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더불어민주당의 비겁한 밀실 예산 통과,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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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더불어민주당의 비겁한 밀실 예산 통과,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 오시영
  • 승인 2018.12.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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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해마다 이때쯤이면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을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의 원죄 의식을 가장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 빙점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지만, 소설 그 자체로 널리 알려져 일본인 작가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기도 하다. 중학생 시절 소설 빙점을 처음 읽고 일본 소설에 매료되어 당시로는 귀했던 일본 소설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읽기도 했었다. 병원장 쓰지구찌 게이조오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 나쓰에는 부원장 무라이를 사랑한다. 흔한 삼각 멜로 소설일 수도 있지만, 나쓰에가 무라이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에 세 살 딸 아이 루리코는 집 밖에 방치되고, 그러다 유괴되어 살해당한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쓰지구찌는 아내를 벌하기 위해 루리코를 살해한 범인의 딸 요코를 신분을 속인 채 입양하여 나쓰에로 하여금 키우게 한다. 자신을 괴롭힐 목적으로 요코를 입양케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쓰에는 요코를 학대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나쓰에의 학대를 받지만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한다.

장성한 요코의 아름다움에 반한 오빠 도루의 친구인 기다하라가 구애하자, 나쓰에는 집안이 좋은 기다하라와의 결혼을 방해할 목적으로 요코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요코가 음독자살을 시도하여 죽음을 헤맬 때 그녀의 생부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기다하라가 그 소식을 알리려 요코에게 달려와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나중에 독자들의 빗발친 요구에 의해 그녀가 살아나 오히려 나쓰에를 증오하다가 결국 용서하게 된다는 속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아내의 부정과 딸의 피살, 이로 인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남편과 딸에 대한 속죄를 위한 양녀의 입양, 양녀의 신분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망각한 딸의 살인범의 딸에 대한 증오와 복수, 살인범의 딸이라는 폭로에도 사랑을 접지 않는 젊은 연인의 사랑, 복수의 대상이 되어 버린 양녀의 자살 시도와 진정한 신분의 규명에 의한 재생의 기대감 등 세속적 사랑 이야기를 기독교, 특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미우라 아야코는 결핵과 만성 척추염으로 생사를 오가던 중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고,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빙점을 쓰게 되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진정한 복수는 용서에 있음을 빙점은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성탄절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곳곳에 성탄 트리가 설치되고, 크리스마스 점등이 세상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사용료 문제로 모든 상점은 성탄 캐럴을 틀지 않는다. 얼마 되지 않을 저작권료를 아끼려 비싼 돈 들여 설치한 성탄 트리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성탄 캐럴의 사라짐, 이 세상에 소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중 보는 것은 직시 적이어서 당장은 효과가 크지만, 오히려 오래 남는 것은 듣는 것, 즉 소리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잊어도 목소리를 기억하고, 사실 관계를 잊어도 소리를 기억한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소리를 제거해 버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미없다고 게임을 그만둬 버린다. 예수가 이 땅에 처음 왔을 때 “광야에서 외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소리의 위대함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탄절을 앞둔 대한민국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죽어버린 “침묵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상징적이지만, 이 땅에 정의를 외치는 소리가 점차 이해관계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음을 본다.

2019년도 정부 예산안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만의 밀실 합의로 통과되었다. 선거구제도개편안과 예산안을 연계 심의할 것을 주장해 온 나머지 세 야당은 배제되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이에 항의하며 단식에 들어섰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마저 단식에 돌입하였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후보가 난립하게 되면 30% 정도의 득표로도 최고 득표자가 되면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고, 나머지 70%의 국민 의지는 사표가 되고 만다. 이를 막기 위한, 즉 민의를 그대로 반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의 연동형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이미 본보 칼럼을 통해 필자가 밝힌 바 있다. 예를 들어 30%의 유효 득표를 한 정당이라면 국회 의석도 전체 의석의 30%를 할당하는 선거제가 연동형비례대표제이다. 지역구와 정당명부(비례대표) 기재의 의원을 합하여 30%가 되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애초 예상하던 국회의원 정수보다 당선 후 국회의원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역구에서 적게 선출(1등 득표자가 적어서)되었지만, 전국 득표율이 높으면 그 비율의 수만큼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나머지 숫자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야 하므로 국회의원 정수가 늘어나게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는 고정된 반면, 비례대표 수는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 확보가 가능하여 소수정당, 즉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이 쉬워지고, 국민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되는 장점이 있다.

많은 국민들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되면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게 되어 국가 예산이 낭비된다며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한다. 이러한 일부 국민들의 지적을 지렛대로 삼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이해찬 당 대표도 얼마 전 그러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면 감사 및 정책 실현 등에 장점 또한 많다.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연동형비례대표제였음을 상기시키며 단식 투쟁을 시작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이 필요하다. 현재의 당 지지도가 일 년 남짓 후에 있을 다음 총선까지 유지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당 지지도보다 훨씬 많은 국회의원 수를 확보할 수 있다. 거대 여당의 출현을 기대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런 연유로 현재의 정당지지율이 약 4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반수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수 없게 될 우려가 높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기를 겁내고 있다. 다수 야당에 끌려다닐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의 당 지지율이라면 자유한국당 역시 대구 경북 중심의 지역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수도권 등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소극적이다. 이는 언젠가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실패와 보수 세력의 결집을 통해 2년 전의 국민지지율 1위의 정당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희망 섞인 전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지지율 1위가 언젠가 되면 다시 총선에서 과반수 정당이 단독으로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미래당을 살리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다음 총선까지 바른미래당을 궤멸시켜야 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모두 염불에는 정신이 없고 잿밥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번 예산안만의 통과를 보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안은 법정시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법정시한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법정시한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준예산제도”에 의해 전년과 같은 수준에서의 예산집행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법정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3당을 배제한 채 자유한국당의 이익(지역구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추가 배정 등과 같은)을 챙겨주면서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의 이익을 함께 챙기면서 예산안만을 단독 통과시킨 것은 후안무치하기 때문이다. 법정시한을 지키면 좋겠지만, 못 지키더라도 별문제가 없는 예산안, 법정시한을 못 지키는 원인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면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그러한 지연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인데, 그 며칠을 정치적으로 견디지 못하고 거의 야합에 가깝게, 애초 5조 원 정도를 깎겠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달리 겨우 몇 천 억 정도 깎아주면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높이 반영해 준 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나머지 소수 세 야당의 의견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의회주의에도 반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총무와 새롭게 당선된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가 두 단식 중인 대표들을 찾아가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두 단식 대표의 결기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한 단식에는 충분한 정치적 명분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단식해서라도 최대한의 선거법 개정을 이루어내기를 바란다. 소수 야당 대표가 단식해서라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현실이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옳은 방향을 위한 정치인의 결단이라고 본다. 정치권에 찾아든 빙점이다. 얼음이 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촛불혁명의 초심을 잃고 정권 연장을 통한 또 다른 기득권 지키기만을 도모한다면 준엄한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도 촛불혁명과정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자유한국당과의 밀실 합의를 통해 순간의 당리당략을 실현하는 것은 실수 중의 큰 실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의회 구조 속에서는 민의대로 행동해야 하므로 합법적인 합의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게 된다. 대통령중심제이지만,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상당 부분 국회가 통제할 수 있다. 민의대로 의석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정당의 독주도 허용되지 않고, 극단적 반대도 허용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다수의 소수 정당이 난립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한 소수자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게 되고, 소수자들의 권익 또한 일정 부분 국회 권력에 반영되게 되어 극단적 혐오와 질시 또는 분쟁을 예방할 수도 있다. 사실상의 국민화합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말한다. 빙점은 얼음이 어는 온도이지만, 동시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온도라고. 빙점을 기준으로 더 추워지느냐, 아니면 따뜻해지느냐에 따라 더 꽁꽁 얼기도 하고 얼음이 살살 녹기도 한다. 하지만 얼음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얼어붙은 호수는 개별적 사람이 건너편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하지만, 배의 운항을 멈춰 대량적 운송을 불가능하게 한다. 손학규 대표는 항시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 왔다는 것이 필자의 평가이다. 그의 지나친 신중함이 행정을 맡겨 놓으면 일은 잘하지만, 먹이를 먼저 낚아채야 하는 정치판에서는 항시 뒷북을 치게 된다. 그의 신중한 결정에 의해 시작한 단식은 그의 성격상 오래 갈 것이다, 죽음 직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의 선거구제 개편안 회유에 넘어가 손쉽게 단식을 중단한다면 “역시 손학규는!” 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필자는 손학규 대표의 단식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대표가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 선거구제도가 제대로 개정되어, 70년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긋게 되기를 바란다.

선거제도의 개편을 통해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일당 독재의 광풍을 잠재우며, 다른 당이 망하기를 바라며 무한 정치투쟁을 일삼는 정치꾼들을 몰아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진보도 아닌 진보팔이들이, 보수도 아닌 보수팔이들이 설쳐대는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다. 미우라 아야코는 말한다. 최초의 원인 제공자인 나쓰에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요코를 미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요코는 자신을 학대한 나쓰에를 미워하다가 마지막에는 용서하였다고. 남편 쓰지구찌가 자신을 배반한 아내를 벌하려는 것은 아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배반을 하는 것이라고. 빙점은 인간 행위의 정반합을 통해 미움으로는 어느 것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요코의 용서를 통해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추위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정의와 사랑, 따뜻함과 감사의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었으면 한다, 추위가 아닌, 어는 빙점이 아닌 녹는 빙점이기를 바란다. 예수는 말한다, 이 세상에 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바로 정의와 사랑의 소리, 용서와 화해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당신의 성대는 건강한가? 그러면 소리를 내라! 다음 주일에 사랑의 헌금을 얼마쯤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주를 보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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