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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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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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1.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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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우리는 지금 각개전투 중

 

2006년, 오늘의 한국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역동성과 조급증의 각개전투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외아들을 군에 보내 놓고 보니 내가 30년 전 군대생활 하던 때보다 훨씬 군에 대해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추운데 감기나 걸리지 않았는지, 나쁜 상사를 만나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하지만 잘 있다는 수신자 부담 전화를 수시로 받으면서 군의 보안유지를 위해 군사전화를 받을 때마다 “군사보안, 통신보안”이라고 외쳐대던 내 옛 모습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병영생활이 많이 좋아졌구나 싶어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도 가슴 깊이 묻어나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이 적어 보내며 효도를 다 할 것을 다짐하는 종이편지를 거의 받아보지 못하니 한편으로는 아쉽기만 하다. 30여전 예산부족으로 일인당 몇 통씩으로 제한된 무료군사우편을 통해 한 통이라도 더 많은 편지를 보내기 위해 편지 쓰지 않는 동료전우들이 오히려 고맙기조차 했던 시절이 있었다. 군에 가면 효자 되지 않는 아들이 없다는 말은 아들이 구구절절이 써 보내는 편지 속에서 느끼는 기쁨일 텐데 그런 편지를 받아볼 수가 없으니 전화개방이 한편으로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하다.


30년 전, M1이라는 거의 사람 키 만한 소총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그 무게에 짓눌려 연병장을 뛰거나 총을 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자대에 배치되어 칼빈이라는 M1에 비해 가벼운 총을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칼빈도 낡고 오래되어 사격적중율이 별로였으니 괜히 사격 못한다면서 부대원 모두가 사격조교에게 기합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대 말년에 가서 전방부대에 배급된 M16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살상무기였는지 모른다. 군 생활 중 동료전우들과 함께 각개전투훈련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이유 없이 먼지 나는 연병장을 구르고 뛰고, 자동차 타이어를 찢어 만든 목표물을 발로 차고 대검으로 찌르고, 철조망 밑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며 구슬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훈련 중의 땀 한 방울이 전투 중의 피 한 방울이라는 교관의 외침을 귀로 스치며 땀을 많이 흘려 어지러워지면 생소금을 먹어가며 염분을 보충하던 극기훈련이 새삼스럽다. 이라크전쟁에서 최첨단과학기기를 이용한 초고급정밀무기가 수없이 전쟁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전쟁 중에도 전쟁터를 뛰어가는 병사의 모습을 그리 많이 보기 힘든 전쟁으로 변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작전수행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군인들의 각개전투뿐이다. 군인 한 명 한 명마다 자신의 개인적 능력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하고, 적진을 돌파하여 임무를 완성해야 하니, 포복에서부터 구보, 사격, 육탄전 등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싸워나가는 것이 이름 그대로 각개전투이다. 이미 각개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아군도 없고 적군도 없다. 오직 살아남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긴장감과 자신의 개인적 힘만을 의지해야 하는 처절한 백병전장의 모습은 참혹할 수밖에 없다. 맞닥뜨리는 적을 이유도 모른 채 개인적 감정도 전혀 없으면서도 무조건 총으로 쏘아 죽여야 하고 대검으로 찔러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이 글의 초두에서 밝힌 것처럼 어쩌면 2006년 벽두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조급증과 역동성의 각개전투를 치열하게 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국민이 전투병이 되어 다른 전국민을 상대로 각개전투를 벌리며, 나만이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더 인내하고 양보하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현대사회의 풍요는 오히려 빈부간의 심한 격차로 갈등의 폭만 증폭시키고 있다. 사학법 투쟁이 갈수록 혼미해지고 있고, 노사간의 대립이 첨예하다. 시민사회가 보수와 진보 양진영으로 갈려 너 죽고 나 살자는 극단적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번 뱉어낸 말, 정말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한 마디 말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옛 선인들이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하라고 했겠는가마는 누군가 뱉어놓은 말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맹신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세상에 절대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절대라는 것이 절대 없다.”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단식투쟁으로 몸을 상한 지율스님의 도룡농 사수라는 한 마디 말이 절대가 되어 고속철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억울하게 죽은 시위 농민의 죽음 앞에 경찰청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한 마디 말이 헌법보다 더 무서운 절대가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합리성이라든지 인과관계율이라든지 우리가 사회학적으로 검토하고 연구해온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말 그대로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경고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대대적인 인간애 중시의 철학 회복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아주 어린 아이에서부터 팔십 노인에 이르기까지 염치와 예의를 찾고, 나만이 아닌 너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회복해야 한다. 각개전투가 아닌 협력과 상생의 아름다움을 실천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그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먼저 양보할 수밖에...... 내가 먼저 욕심을 줄일 수밖에...... 그대는 동의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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