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비밀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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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비밀의 문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8.12.14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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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에는 언제 겨울이 오나 했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제 속도로 흐르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다.

어릴 때는 1년 중에 장마철과 더불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요맘때를 가장 좋아했다. 6살 때 유치원에서 산타클로스 행사용 선물을 챙겨달라고 보내는 통신문을 엄마와 함께 읽고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던 기억을 근거로 짐작해보건대 산타클로스에 대한 환상이 12월을 기다리게 해준 것은 아닌 듯하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의 12월은 즐겁고 설레는 일들도 가득했다. 거리를 빛내는 트리장식도 좋았고 흥겨운 캐럴도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조잡한 솜씨나마 발휘해 직접 카드를 만드는 것도 즐거운 이벤트였고, 크리스마스의 단골 손님 캐빈도 항상 반가웠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거듭될수록 설렘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차갑고 끈적이는 액체 같은 감정이 들어차는 것 같다. 반대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텅 빈 우물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잠들어 있는 츠네오를 바라보면서 조제가 읊조리던 대사를 떠올리게도 하는 것 같다. 깊은 바다 속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만 하는 조개의 심정이랄까.

대체 이유가 뭘까. 그 해답을 얻으려면 굳이 열어보고 싶지 않은 비밀의 문을 열어야 한다.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해서 모른 척 하고 쑤셔 넣어 둔 생각과 감정, 고민과 두려움을 끄집어내야 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버린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뜬금없는 것 같지만 이 시점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정도의 대스타가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좀 본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퀸 라티파 주연의 ‘라스트 홀리데이’다. 2006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독자들도 이미 본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퀸 라티파가 맡은 역할은 백화점 판매원으로 근무하는 독신 여성 조지아 버드다. 조지아는 기자가 퀸 라티파에 대해 갖고 있던 당당하고 강한 여성 이미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엄청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처음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거리에서 무례하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에게도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움츠려든다. 좋아하는 직장 동료 앞에서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요리를 할 때 재료를 과감히 던져 넣는 일도 조지아에게는 힘든 일이다.

그저 모나지 않게,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던 조지아에게 시한부 선고라는 청천벽력이 들이닥친다.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며 착하게 살아 온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하던 조지아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게 사고를 치기로 결심한다.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저 쌓아두기만 했던 모든 재산을 털어서 스크랩북 속에만 간직했던 꿈을 이루기로.

이후에 생기는 이야기들은 아직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큰 역경을 만나 인생이 뒤집힌 사람의 기적적인 이야기라고 하면 대표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계속 통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바람이, 그리고 누구나 알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진리가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지아는 원래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작은 상자 속에 구겨 넣어 뒀을 뿐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상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어느새 또 다시 찾아온 12월, 독자들의 마음에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목표를 찾고 있을 독자들에게, 내년의 합격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독자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잠시 쉬고 있을 독자들에게, 그리고 기자 자신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꽁꽁 감춰둔 상자를 열어보자고, 그래서 내년 요맘때에는 더 행복해져 있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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