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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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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할 것을 집단강요하는 황당한 사회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우리 헌법재판소는 1991년 4월 1일 민법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가 규정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가 포함되는 한 위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 판결은 동아일보사 발행의 월간잡지 여성동아(1988년 6월호)에 게재된 미스코리아 김성희씨에 대한 명예훼손기사에 대하여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한 김성희씨가 동아일보사와 동 신문사의 대표이사이자 발행인인 김병관씨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함과 동시에 훼손된 명예회복을 위한 적당한 처분으로 사죄광고를 일간신문에 게재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 동아일보사와 김병관씨 등은 명예훼손 부분에 대하여는 금전으로 손해배상할 것을 인정하면서도 법원이 판결로서 사죄광고를 명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본인의 본심에 반하여 사물의 시비와 선악의 판단을 외부에 표현하게 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19조(양심의 자유)의 한 내용인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21조(언론ㆍ출판의 자유) 제1항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민법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는 위 헌법 조항에 위반되어 위헌이라는 이유로 위헌신청을 제기하여 나오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불법행위(명예훼손 포함)에 대하여는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하면서 동시에 민법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가 금전배상과 함께 예외적으로 침해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원상회복적 구제수단으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여태까지 법원은 그 적당한 처분으로 사죄광고를 일간신문 등에 게재하도록 명령을 하여 왔고 이것이 용인되어 왔으나, 생명권이나 신체권의 침해 즉 살인이나 중상해를 입힌 경우에도 사죄강제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유독 명예훼손의 경우에 사죄광고를 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19조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하다며 여기의 양심이란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은 물론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ㆍ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면서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다른 나라의 헌법과 달리 양심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와 별도로 독립하여 규정한 우리의 헌법취지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심의 자유와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인 인간의 내심의 영역에 국가권력의 불가침을 인정하여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지이며, 우리나라가 1990년에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구제 규약(이른바 국제인권규약 B규약) 제18조 제2항이 규정한 스스로 선택하는 신념을 가질 자유를 침해하게 될 어떠한 강제도 받지 않는다는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본다면서 사죄광고제도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여 비행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는 자에게 본심에 반하여 깊이 "사과한다.” 하면서 죄악을 자인하는 의미의 사죄의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것으로 국가가 재판이라는 권력 작용을 통해 자기의 신념에 반하여 자기의 행위가 비행이며 죄가 된다는 윤리적 판단을 형성 강요하여 외부에 표시하기를 명하는 한편 의사ㆍ감정과 맞지 않는 사과라는 도의적 의사까지 강제하는 것이 되어 사죄광고의 강제는 양심도 아닌 것을 양심인 것처럼 표현할 것의 강제로 인간 양심의 왜곡ㆍ굴절을 가져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형성을 강요하는 것이 되고 침묵의 자유의 파생인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금지에 저촉되어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의 제약(법인의 경우 그 대표자에게 양심표명의 강제를 요구하는 결과)이어서 위법하다는 이유로 위헌판결을 하였다.


최근 한나라당 소속 최연희 국회의원이 동아일보사 여기자에 대한 취중 성추행사건에 대하여 동아일보 기자 등 122명(성추행죄는 친고죄로 피해자인 여기자 이외에는 고소권조차 없다)이 집단으로 최연희 의원을 형사고소하는 한편 그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하면서 국회의원직 사퇴압력을 가하고, 수많은 여성단체 및 시민단체, 언론기관 및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그에게 사죄하고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사죄광고를 강제하는 것은 침묵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 및 진의 아닌 사죄를 강요하여 이중인격자를 만들게 되어 헌법에 위반된다는 획기적인 위헌 판결을 받아낸 동아일보사 소속의 직원들로서 과연 할 수 있는 타당한 행동인가 의문이 생길 뿐만 아니라 이중잣대를 적용하여 선행행위와 후행행위가 모순되어 금반언(estoppel)의 원칙에 부합한 행동인가 싶어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남에게 잘못하면 사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인격자의 취할 태도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집단으로 그에게 사죄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위 위헌판결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또 한 번 내심에 반하는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되어 또 다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가장 올바른 해결방법인 해당 당사자끼리 손해배상이나 또는 다른 적당한 방법을 통한 합리적 해결을 조용히 지켜보고 기다려줄 줄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때 나서지 않으면 언제 나서느냐는 듯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남의 일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니, 처음의 본질적인 문제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허깨비들의 난장춤판만 남아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있으니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제는 당사자들끼리 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는 평범한 진리,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냉정함과 합리성이 배고플 뿐이다. 이거 또 나의 이런 글에 대하여 누군가 사죄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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