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정재분 시인의 “묵음”, 욕정으로 이글거리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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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정재분 시인의 “묵음”, 욕정으로 이글거리는 대한민국
  • 오시영
  • 승인 2019.03.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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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대한민국은 지금 벌거벗은 자들의 끊임없는 욕정으로 무간지옥이 되어 버렸다. 인간 타락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만든 지옥애서 이글거리는 정욕으로 스스로의 존귀함을 무너뜨리고 있다. 성(性)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아름다운 삶의 한 과정이다. 성이 있기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 하지만 성이 정제되지 않으면, 성에서 사랑이 없어지게 되면 개돼지만도 못하게 된다. 인간이 본능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타 동물보다 못하게 된다. 최단명 법무차관이었던 김학의 사건은 돈(기업가)과 권력이 결탁하여 선량한 여성을 속여 마약을 투여한 후 집단성추행 또는 수간 등 섹스파티를 벌린 후, 이를 발설하지 못하게 계속 협박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용기로 형사고소가 된 이후에도 당시의 검찰과 청와대가 한 통속이 되어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시켜 무죄 방면한 희대의 권력형 비리사건임이 밝혀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국내 최대의 연예기획사와 소속 가수인 정준영, 승리 등이 연예계 활동을 통해 얻은 헛된 명예와 부를 이용해 버닝썬이라는 환락의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여성 연예인 또는 연예인 지망생들과 팬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자신들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성상납 또는 성매매의 도구로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따르는 젊은 여성들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단톡방 등에서 공유하며 미친 짓을 해 온 과정들이 만천하에 들통 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사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단속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성상납을 하는 등 여기에도 또 다시 권력기관과 유흥업소(연예재벌)의 결탁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도둑을 잡으려는 자들이 더 큰 도둑이 되어 있는 세상,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한 세상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정재분 시인의 “묵음(默音)”을 읽어본다. “썩은 곳을 도려낸다/ 어금니에 씌운 왕관에는/ 묵음의 서식지가 있지/ 과거를 삼킨 소리는 짐짓 비음이다/ 파열의 음이 가려워 긁는 날이면/ 오래 묵힌 시간의 연고를 발라야 해/ 복개된 하천에게/ 별똥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물을 수 없고/ 엄연히 철자가 된 묵음의 유래는/ 역사책에서 찾을 수 없다/ 개미의 긴 행렬이 지나가는 행간에/ 풍문으로 떠돌 뿐,/ 싸이(PSY)의 노래에 P 사운드 없고/ 당신은 철자가 아닌 문장에 새끼손가락을 건다/ 어둠 앞에 선 눅진한 말이/ 말줄임표로 얼버무려도/ 소리 없이 타는/ 촛농은 알아 듣는다” (전문, 시집 ‘노크소리를 듣는 몇초간’에 수록, 천년의시작, 2019년 간).

묵음이 필요한 세상이다. 모두들 이글거리며 타들어가고 있다. 버닝썬 - Burning Sun – 이라는 저 상호가 상징하듯 태양마저 재가 되어버릴 듯 타들어가는, 인간욕정폭발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서 몇 걸음을 더 내딛어야 인간이 자멸하게 되는 것일까? 네가 아는가? 내가 아는가? 현대인들이 극단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탐욕의 포로가 되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이러다 선한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다. 인간 지성이 과연 저 인간 탐욕의 집단 광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심히 두렵기만 하다. 성경에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창세기 18장 이하의 기록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브라함에게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를 보내 인간 욕정으로 타락의 도시가 되어 버린 소돔과 고모라성을, 신의 정의, 아니 인간의 정의마저 사라져 버린 그 성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이 천사에게 열 명의 의인은 있을 것이라며 매달린다. 그들이 있음을 불쌍히 여겨 멸망을 면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의인 열 명에 이르게 된 과정도 참으로 처절하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천사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에 50명의 의인이 있다면 벌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천사가 그러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점차 그 숫자를 45명, 40명, 30명, 20명으로 줄여가며 간청하다가 마지막에 열 명의 의인이 있으면 벌하지 않겠다는 천사의 승낙을 얻어낸다. 처음에는 최소한 50명의 의인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50명의 의인을 제시하였다가 천사가 승낙하자 자신이 없어진 아브라함은 점차 그 수를 줄여 최종적으로 열 명으로 멸망조건을 완화시키지만 결국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당하고 만다. 어찌 보면 화산이 폭발하여 멸망한 것이겠지만, 옛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현상조차 인간의 의로움이 없어지면 벌 받게 되는 당연으로 이해하였다.

저 여섯 번의 흥정, 아니 매달림은 당시의 지성인들의 노력, 애절한 절규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타락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는 멸망의 메시지를 당시 탐욕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 여섯 번 - 이 숫자는 상징이다 – 이나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계속 기록한다. 이렇게 찾아온 천사들을 향해 소돔과 고모라성의 타락한 남성들이 그들과 남색을 하겠다며 내어놓으라고 강요했다고. 이러한 상징어를 통해 멸망의 칼날이 목전에 이르렀음에도 자기 죽을 것을 인식하지 못한, 광란의 정욕에 사로잡힌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만행의 폭주를 비웃고 있다. 수간(獸姦) 또는 남색(男色)으로 번역되는 sodomy라는 단어가 소돔과 고모라성의 소돔에서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학의의 특수강간사건에서도 수간이 등장하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을 먹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정재분 시인은 말한다. 어떠한 묵음일지라도 소리 없이 타들어가는 촛농만은 알아듣는다고. 광란의 미친 짓을 자행해온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묵음이 되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교만에 사로잡혀 행동한다. 실재 지난 몇 년 전에는 그런 거짓 승리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엉뚱하게 피해 여성들만 다른 목적(돈)을 노리고 그런 거짓 폭로를 한 것이라고 광야로 내몰리고, 사건의 본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묵음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썩은 곳을 도려낸다, 어금니에 씌운 왕관에는 묵음의 서식지가 있지”라고 정재분 시인은 통렬하게 지적한다. 아무리 금이빨로 썩은 어금니를 숨긴들 썩은 어금니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폭로한다. 썩은 채로 존재하며 묵음의 서식지가 되어 버린 썩은 어금니 자리는 금이빨이라는 헛된 왕관이 벗겨지는 날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과거를 삼킨 소리는 짐짓 비음이다 파열의 음이 가려워 긁는 날이면 오래 묵힌 시간의 연고를 발라야 해”라고 시인은 감춘 자들이 벌 받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과거를 감춘 진실은 진정한 진실일 수 없기에 짐짓 비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발음되지 못한 채 코맹맹이소리가 되어 디귿도 아니고 지읒도 아닌 마찰음처럼 발음될 수밖에 없지만, 제 스스로 가려워 제 몸 긁어 상채기를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정재분 시인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래서 오래 묵힌 시간의 연고를 발라야 한다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스스로 퇴색해 사라질 줄 알지만, 오히려 발효되어 더 큰 썩은 내를 풍기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시간의 연고를 바르게 된다고, 통증이 더 클 것이라고. 더 큰 불명예와 처벌을 받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복개된 하천에게 별똥별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물을 수 없고, 엄연히 철자가 된 묵음의 유래는 역사책에서 찾을 수 없다”고 범죄자들은, 세상 사람들마저 호도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의 눈에는 다 보이고 들린다. “개미의 긴 행렬이 지나가는 행간에 풍문으로 떠돌 뿐, 싸이(PSY)의 노래에 P 사운드 없고 당신은 철자가 아닌 문장에 새끼손가락을 건다”고 말한다. 그 물을 수 없는 진실을 힘없고 약한 개미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지나가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행간에 풍문으로 떠돌며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싸이의 이름자에 쓰인 P자가 발음되지 않는 묵음이지만, 당신은, 아니 우리는 “철자가 아닌 문장에 새끼손가락을 건다”는 사실을 역사가 기억하고 있다. 묵음(감추어진 거짓)이 되어버린 한 글자에 집착하지 않고 “문장 – 전체적 맥락(드러날 진실)”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파헤치는 것이다. 그래서 정재분 시인은 말한다, “어둠 앞에 선 눅진한 말이 말줄임표로 얼버무려도 소리 없이 타는 촛농은 알아듣는다”고.

진정한 묵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고 있으면 전 국민이 “불가마 속의 참깨”처럼 뜨거워서 어찌할 줄 모른 채 불가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안 들으면 좋을 이야기들, 그것도 이글거리고 혈관을 불태워 맑은 피를 증발시켜버리는 휘발성 열기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이다. 모바일폰으로 상징되는 전달매체의 기능은 날로 발전해 이제 5G시대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저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더욱 빠르고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 위해 통신기기업체들은 회사의 사활을 걸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적당한 느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적당한 고요가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한 것인지 세상은 그 가치를 자꾸 왜소하게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세상의 방향은 이미 묵음을 등 뒤로 틀어버린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 열 명이 있기를 간구하는 아브라함의 지성이 이 땅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는다. 집단지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던 그 집단지성이 왜 촛불광장에서 촛불이 꺼지는 순간 이 땅의 개인에게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집단지성에는 개인 사익 추구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공동의 선을 이루기 위해 사익이 양보되고 절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까닭에 진정한 집단지성은 개인지성이 갖추어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최고의 도덕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영역에서만 발휘되는 집단지성은 물론 그것만으로나마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를 묵음의 고요로 인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집단이성을 이루던 이들이 사적 이익의 대립 앞에서 너무나 쉽게 갈라지고 대립구조를 이루며 갈등을 조장한다. 그러다 보니 사립유치원사태가 발생하고, 정치권에서도 대타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노사 간에도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대표이사 재신임이 부결되었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대표이사에 재선임되지 못한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주식에 대한 주주권행사와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반감이 결합하여 이룩해낸 재벌기업에 대한 또 하나의 촛불혁명이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를 한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추궁이 가능하다는 경종이 되었다. 대부분 적은 주식을 보유하면서도 경영권을 무한대로 행사하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 등 다른 재벌 기업에 대한 사회적 경고도 되었다고 하겠다. 조선일보 사주의 자식들의 패륜행위나 갑질행태, 대한항공으로 상징되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행태 등이 사회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고, 이게 특정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기업들에 상존하는 보편적 행태라는 사실이 여기저기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니 생략한다. 사회적 변혁이 의인 열 명을 간구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집단지성이 발휘되기를 희망한다.

정재분 시인의 “묵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썩은 곳을 도려냈는데, 그리고 왕관을 씌웠는데, 이렇게 외면적으로는 다 감추었는데도 그곳이 묵음의 서식지로 상존한다는 현실인식은 매섭고 날카롭다. 문재인 정부의 2기내각에 구성원으로 지명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자녀들의 진학 편이를 위한 위장주민등록전입, 자녀들의 취업을 둘러싼 세련돼 보이지 않는 선발과정, 사익을 위해 공금을 부정사용한 듯한 의심이 드는 자잘한 쫌팽이 기질, 부동산 취득을 둘러싼 꼼수들을 상용해 온 모습들을 보며 혀를 차게 된다. 사회지도층이 되고자 한다면 좀 어른스러운 삶을 살아와야 하지 않을까? 어찌 한 인간의 삶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일생 동안 묵음의 길을 걸으며 수신제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묵음 수행의 길, 일생 동안 걸어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참으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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