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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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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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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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봄꽃과 기다림의 미학


한창이던 봄꽃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 개나리, 목련을 필두로 진달래, 벚꽃이 만개하더니 봄바람 시샘을 이기지 못하고 꽃잎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 봄꽃들의 특징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꽃들이 튼실한 나무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름이나 가을에 피는 꽃들은 잎이 먼저 핀 다음에 그 사이를 비집고 꽃이 피는데, 봄꽃은 꽃이 먼저 피고 진 다음에 잎이 돋아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봄꽃의 속성을 일컬어 겨우내 참고 참았던 열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라고, 겨울내내 견디기 위해서는 튼실한 나무줄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평한 이도 있지만, 일본의 선승 이큐(一休)는 대표적인 봄꽃인 벚꽃에 대하여 이런 선시를 남겼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그 속엔 벚꽃이 없네/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그렇다. 길고 긴 겨울을 참고 견딘 봄꽃의 생명은 나무 가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부러뜨려 보아도 그 속에서는 벚꽃을 찾을 수 없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우리네 속담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참고 기다리면 저절로 꽃이 피어나니 어찌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꽃 소식과 더불어 2006년도의 예상성장경제지표가 6%대로 진입할 것이 예상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보도되었다. 아이엠에프를 겪은 후 9년째에 접어들고서야 약간의 경제성장이 가시화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길고도 긴 질곡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의 소비지표가 점차 향상되고 있고, 경제전망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라는 보도가 결코 잘못된 소식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유가가 1배럴에 70달러를 넘어서고 있고, 미국과 FTA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무역자유화로 인한 후유증이 생겨나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절약 속에서 적절한 소비를 추구하는 건전한 경제 마인드가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봄꽃이 저절로 피듯이,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고 기다리면 벚꽃이 화사하게 피듯이 모든 것은 참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점이다. 그게 희망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올 모내기부터 북한 평안도 숙천군 약전리 약 240만평 정도의 농지에서 남북 농민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합의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공업 분야에 이어 농업 분야도 협력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남방 및 북방 한계선이 위치한 동해와 서해의 황금어장에서도 함께 어로작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상생의 남북협력을 함께 기대해 본다.


한국 영화의 봄꽃으로 피어난 “왕의 남자”가 112일간의 상영 끝에 지난 18일 공식 막을 내렸다. 관객 동원 1280만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남기고 막을 내린 것이다. 커튼 속에 감추어진 실루엣처럼 동성애라는 미묘한 사회적ㆍ심리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 왕의 남자는 섹스는 남녀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동성애자, 이반의 무리가 평균 4%에 달한다는 통계수치에서 보듯 우리 사회도 어느 사이에 감추어진 봄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동성애가 여론의 전면에 부상하는 것을 지켜본다. 마치 하인스 워드가 혼혈인 문제를 우리 사회에 커다란 화두로 던져놓은 것처럼...... 사실 동성애의 역사는 철학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미소년 가니메데를 유괴한 제우스가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은 여자처럼 곱게 생긴 미소년 가니메데에게 넋을 빼앗겼기 때문이고, 램브란트는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가니메데스의 납치라는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에서 동성애 에이즈환자 역으로 나왔던 변호사 엔드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줄리아 로버츠의 친구로 나왔던 잡지 편집장 조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맨하탄의 유명한 화가로 나온 시몬,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여주인공 르네 젤위거의 친구로 나온 팝 음악가 톰 등 수많은 동성애를 다룬 외화들을 통해 동성애가 남의 나라 문제인 양 쳐다보았으나 이제는 우리 사회에도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기야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동성애자를 정식 부부로 인정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보장해주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소수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봄꽃이 지고 있다. 겨우내 기다렸던 봄꽃이 제 몸 찬란히 피어나더니 어느 사이 지고 있다. 봄의 여운을 채 느끼기도 전에 지는 봄꽃들을 보면서 버스회사에서 버스와 차량 청소 등을 하며 100세가 되도록 81년 동안 단 하루, 그의 아내가 숨진 날만 결석한 채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였다는 아서 윈스턴 옹의 부고를 접한다. 81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퇴직한지 20일만에 운명한 윈스턴 옹의 죽음과 저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봄꽃의 흐트러진 자태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평생을 성실하게 산다는 것, 기다리며 산다는 것, 이반의 무리조차 정식 법으로 수용되는 변화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남북의 화해 협력의 물꼬가 점차 넓어져가고 있다는 것, 우리의 생활수준이 조금씩 향상되어 가고 있다는 것 등 모두가 함께 존재하는 곳이 오늘의 우리 사회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참고 기다리는 것, 성급히 벚꽃 나무 가지를 부러뜨리지 아니하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자세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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