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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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2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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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쓰리 쿠션과 나비효과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독도를 중심으로 한 한일간의 외교마찰일가? 국군포로 및 납북자를 비롯한 북한핵문제일까? 계속해서 평가절상되는 환율문제 및 끝없이 치솟는 고유가문제일까? 얼마 남지 않은 5ㆍ31지방선거일까? 현대자동차비자금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및 경기침체문제일까? 독일월드컵경기준비일까? 김대중 전대통령의 6월방북문제일까?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성폭력범 및 살인범 등 치안부재문제일까? 판교 및 강남일대를 중심으로 한 폭등하는 아파트 값 잡기일까? 참으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일이 없다.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긍정과 부정의 모든 현상들이 다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말하라면 심심하지 않는 나라, 결코 심심해질 수 없는 나라, 아니 짜서 더 이상 목으로 삼키기에 힘든 상태의 나라라고 말을 해도 과히 심할 것 같지 않다. 짜디짜서 고혈압환자가 넘쳐나고 동맥경화증환자가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소금장사가 소금 안 팔린다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회, 그게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그렇지만 그 중 하나, 오늘의 대한민국에게 가장 큰 파문을 가져올 사건을 꼽으라면 “현대ㆍ기아자동차사의 협력사 전액 현금결제 방침” 천명을 천지개벽의 사건으로 꼽고 싶다. 현대차비자금 사건이 빌미가 되어 현대자동차사와 기아자동차사가 여론을 유리하게 호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어찌할 수 없는 일방적 선언이었다고 할지라도 4,700여 중소부품 협력업체에게 그 동안 60일짜리 어음으로 결제해 주던 납품대금을 다음 달부터 전액 현금결제해 주겠다는 선언은 경천동지의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소업체들이 제품을 납품하고 몇 달 지나 정산절차를 밟고, 그 때 비로소 60일짜리 어음을 발행해주니 실제로 납품일에서 자금결제일까지는 넉 달 아니면 다섯 달 정도 걸렸고, 그러다 보니 다시 중소납품업체들에게 납품하는 다른 군소납품업체들의 자금결제는 납품일로부터 6개월 이상이 걸려야 했으니 얼마나 자금 압박을 받아왔겠는가? 자금이 급박한 군소업체들은 이 어음을 사채시장을 통해 어음할인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금융부담은 또 다른 적자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국민의 정부시절 어음제도를 폐지하자는 입법운동이 전개되었겠는가? 결국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힘센 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그 법안 폐지 방침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지만...... 어디 그뿐인가? 일부 자금결제담당 직원들의 조기결제 특혜(?)로 암암리에 뇌물이 오고가는 부정적 연결고리 또한 완전 없지는 않았으니, 이래저래 죽어나는 것은 힘없고 빽 없는 중소납품업체와 군소납품업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현상은 현대자동차회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 및 엘지그룹 등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모든 대기업체들에게 만연했던 현상이었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를 쳐왔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현대자동차회사가 현금결제방침을 천명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 뒤를 이어 삼성그룹이나 엘지그룹 등 모든 대기업들이 줄줄이 그 방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될지 모르겠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납품업체를 쥐어짤 수 있으면 쥐어짜자는 것이 그들의 방침이었으나 이제는 현대자동차사의 이러한 천명에 대하여 다른 대기업들도 여론의 눈치에 밀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여론은 그러한 압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조직력과 무게 중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사의 위와 같은 천명은 우리나라 경제계의 자금결제방식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납품업체들로서는 부품단가가 적어도 5% 이상 인상된 경제적 효과를 얻게 될 것이고, 자금회전에 여유가 생길 것이고, 종업원들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리채 장사를 해오던 소공동을 중심으로 한 사채시장은 위축될 것이다.


오래 전 청년시절, 당구채를 처음 잡았을 때, 쓰리 쿠션을 마음대로 쳐대는 당구 250 정도의 실력을 가진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공을 뒤에서 때리면 앞으로만 굴러가는 물리력의 기본속성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당구, 공이 역으로 가기도 하고, 수없이 회전하며 당구대의 세 면을 여기저기 부딪치며 목표로 삼은 공을 정확히 가격하는 솜씨는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요즘은 티브이에서 종종 방영되는 예술당구 프로선수들의 당구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감탄에 감탄을 하곤 한다. 세상살이는 어쩌면 당구대 위에서 전후좌우를 부딪치며 목표물을 맞춰나가는 쓰리 쿠션의 세상이 아닐까? 한쪽을 치면 어김없이 운동법칙은 다른 곳에 파급영향을 미친다. 이번 현대비자금 수사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현대차의 1조원 사회기금출연이 아니라 협력사에 대한 전액 현금결제 방침의 천명이라고 본다. 현금결제의 파급은 이제 약간 살아나려고 하는, 그러면서도 평가절상되는 환율로 인한 수출감소 및 유가 인상에 따른 부정적 경제 상황을 극복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 틀림없다.


나비효과는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개발한 이론이다.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평양을 넘어 미국 뉴욕에 도달하면 허리케인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는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여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파급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사의 납품업체 현금결제 방침이 우리나라 경제계의 한 마리 나비의 작지만 의미 있는 첫 날갯짓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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