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를 중세암흑시대라고 혹평했을까? 신이 모든 어둠을 몰아낼 것이라고 믿었던 시대를 역사가는 중세암흑시대라고 명명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또 있을까마는, 르네상스는 인본주의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현대는 위와 같은 인본중심의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빗대어 완벽한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르네상스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해 내었고,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에게 완벽을 강제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인본주의의 극단이 또 다른 신을, 인간 밖에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에게 요구하며 인간을 괴롭히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눈 꼴이 되고 말았다.

 
한미 FTA협상이 서울에서 진행 중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 FTA를 반대하는 이들은 온몸을 비로 흠뻑 적시며 이를 막겠다고 나서고 있고, 정부는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한미FTA를 체결하여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상호간의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고 접점을 찾기가 힘들다. WTO체제는 모든 것의 자유소통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자유소통은 너와 나의 경계의 벽을 허물고,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흐름을 지향한다. 이게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이다.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경계의 벽이 허물어진 곳에는 경계의 더 넓은 강이 흐르고, 많은 쪽은 더욱 더 많아지고, 적은 쪽은 더욱 더 적어지는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더러는 그 흐름에 편승하여 덕을 보기도 하지만 또 많은 부분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고 더 더욱 쪼그라들고 비참해지고 만다.


이러한 형국 속에서 세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르네상스맨을 요구하고 있고, 르네상스맨으로 거듭난 자는 수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지만, 낙오된 자는 언제나 절벽의 한 모서리에서 추락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


현대는 모바일 폰의 천국이고, 이는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을 가능하게 된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의 가르침보다 모바일 폰으로 전송되는 인터넷 지식이 앞장서고 있고, 예배당에서 가르쳐지는 신의 말씀보다 모바일 폰에서 울려나오는 메시지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에는 뿌리가 없고, 너와 나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연결선이 없다. 모두가 각자이고 모두가 따로일 뿐이다. 전원을 끄는 순간 모두는 단절의 광장에서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데 세상은 르네상스맨을 요구하고 있다.


페니 마샬 감독의 작품 중 1995년도에 개봉된 르네상스맨이라는 영화는 졸지에 실업자가 된 주인공 빌 라고가 우여곡절 끝에 신병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구해 수업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배우 중 가장 키가 작은 대니 드비토가 주인공 빌 라고 역을 맡아 신병훈련소에 소집된 인간쓰레기 같은 저질의 생도들에게, 문학의 문자도 모르고, 세익스피어 세자도 모르는 생도들에게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가르치며, 그들의 인격을 변화시켜 가는 내용이 중심이다. 뒷골목에서 열심히 라는 말보다 포기해 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듣고 살아온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은 교관이 그의 열심을 조롱하지만 그는 성심성의를 다하여 결국에는 그들을 변화시키고 훌륭한 신병들로 거듭나게 한다.


르네상스맨, 모든 것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엔터테이너이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 적자생존을 강요하는 한미FTA협상을 지켜보며,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닮아가야 할, 되어져가야 할 내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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