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산과 바람, 고인돌, 조양호 회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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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산과 바람, 고인돌, 조양호 회장의 명복을 빈다
  • 오시영
  • 승인 2019.04.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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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모든 산봉우리는 바람이 친구다. 바람이 없는 산은 이미 평지다. 까닭에 산이라면 바람을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항시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갑게 맞이한 바람은 조각칼이다. 칼바람이다. 산봉우리를 갉아 심장을 더듬고, 산기슭을 갉아 발끝을 뒤집어 놓는다. 모든 산모퉁이의 굴곡진 곳을 갉고 또 갉는다. 산봉우리와 바람의 싸움에 승자가 있을까? 바람이 산을 갉아도 잠시일 뿐, 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한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동안은 그렇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바람에게는 시간이라는 신이 한 편이다. 승패를 가릴 수 있는 유일한 심판자인 시간과 함께 하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고,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시간을 건너뛰는 존재냐 하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까닭에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 유일한 신인지도 모른다. 하나님도 시간으로 존재하는 신일 것이다. 인간의 유한을 건너 뛰어 인간의 뒤를 이은 인간을 통해 인간의 앞에 있는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신이기 때문이다. 산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다. 바람은 어떤가? 사라진 듯하다가 다시 나타나 생멸(生滅)을 반복하니 스스로 영생한다 생각할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이 지난 8일, 70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 하였다. 백세시대라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진 이가 칠십에 생을 마감했다니 많이 아쉽기도 하다. 재계 10위권 안에 머물던 한진그룹이 재계 13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 겨우 2년 전 일이다. 세계경제가 둔화되면서 물동량 증가 추세가 멈추자 상대적으로 운송업 분야에 주력해온 기업의 특성 때문에 기업 성장이 둔화된 측면도 크지만, 국내적으로는 장녀가 관련된 땅콩회항사건을 비롯하여 차녀 관련 물병투척사건, 부인 관련 갑질 폭력 및 폭언사건 등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기업에 대한 여론의 호된 비판이 겹치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위원장을 맡았다가 최순실과 충돌이 생겨 졸지에 준비위원장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야 했고, 문재인 정권 들어 위와 같은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겹치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로 대표이사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이와 같은 경영상의 문제에 개인의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되어 아까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 하였다. 엄숙한 죽음 앞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던 날, 세상은 그를 먹잇감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한진그룹 계열사 주가가 무려 5% 이상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여 주가변동 폭이 무려 10% 가까이 되는 불안장세를 보였다.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한진그룹 경영 승계 문제가 불거지자, 그의 퇴진 등을 둘러싸고 한진그룹 계열 기업을 짓누르던 경영 불안감이 사라졌다거나 더욱 심해졌다거나 등 상반된 평가가 나오면서 주식 투자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아가 조 회장의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약 2천억 원 이상의 상속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속인들이 주식을 내다 팔 것이라거나 아니면 자금 마련을 위해 사내 축적되어 있던 이익금을 현금배당할 것이 예상된다면서 배당에 유리한 우선주가 급등하는 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단기급등 현상이 끝나면 결국 시가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주식 공매도 현상이 나타나, 비싸게 팔아 돈을 마련한 후 나중에 쌀 때 사서 주식을 조달해 주면 된다는 등 예상되는 시나리오 같은 주식투기 증상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세상은 이처럼 냉정하다. 조양호 회장이 살아생전에 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촉수를 뻗어 기업의 부를 창출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은 또 다른 주식 투자자들의 투기인지 투자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의 룰 속에서 하나의 공격목표로 변해 버리는 현상을 지켜보며 물고 물리는 세상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과다소유문제가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미선 후보는 남편이 자신의 이름으로 주식을 투자한 것이어서 세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답변하였지만, 여야 의원 가리지 않고 주식 보유가 비정상적이라며 헌법재판관 자격이 있는지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여야 간에 반복되는 고위 공무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부동산 투기 문제와 주식 투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와 투기 문제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 그래서 부자가 되라는 경제체제이다. 반면에 공산주의는 같이 일해서 능력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분배하여 평등사회를 이룩하자는 경제체제이다. 사회주의경제체제는 중국이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이론으로 공산당의 지배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자는 체제이다. 사실 순수한 자본주의체제나 공산주의체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국가가 어느 정도 민간 경제에 개입하는 사회주의경제체제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익과 사익의 적절한 충돌 조절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계획경제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혼합경제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주식에 투자하여 이익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이다. 물론 일과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주식투자에 열을 올린다든지(그것은 그 기업에서 징계나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된다) 기업의 비밀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 투기를 하는 것이면 비난받아도 마땅하다. 그 경우 그에 상응한 형벌 체계에 따라 형사상 불이익을 주면 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주식투자지식을 갖추어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합리적 투자를 한 것이라면 설령 그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더라도 세금 등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다면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부동산 투기와 투자의 경계가 과연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돈이 되는 곳이면 자금이 몰리게 마련이다. 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부에서도 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 다만 지나친 과열이 국민경제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세금정책 등을 통해 적절히 통제하면 된다. 차명거래를 막고, 불법적인 분양 왜곡을 막고, 개발 정보를 뒤로 빼내어 선행적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도록만 막으면 된다.

이번 기회에 국회에서도 인사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및 투자의 경계, 주식 투기와 투자의 경계에 대한 원칙을 정립하였으면 한다. 무엇이 투기이고 무엇이 투자인지 그 경계를 정해 놓지 않은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비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정치인들을 희화화할 뿐이다. 게임에서 룰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룰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미선 후보의 주식과다보유 문제가 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되는 것을 보며, 공직자는 재산이 적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공직자라고 해서 재산이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라면 어떻게 돈을 벌든 이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이나 시인의 “고인돌 그 아래”라는 시 한 편을 본다. “고인돌 아래 잠든 이 누구인지// 기억이며 소리며 향기를 비끄러매어/ 날아가지 않도록/ 덮개돌 얹어 놓은, 저// 햇빛과 햇빛 사이// 아늑한 곳의 묘실,/ 우뢰와 번개와 눈보라에도 끄떡없게 괸/ 화강암의 생각들/ 두런두런 내 말소리 발자국 소리에// 삼천 년 돌의 시간을 뚫고/ 시간 여행자 되어, 순간 이동으로/ 고려산 산기슭 이 빈 들에 오셨으면 싶은// 죽음의 입구를 지키는 고인돌.// 다시 태어나/ 밤 속 기억도 빛이 들어 반짝이는 어둠이게” (전문, 시집 ‘유리 자화상’에 수록, 시와표현, 2016년 간).

고인돌은 괴어 있는 돌이라는 우리말이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발굴된 고인돌에는 사람뼈나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토기와 석기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한이나 시인은 고인돌 그 아래에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고인돌은 그 지석묘의 규모에 비춰 볼 때 당시의 권력자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한이나 시인은 고인돌 아래 잠든 권력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그 무덤을 만들 때 당시의 영웅의 기억과 생각과 모든 평가를 함께 묶어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고인돌의 무게에 짓눌려 그 죽은 이의 생각과 기억과 향기가 어디로 빠져나갈 수가 없었을 것이기에 그 묻힌 자를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우뢰와 번개와 눈보라에도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진 저 고인돌의 영속성을 생각하며 문득 그 죽은 이를 불러내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진지성을 내보인다. 하지만 갇혀 있는 고인돌 속 주인은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기에 우리더러 상상하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현대인들, 특히 유명인들은 컴퓨터 기록칩에 일거수일투족이 영원히 새겨져 두고두고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영웅 아닌 평범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기록되어 남겨지는 세상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 병원의 출생기록에서부터, 학교생활, 직장생활이 모두 기록된다. 카드사용내역을 통해 어느 곳에서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보았고, 어디를 여행하였는지 모두 생생하게 기록된다. 치료받은 기록을 통해 어디가 아팠고 무슨 약을 먹었는지가 기록된다. 모두 기록되어, 죽는 순간까지 기록되어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이라는 신 앞에서 조금이나마 좋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지 않는가? 한이나 시인이 3천 년 전의 고인돌 아래 묻힌 이를 궁금해 하며 죽음의 입구를 지키는 고인돌을 걷어내고 그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마음인 것처럼, 후세의 누군가가 지금의 우리를 궁금해 하며 기록을 꺼내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생각 없이 내 배 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며 살아가겠지만, 그러다 문득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지 않겠는가? 조양호 회장의 죽음을 놓고 문재인 정권이 무리한 수사로 압박하여 그가 죽었다고 비난하는 정치인들도 있고, 강원도 산불을 놓고 촛불정부여서 산불이 많이 난다고 하는 이도 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래도 경건해져야 한다. 죽은 이는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이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존재하게 되었다. 까닭에 산 자들은 죽은 이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죽은 자에게서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점은 나쁘니까 고쳐야겠다고 배우고, 이렇게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조양호 회장은 미국에서 마지막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 그가 평생 키워온 기업 대한항공의 비행기에 실려 그의 운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자식들이 제대로 기업을 이어받아 한진그룹 계열의 회사를 사회에 유익하고, 투자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세 남매가 번갈아 보며 보여주던 이해하기 힘든 갑질 행태에서 속히 벗어나 올바른 인격과 품격으로 기업 경영에 나서기를 바란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제 조양호라는 아버지의 위엄마저 사라진 지금, 과연 그들의 지난날 치기스런 갑질에서 벗어나 어른스러운 경영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인데, 모두 지켜볼 일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고인돌이 되어 그들에게 숨어 있는 갑질의 광기를 억누를 수 있는 제동장치가 되었으면 한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모두 경건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도 숨어 있다. 바람이, 산이 모두 시간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까닭이다. 인간이라면 더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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