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0) /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 및 제재 동향과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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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0) /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 및 제재 동향과 시사점
  • 박준연
  • 승인 2019.06.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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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 및 제재 동향과 시사점

최근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 은행, 아프리카 개발 은행 등 다자개발은행(Multilateral Development Banks)에서 투자, 원조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참여 기업의 부정, 부패를 조사하고 제재를 가하는 동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다자개발은행의 제재는 제재의 상호 집행(cross debarment)을 통해 더욱 강력해졌다. 즉, 한 다자개발은행에서 1년 이상의 제재(debarment) 조치를 결정하면 상호 집행 협약의 당사자인 다른 다자개발은행에서도 동일한 제재 조치를 집행하게 되므로, 다자개발은행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부정 조사의 대상이 되어 제재를 받지 않도록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 및 제재 결정 과정은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집행 절차 등 국내 절차와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상이한 측면도 많기 때문에 절차와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또한, 다자개발은행 원조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입찰 준비 시기부터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중요성도 커졌다.

다자개발은행의 관할권

어떤 근거로 다자개발은행이 부정을 조사하고 제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변호사들이나 관심을 가질 이론적인 질문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다자개발은행이 지원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 입장에서는 입찰 및 사업 수행 과정에서 다자개발은행과 직접 접촉한 일이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제한적인데 어떻게 다자개발은행이 기업의 부정행위를 조사하고 또 제재를 결정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다자개발은행이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할 때는 지원 수혜국 정부로 하여금 사업 참여 기업이 다자개발은행의 부정행위 규제에 대한 관할권에 동의하고 또 조사에 협력하도록 하는데, 이와 같은 계약에 의해 다자개발은행이 부정행위를 조사, 제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찰 서류, 사업 참여시 계약 내용을 검토할 때는 이런 관할권 규정이 통상적인 범위에 비해 지나치게 광범위하지는 않은지 여부도 포함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사의 개시

다자개발은행에서는 기업 내부자나 경쟁 업체가 익명으로 부정행위를 제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부정행위와 관련된 정보를 프로젝트 참여 기업으로부터 자진 신고제도(voluntary disclosure program)를 통해 제공받아 다른 부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다자개발은행과 각국 정부와의 조사 관련 협조가 점점 긴밀해지면서, 미국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조사를 개시하는 사례도 있다.

제재의 대상이 되는 행위(sanctionable practices)

다자개발은행의 제재 대상이 되는 행위에는 뇌물의 공여, 수수 등과 관련된 부패 행위(corrupt practice), 제출 서류 조작 등의 사기 행위(fraudulent practice), 강압 행위(coercive practice), 담합 행위(collusive practice), 그리고 조사 방해 행위(obstructive practice)의 다섯 가지가 있다. 이 중 조사 방해 행위는 부정행위는 아니며, 다자개발은행의 조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증거를 없애거나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지칭한다는 면에서 미국법 상의 사법 방해(obstruction of justice)와도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다자개발은행에서 일부 제재 판정 내용을 공개하고 있으므로, 제재 대상 행위의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과거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조사 절차

부정행위의 조사 개시에서 제재 내용 확정까지 이르는 절차는 다자개발은행간의 부정 조사 절차의 협의와 조화(harmonization) 절차를 통하여 상당 부분 유사한 절차로 수렴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제재 대상 행위가 발생했을 증거의 우위(preponderance of evidence)가 있다고 판단하면 조사 보고서를 제재 담당관에게 송부한다. 이때 증거의 우위 기준은 위반의 가능성이 51% 이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충족되므로, 형사 사건에서 적용되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보다는 훨씬 낮은 수위의 증거 수준이다. 조사 보고서는 위반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뿐만 아니라 조사 대상 기업에게 유리한 증거(exculpatory or mitigating evidence)도 포함해야 한다.

제재 담당관은 보고서와 관련 증거를 검토하여 제재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하면 이를 조사 대상에게 통지한다. 조사 대상인 기업이 이의를 제기하면 심사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심사가 완료되기 이전에 다자개발은행은 대상 기업에게 6개월 간의 임시 입찰 참여 제한(temporary suspension) 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다자개발은행의 제재 절차는 국내법상의 형사 절차와 다르므로, 무죄추정의 원칙 역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자개발은행이 설립한 제재 위원회에서 심사를 담당한다. 제재 담당관이나 조사 대상 기업측 모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구두 심리(hearing) 역시 요청이나 필요가 있는 경우 개최된다.

제재의 결정

제재의 내용에는 경고부터 무기한 해당 기업이 다자개발은행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permanent or indefinite debarment)까지 다양하지만, 이전에 제재 이력이 없는 기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과되는 제재는 3년의 조건부 참여 제한 후 검토(3 year debarment with conditional release)이다. 3년 제재 기간의 경과 후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와 지배 구조가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다자개발은행이 지명한 컴플라이언스 감독관(monitor)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또한 제재는 위반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기업, 개인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의 지배(control)하에 있는 관련 기업, 해당 기업을 지배하는 관련 기업에게도 미친다. 제재 사실은 일반에 공표되고, 1년 이상의 제재는 해당 다자개발은행뿐만 아니라 그 다자개발은행과 협정을 맺은 다른 다자개발은행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집행된다.

협의를 통한 해결(negotiated resolution agreements)

다자개발은행에서는 미국 형사 사건의 유죄인정합의(plea agreement)와 유사하게,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제재 수준, 위반과 제재 수준을 은행 측과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절차(negotiated resolution agreements)를 통해 제재 조치 결정이 요구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도 한다. 조사 대상 기업은 시간과 변호사 비용이 소요되는 공식 절차를 거쳐 사실 관계, 위반 여부를 규명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사실 조사를 마친 후에 은행과 협의를 하여 조사를 종결할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내 소송을 통한 사법 심사의 가능성

다자개발은행의 제재 결정에 대해 사법적 심사를 요청하는 국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전 미국 판례는 다자개발은행은 다른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미국 재판으로부터 면제(immunity)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면제가 상업 활동(commercial activity)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통해, 다자개발은행의 제재 결정에 대해서도 미국내 소송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중요성

이와 같이 부정 조사가 개시되면 관할권과 조사 절차, 제재 조치 결정 절차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통해 조사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은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사업 관행을 적절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에이전트 계약: 다자개발은행의 조사뿐만 아니라 FCPA 관련 조사에서도 많은 위반 사례가 현지 에이전트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현지 에이전트 채용 전에는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하고, 계약 체결 시에는 부정행위를 비롯한 위법 행위를 하지 않도록 서면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성공 보수(success fees): 에이전트 등에게 기업이 지급받을 보수의 특정 비율로 성공 보수로서 지급하는 계약은 에이전트가 뇌물을 공여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성공 보수를 지급할 경우 그 필요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입찰 서류: 많은 부정 조사가 입찰 서류 기재 내용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입찰 서류 준비 부서에서 유념하고, 사소한 내용이라도 사실과 다른 기재가 없도록 확인해야 한다.

-관련 기록: 입찰 서류 외에도 사업 관련 기록은 다자개발은행의 조사를 받는 만일의 경우 제출을 요청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기업 내부에서도 조사에 대응해 사업 관련 이메일, 기타 서류에 기반하여 사실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다자개발은행의 부정 조사는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미국의 FCPA 위반 조사와 다른 국내 조사와 비교하면 절차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자개발은행이 20여 년의 입찰 참여 제한을 결정하여 다른 다자개발은행도 상호 집행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소에 위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구축이 필요하다. 조사가 개시되면 전반적인 조사, 제재 결정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응해야 한다.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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