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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전문의 박성근의 마음이야기 (4)
박성근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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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16: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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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정신과 전문의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것이 또 손발까지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 걸리는 거리는 머리로 깨달은 것이 가슴까지 내려가는 거리라고 하곤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것에 하나를 더 보태어 가슴에서 손발로 가는 거리가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두 거리 모두 평생 살아도 다 가지 못하는 긴 거리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 4차 기술혁명이든, 5차 혁명이든 계속 등장한다고 해도, 어쩌면 위의 시간은 더 오래 걸리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더 멀어질지 모른다.

나의 역할을 내 로봇이나 나랑 똑같이 생긴 아바타가 대신 해주면, 나는 이제 머리로도 깨닫고 싶지 않고 그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편하게 즐기다 떠나는 것이 인생의 일 순위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기였던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처럼 법조인을 다루는 드라마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 그리고 잊힌 듯 하면 또 어디선가 시작한다고 하는 의료인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어쩌면 머리로 깨달은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전문인, 머리부터 손발을 넘어 온몸이 일관되게 열정과 따뜻함으로 가득한 전문인을 기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바람을 반영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자주 스스로도 물었던 질문, 즉 “기술은 좋은데 인성이 별로인 의사에게 진료를 볼래? 아니면 그 반대에게 진료를 볼래?”라는 질문이 마치 아이에게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라고 질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슬픈 질문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기술과 인성이 나뉠 수 없어야 진정한 전문인이 아닐까 하는 새로운 질문이 나이가 들수록 생기는데, 그래서 더 내가 하는 일의 무게감을 느끼곤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거나 더 풍성하게 살도록 돕는 직업과,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역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억울함을 풀어주고 나아가 더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기 위한 직업이 사실은 이름만 다를 뿐이다. 거의 같은 목적으로 똑같은 사람들을 다른 순간에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심, 초지일관 등의 얘기를 많이 하곤 하지만, 그것들을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삶에서 너무 단순한 초심과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달까지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린 후 끊임없이 살피며 기지국에서 0.1%라도 경로를 이탈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상이 걸리고 다시 그것을 원래 착륙 예정지로 방향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우리가 가졌던 정의롭고 따뜻하고 순수했던 그 초심을 초지일관으로 유지하면서도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을 최대한 잃지 않고 보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쩌면 그 초심이 나를 너무 빗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삶을 더 복잡다단하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 본질적인 면에서는 그 초심이 화두가 되고 질문이 되어 내게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전문직을 택할 정도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참는 거라면, 그것은 어리석을지언정 단순한 삶일 테니까...

비난도 조롱도 그 이면에는 그 이상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럴 때가 많다. 그러나 타인의 아픈 사연을 듣고 돌보며 수고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초심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정직하고 겸손하고자 애쓸 때, 그들에게 비난과 조롱보다는 직간접적으로 고마움을 더 표현해 주면 어떨까.

그런 고마움들에 힘입어, 머리로 깨달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건강한 불만과 불안을 스스로에게 느끼면서 그 깨달음을 결국 손발까지 이어가는 법조인과 의료인들이 많이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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