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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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04.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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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까르푸, 그 광장의 문화


까르푸, Carrefour는 십자로(사거리) 또는 광장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프랑스의 유명한 대형할인마켓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3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점한 까르푸는 현재 전국 32개 체인점을 가진 종업원 7천여 명의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대형할인유통업체인데, 까르푸가 국내유통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한 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까르푸가 입점하기 전까지 동네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수퍼마켓의 유통체제가 일대변화를 가져왔고, 선진국의 앞선 유통체제를 배우게 된 우리나라도 이마트, 롯데쇼핑 등 수많은 국내산 대형할인업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까르푸가 한국을 떠난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유통시장을 선점하면서 기세를  떨쳤던 까르푸였지만 한국의 토박이인 이마트 등을 포함한 국내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삼아남을 수 없게 되어 결국 손을 들고 떠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까르푸 인수를 위한 국내유통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예상된 수익을 올리지 못해서 떠나게 된 까르푸의 인수평가액이 자꾸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들어 국부유출을 가져오는 과잉경쟁이라는 등 우려 섞인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롯데쇼핑이나 이마트 등 국내 대형 할인유통업체들은 그러한 비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까르푸를 인수하여 제 몸집만을 키우겠다는, 그래서 국내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으니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까르푸를 통해 없는 물건이 없는 쾌적한 매장, 동네 슈퍼마켓보다 훨씬 저렴한 할인가격으로 믿을 수 있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가정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이로 인하여 동네의 수많은 작은 수퍼마켓들이 골리앗 현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문을 닫게 되어 실직자의 대열에 들어서는 슬픈 현상이 빚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까르푸 등 대형할인유통업체의 등장으로 생산업체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시장경제체제에서 유통업체가 생산업체를 지배하는 유통업체 우위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대형할인매장에 제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는 살아남을 수 있지만, 밉보여 납품이 거절된 제조업체들은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극한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고, 어찌할 수 없이 유통업체가 정해준 납품단가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적자납품을 강요당하는 부조리한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더군다나 대형할인매장은 하루 종일 영업을 하였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 등 낮에 생필품을 구입할 수 없는 직장인들과 야간 영업을 하는 수많은 업체들이 이 할인매장을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도 빼놓을 수 없는 효과 중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대형할인매장의 출현은 이처럼 우리사회의 생활패턴을 180도 바꾸어 놓았지만, 대형할인매장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영세상들을 고사시켜 중산층을 빈곤층으로 몰락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에 수많은 소시민들이 종속되는, 자본종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이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 사회를 커다랗게 변화시킨 까르푸가 한국시장에서 견디어 내지 못하고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한국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영세유통업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재래시장을 현대화, 활성화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고, 영세 유통업자들이 전업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는 우리의 이마트 등 국내대형유통업체들이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역수출되어, 그 곳에서 성공적인 대형할인매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는 세상, 그러기에 외국에 진출한 국내의 대형유통업체들이 앞 다투어 한국의 상품을 진열장에 보기 좋게 진열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물품을 대량판매하는 것은 높은 긍지를 느낄 만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까르푸를 창업한 이가 무슨 의도로 회사 이름을 까르푸라고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단어의 의미 그대로 십자로, 사거리 광장(까르푸 매장)에서 생산자들의 모든 물품이 공급되고, 모든 소비자들이 모여 들어 물품의 유통과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서양의 도시를 여행해 보면 도시 한 가운데 광장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개된 넓은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합의의 문화가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도시에는 광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이는 토론과 합의도출을 위해 전체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일은 과거의 광장 역할을 인터넷이 대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 한국인도 본격적인 광장의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저력이 결집되어 대형할인업체의 대명사로 불리는 까르푸를 두 손 들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때 한국의 유통시장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포효하던 까르푸의 퇴장을 지켜보며, 제발 우리 유통업체들이 무리하게 높은 가격으로 이를 인수하겠다고, 제 닭 잡아먹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부당한 국부유출을 조장하지 않도록 광장의 지혜를 모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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