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태국의 지정학과 외교 : 자유를 위한 자유의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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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태국의 지정학과 외교 : 자유를 위한 자유의 포기
  • 신희섭
  • 승인 2019.04.0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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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한 국가의 음식문화는 그 국가의 지리적 환경을 반영한다. 대륙 문화를 가진 중국에서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려면 손님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정도로 음식을 차려야 한다. 보릿고개가 있던 한국에서 후한 대접은 음식이 남지 않는 것이다. 손님 또한 음식을 다 먹는 것이 예의다. 반면에 빈번한 지진-태풍과 자원부족으로 여러 차례 기근을 겪은 일본은 음식을 여유 있게 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눈으로 즐기는’ 음식을 대접한다. 
   
그런데 다른 국민들끼리 만날 때가 골치 아프다. 중국인에게 초대받은 한국인은 사람이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양의 음식을 대접받는다. 만약 한국인이 한국문화대로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어치우면 초청자나 손님 모두 난감하다. 과식한 손님과 달리 주인은 “모자랐나?” 자책할 수도 있다. 더 심난한 것은 일본인이 중국인을 초대한 경우다. ‘눈으로 즐기는’ 음식이 나오고 중국 문화대로 중국 손님이 음식을 어느 정도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지리가 문화를 만든다. 태국도 지리와 지정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자유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였다”는 것이다. 이율배반,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태국 지정학을 보자. 태국 영토는 51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남한의 5배에  달한다. 태국은 1,645km가 넘는 남북과 넓게는 785km에서 좁게는 12km의 동서로 구성된다. 전국 연평균기온은 28도에 연평균습도는 70%에 달한다. 열대몬순기후로 강수량이 풍부하여 삼모작도 가능하다. 태국에서 벼를 심고 그냥 두면 2m까지 자라 쌀 나무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2018년 기준(USDA기준)으로 연간 쌀 생산량은 2100만 톤, 수출량은 1100만 톤이다. 생산량 세계 6위에 수출량 세계 1위였다. 최근 수출량 1위를 인도에 빼앗겼지만 말이다. 2018년 한국 쌀 생산량 400만 톤 이하와 2018년 북한 전체 곡물생산량이 495만 톤(UN 추산 영양실조나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주민이 1090만 명)과 비교해보면 그 수치가 실감난다. 
   
태국은 다른 자연자원도 넘친다. 천연고무, 주석, 설탕생산 세계 1위. 수산물자원도 풍부하다. 과거 1993년 수산물 수출이 세계 2위일 정도였다. 열대과일이 풍부한 태국에서 ‘아사(餓死)’는 자살이라고 할 정도다.
   
따뜻한 기후, 풍부한 자연자원, 넓은 영토와 농경지, 7천만정도의 인구. 태국을 여유롭게 만든 요인들이다. 태국이 ‘미소의 나라’, ‘여유와 친절의 나라’일 수 있는 이유다. 여유가 자유를 만든다. 태국은 태국어로는 ‘쁘라텟타이’다. ‘자유의 나라’라는 의미다. 이 ‘자유의 나라’라는 국명은 1939년 군원수출신인 피분쏭크람 수상이 예전 국호인 싸얌(샴 혹은 시암)을 개정한 것이다. 또한 태국인은 태국어로 ‘콘타이’나 ‘차우타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란 의미다. 두 가지는 태국의 지향점을 말한다. 
   
태국속담에 ‘부아마이참 남마이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태국인들의 자유지향성을 잘 보여줄 듯하다. 말뜻은 “연꽃을 상하지 않게 하고 물도 흐리지 않게 한다”이다.1) 연꽃을 따지만 그 연꽃을 상하게 하지도 않고 연꽃이 있는 물도 흐리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 마음의 짐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많이 쓴다는 “끄렝짜이”도 태국인의 자유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말은 “다른 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심리”를 의미한다.2) 한국어로 ‘배려하고’, ‘삼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인다. 물론 태국인들의 이러한 자유, 배려의 마음은 국민의 94%가 믿는 불교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춥고 자원이 부족한 동북아시아지역 국가들도 불교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태국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면 종교영향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태국은 외교에서도 자유를 중시한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는 동안 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 이는 ‘대나무외교’의 결과다. 태국은 “휘지만 부러지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외교를 수행해왔다. 이런 외교는 일면 기회주의외교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인 자유를 위해 자유의 일부분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약소국의 고육지책으로 볼 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말해 몸통을 위해 팔다리는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국의 ‘대나무외교’는 역사가 깊다. 13세기 몽고의 팽창시기 태국은 원나라에 의해 권력정치(power politics)를 배웠다.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여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까지 태국은 중국식 힘의 질서를 따랐다. 1512년 서양국가로는 처음 포르투갈과 문호개방을 했다. 이후 1600년대 네덜란드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영국을 통해 역학관계를 조정하기도 했다. 1860년대 이후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인도차이나 점령시기 태국은 영국으로 기울었다. 1893년 영국을 이용하여 영국-프랑스의 ‘태국독립 합의’를 유도하기도 하였다. 이때 태국은 프랑스에게 자신의 속국이었던 캄보디아와 6개의 섬을 넘겼다. 영국에게도 말레이반도의 4개 주를 넘겼다. 하지만 독립은 지켜냈다. 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의 승기가 확실해지자 태국은 연합국 편에 서서 승전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중 플레이까지 했다. 군부가 이끄는 정부는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한데 반해, 왕의 섭정은 ‘자유타이운동’이란 반일운동을 통해 미국에게 ‘태국-일본 동맹’이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2차 대전 후 태국은 승전국으로 UN에 가입한다. 이중플레이를 통한 자유 수호. 1942년 수상 피분쏭크람의 말은 이런 태국외교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전쟁에서 어느 편이 패배하리라 생각하느냐? 패배하는 쪽이 바로 우리의 적이다.”3)   
   
자유를 위한 자유의 포기. “팔 하나를 내주주고도 몸통은 지키겠다.”는 생존을 위한 고통스럽지만 전략적 사고. 태국은 약소국에게 ‘유연성’이 중요한 전략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처럼 ‘미소의 나라’ 태국의 이면에는 힘겨운 생존투쟁이 있다. 
   
한국은 태국처럼 유연할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렵다. 첫째, 한국은 지정학 조건이 척박하여 여유가 없다. 둘째, 한국은 민족주의, 유교적 도덕성, 한국전쟁이 가져온 이념대결이 여전히 강력하다. 지정학조건과 관념 모두 유연성과 거리가 멀다. 지정학과 관념은 한국에게 외줄타기 외교를 강요해왔다. 그렇다고 한국에게 반드시 외줄타기 외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강대국간 대결이 심화되어 ‘줄 세우기’를 할 때 한국에게 외교적 대안은 별로 없다. 답보 중인 남북미관계, 미중, 중일 경쟁구조는 한미동맹을 여전히 중요하게 만든다. 하지만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도 한편으로 유연성을 발휘해볼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하고 상상력을 키워볼 수 있다. 
   
그렇다. 스승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주)-----------------
1) 『태국 다이어리, 여유와 미소를 적다』,(서울 : 눌민, 2016)pp.25-26. 
2) 같은 책. 33p.
3) “외교”, 이병도. 『태국의 이해』 (서울: 한국외국어대출판부,2012). 11장.p.192.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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