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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0)-범죄가 파괴한 것의 실체와 피해회복의 의미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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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4  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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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기 위해서 공판기일을 속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합의 가능성은 있습니까?”

“합의를 못하면 공탁이라도 해 보겠습니다.”

“피해자들과 연락은 해 보았나요?”

“사실 피고인이, 이 사건도 있고 해서 처를 찾아가기가 조심스러워서 아직 연락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변호인이라도 연락을 해 보던지, 피고인과 적절한 방법을 의논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피해자 1명은 현재 소재파악이 안 되고 있는데 찾아보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피해회복이 안 되면 피고인에게 실형 가능성이 있으니, 꼭 좀 시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실한 그 남자의 국선변호인이 간곡히 청하며 피고인을 위한 변론의 말을 마치자, 법정의 모든 눈이 재판장에게로 쏠렸습니다. 제발 저 국선변호인을 봐서라도 그냥 좀 다음 공판기일을 잡아 주었으면 하고 기대라도 하는 듯이 말이죠.

결국 피해회복 여부를 보고 양형심리를 하기 위한 다음 공판기일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2.
우리는 지난 열아홉 번째 회복적 사법 이야기 - 그 남자의 손에서 칼을 내려놓게 하려면 - 에 이어서 계속, 폭행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죄로 기소된 한 남자와 그의 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혼해서 10년간 살던 처와 불화로 별거하게 되자, 어느 날 처가 일하는 식당을 찾아가, 처의 동료의 뺨을 때리고 칼을 들고 ‘찔러 죽인다’고 협박하고, 처에게도 칼을 겨누며 ‘죽여 버린다’고 협박한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삭제된 조항이지만, 당시에는 벌금형 없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만 처하게 되어 있어, 이 사건에서는 가중하면 50년 이하의 유기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었던 중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지요.

다행히 그가 기소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었고, 이전의 범죄전력도 없었던 터였기에,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만 잘 이루어진다면 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실형만큼은 면하게 하고픈 국선변호인이 ‘합의를 위한’ 시간을 재판장에게 청하였던 것이고요.

그러나 ‘합의’라니, ‘안되면 공탁’이라니, 그게 과연 이 사건에서 가능한 방법인지, 또는 적절한 방법인지 의문스럽지 않으신가요.

3.
여러분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통상 ‘합의’ 또는 ‘형사합의’라는 명목 하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금, 즉 돈을 주거나 또는 주기로 하고,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소를 취하하거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사법기관에 표시해 주기로 하는 약속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합의금은, 피해자가 가해행위로 입은 손해에 대한 일종의 손해배상금 또는 위자료의 성격을 띄는 것으로 법적으로 해석되곤 하고요. 드문 경우지만 합의금 없이 형사합의를 하기도 하고, 형사합의의 내용 중에 돈 뿐 아니라 사과라든지 다른 조건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형사합의가 이루어져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일응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은 피해가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또는 적어도 피해자가 더 이상 피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니 더 이상 피해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거나요. 여기서 ‘볼 수 있겠다’고 표현한 것은, 그렇게 칠 수 있겠다, ‘간주’할 수 있겠다 정도의 의미로 썼습니다.

피해가 소거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는 의미는 결국, 불법의 결과인 피해가 소거됨으로써 적어도 결과불법이 해소되었다는 것이고, 이를 그 불법적 행위를 한 피고인에 대한 양형에 있어서 감경적 사유로 참작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건에서 ‘합의’니 ‘결과불법의 해소’니 하는 것들은 말이 쉽지,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이 사건에서 합의금을 주고 형사처벌 불원의 의사표시를 받는 것을 그 처가 피해회복된 것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합의가 안 되었을 때 돈을 공탁해 버리면 더더욱 피해회복과의 연관을 찾기가 멀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4.
지난 회에 이야기해 드렸듯이, 그 남자는 처와 싸우다가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였고, 처가 진짜로 집을 나가 별거한지 1달이 넘자 처를 찾아가 ‘정리하자’고 말하고는, 막상 ‘그러자’고 하는 처에게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 겁니다.

그 남자와 그녀는 10년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 불화를 겪으면서 관계가 나빠졌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나빠진 부부관계를 되돌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 버린 것입니다.

그가 그녀에게 칼을 들이대고 협박을 하는 ‘범죄행위’를 하였는데, 이는 단지 국가가 ‘흉기 휴대 협박에 의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명명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된 부부간의 관계를 완전히 깨버리고 처의 남편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뜯어내 찢어버린 것입니다. 단지 국가에 대한 법위반, 범법행위가 아니라, 10년간 부부의 연을 맺어 온 처와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랑해야 할 처를 오히려 다치게 해서 깊은 ‘상처’를 준 것이란 말이죠.

이러한 피해를 ‘회복’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피해에 대한 ‘회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어떠한 것들이 이루어져야 과연 그와 그녀 사이의 파괴된 관계가 회복되고 손상된 그녀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손상이, 망그러진 것들이 ‘회복’되어 그 결과불법이 제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남자가 그녀에게 ‘합의금’, 돈을 주면 그녀는, ‘아 네, 이 돈이 손해배상이 되니, 또는 위자료가 되니, 더 이상 당신에 대한 지난번 형사사건은 문제 삼지 않을게요. 저는 이제 괜찮아요.’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그런 합의를 할 수 없을 때, 그 남자가 일방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공탁을 해 버리면 그녀는, ‘이제 이 돈을 찾아서 쓰면 내가 입었던 피해는 사라지겠지. 나는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그 남자와 그녀에게, 남편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아내에게 주는 것,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부부는 서로 부양의무가 있는 것이고 경제적 공동체, 생활 공동체라서, 계속 부부로 있는 한 그녀가 그 남자로부터 돈을 받아도 결국 같은 주머니 안에서 돈을 옮기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보다 문제는, 이제 그 남자의 행위로 인해 깨어진 그 둘 간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아닐까요.

과연 계속 부부로 살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부부의 연을 정리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남자는 자기가 찾아가 ‘정리하자’고 말해 놓고서는 막상 처로부터 ‘그러자’는 말을 듣고 칼을 휘둘렀는데, 그 남자가 과연 처와의 부부관계를 다시 회복해 낼 능력이나 가능성은 있는 걸까요. 관계를 회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지난번과 같은 폭력적 행위나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나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고요.

합의금이나 돈이 아니라, 싹싹 빌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마음이 좀 풀리고 피해회복이 될까요.

그런데 과연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피고인 입장에서 차라리 돈을 주는 것이 쉽지, 사과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칼 들고 협박한 행위는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해도,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양자 간의 악화되어 온 관계와 그동안의 불화, 그 원인이 고스란히 있는데, 그러한 상태에서 과연 쉽게 사과가 가능할까요. 아니, 과연 대화 자체가 가능할까요.

피해자인 처의 입장에서 그녀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그녀에게 어떤 조처들을 해 주어야 남편의 지난 폭력적 행위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어 소거되고 깨진 관계가 주는 현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손해배상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이혼 위자료를 원하지는 않을까요.

그런 그녀를 찾아가 용서와 재결합을 구했는데, 만약 그녀가 또다시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면, 그 남자가 더 화가 나서 혹은 더 절망해서, 더 극단적인 어떤 행위로 나아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녀는 지난번 일로 너무나 놀라고 무서워서 아예 남편을 만나지 조차 못하겠다고 하면, 그저 안 보고 지내고만 싶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적어도 그 상태로만 간다면 과거의 상처는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나아지겠고 피해의 회복도 저절로 이루어지겠지요. 오히려 남편만 대면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면 관계를 분리하거나 단절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관계의 회복이나 피해회복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잘 헤어지는 것도 관계 회복이라고 하면 너무나 형용모순이 될까요.

5.
“하지만 섣불리 피해자를 직접 접촉하려는 시도는 하지 마시고요. 왜냐면 지금 피해자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니까요. 괜히 잘못 접촉하려다가 피해회복은 못하고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일단은 공식적으로 법원에서 연락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선변호인의 청에 따라 공판기일은 속행하겠지만, 법원에서 정식으로 피해자인 처를 양형증인으로 소환해서 그녀의 상태와 의사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녀가 양형증인으로 법정에 나올 의사가 있다고 할 때만 소환하기로 하는 조건 하에서요.

며칠 후 재판부의 참여관이 그녀에게 전화로 소환통지를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형사재판이 열리고 있는데, 법원에서는 재판에서 피해자가 사건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할 기회를 드리고, 재판의 최종 결론인 양형에 관해서 피해자의 의견도 중요하게 고려하여 참작하고자 하니, 혹시 법정에 나와서 말씀해 주실 수 있겠느냐는 참여관의 온화하고 정중한 안내 전화에, 그녀는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자, 그녀는 과연 법정에 나와 주었을까요. 남편인 피고인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쉽게도 지면이 벌써 다 차버려서 다음에 계속 이야기 나누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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