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박연철, 엄상익의 담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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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박연철, 엄상익의 담소 (4)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09.19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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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검찰과 경찰 양쪽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LAW & JUSTICE>는 여러 형사법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 보고 기사화했다.
(참조 1. 78면 ‘검찰미래기획단-형사법 아카데미, 정부 발표 수사권 조정 합의문 관련 세미나’ _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552 /  참조 2. 84면 ‘[리걸 인터뷰]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보학 교수’ _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678)
이 주제에 대해 두 원로 변호사는 어떤 생각들을 나누었을까.
‘담소’ 10월호의 주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박연철 변호사와 엄상익 변호사는 직접 경험한 내용까지 곁들여 생생하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취재, 정리 김주미 기자

엄상익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그와 둘이 김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통령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고 물어 봤는데 바로 나온 대답이 “검찰 개혁”이었다.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이므로 공식적으로 준비한 말도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이 ‘검찰 개혁’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다.
과거에 우리가 형사소송법을 배울 때만 해도 경찰은 고문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무식한 이미지였다. 그에 반해 검사는 높은 인권 의식을 가지고 그런 경찰들을 통제하는 식자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과거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던 경찰은 지난 세월 동안 많이 두드려 맞고 사포질을 당한 덕에 부드러워졌다.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했고 인권 의식을 함양했다. 그러나 검찰은 어떤가. 경찰을 감독하고 바로 잡으라고 많은 권한과 신뢰를 주었는데 관료 의식과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 되어 버렸다. 견제 받지 않고 감독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검찰뿐인가. 검찰 직원인 서기들까지 마찬가지 모습이 되어 있다. 이제는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고 교정할 정도로 경찰에 비해 나은 기관이라고 평가할 수가 없게 됐다. 대통령의 뜻과 같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박연철
엄 변호사님 말씀처럼 검찰 개혁의 방안으로 나온 것이 수사권 조정인데, 수사와 기소는 업무상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자연히 지휘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존재한다. 기소해서 유죄 판결을 받으려면 기소자인 검찰의 판단과 구상에 의해 수사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건축 설계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토대로 시공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도 검찰은 수사권의 힘으로 국정원을 제치고 가장 큰 권력이 되어 버렸다. 가진 권력만큼 사회적으로 적정하게 기능을 하고 있다면 모르는데, 국민 눈에 지금의 검찰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도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일일이 받지 않고 사실상 수사를 다 한다. 수사 인력이 많지 않은 검찰은 경찰의 인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고 많은 인력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찰은 수사에 훨씬 적합한 조직으로 갖춰져 있다.
이전에는 경찰이 일반 국민과 접촉면이 큼에도 불구하고 인권 의식이 형편없어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여 검찰이 바로잡아 주길 기대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과연 검찰은 경찰을 지휘 감독할 만한 위치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나로서도 딱히 검찰이 더 나은 조직이라고 생각되지가 않는다.
수사 현장의 밑바닥은 저절로 공정하게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수사관의 인품과 자질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전에 나는 수사관들이 양쪽에서 다 돈을 받더라는 말도 들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어느 조직이 더 제대로 된 인력을 양성하는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엄상익
말씀에 동의한다. 사실은 인간의 기초적 성품에 의존해서 이루어지는 게 수사다. 돌아보니 나는 검찰 서기관, 경찰, 검사 모두의 의견을 들어 봤다.
어느 검찰 서기한테 “어떻게 해서 검찰 서기로 오게 됐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원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검찰로 왔는데, 이제 다른 부서로 가기 어렵겠다는 말을 내게 했다. 다른 부처에 근무할 때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쩔쩔 매는, 그야말로 을의 입장인데 검찰에 와 보니 아무리 높은 인사도 문 열고 들어와서는 자신에게 인사를 꾸벅 올린다는 것이다. “이 맛을 봤는데 어떻게 다른 데를 가냐”고 이야기를 하더라.
어느 경찰이 내게 했던 말도 곱씹어 보면 경찰 하는 보람이 완장 맛에 있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이파리 네 개 단 경사였는데, 자신이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으로 아무나 붙잡고 다짜고짜 신분증을 내 보이라고 하면, 다들 자기 하는 말에 순순히 따르는데 그게 좋다는 것이다. 수사관이 이런 완장 맛에 취해 있으면 국민에게는 절망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인 검사도 만났다. 일전에 경찰청장을 지낸 어느 분이 퇴임하고 선거에 나가려고 했는데 위에서 나가지 말라고 지시를 했다. 이 분이 그래도 출마를 하니까 선거 이틀 전에 검찰이 들이닥쳐 구속을 시키는 것이다. 내가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담당 검사를 만나러 갔더니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 나는 지금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무를 하는 겁니다.” 그 검사는 수사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구속해라 말아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수사해라, 뭐를 뇌물로 만들어라 이런 지휘를 받고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윗선에서 밀고 있는 인사가 따로 있는데 이분이 지시를 어기고 출마를 했으니 끌어내리려는 거다. 독립 관청인 검사가 이렇게 스스로 자기 자리를 청와대에 내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쩌면 수사권 조정이라는 방안은 바다 위 파도를 잠시 잠재우는 차원에 그칠지 모른다. 핵심 문제는 인간 본성이다. 수사권을 가진 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직자다운 인격과 품성을 갖추고 소신대로 행동하는 조직 문화가 자리 잡혀야 한다. 또 정부는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따르기보다 두 기관이 합심하여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박연철
사실 이전에는 우리 사회가 경찰의 실력, 즉 전문성도 신뢰를 하지 못 했다. 수사를 할 거냐 말 거냐의 판단, 또 수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그런 걸 보는 안목이 경찰에는 없다고 생각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맞지 않는 생각이 되었다.
내가 연수원 마쳤을 때 경감으로 업무를 시작한 동기를 봤는데, 우리 때는 경찰이 선망의 시선을 받는 직업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사법시험을 합격하고서 소신대로 경찰로 간 우수 인력들이 차차 늘어났고, 경찰대학이 생기면서 실력 논란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요즘 로스쿨생들도 경찰 진로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들었다.
다만 12만 명이나 되는 경찰이 하루아침에 자질이 급격히 높아질 수는 없다. 전체 규모가 큰 만큼 자질 미달의 사람들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모든 개개인의 성품을 바로잡기 이전에 지휘관들부터라도 바로 잡혀 있으면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조직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바로 선 지휘관이 기강을 바로 잡고 자기 지휘 하에 있는 사람들을 잘 이끌면 전체 조직이 크게 엇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경찰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경찰대학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안타깝다.
한편 일이 많은 검찰에서 경찰로 인력을 이식하는 방법도 있다. 상호 협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고 양 기관 모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뭐 하나 기소를 하려면 검찰과 경찰이 서로 멀리 떨어져서 서류만 왔다 갔다 하는데, 한 기관에 있으면 지휘 통솔도 한결 편해지고 수시로 의논, 건의하면서 일을 할 수가 있다. 검경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생기는 여러 비효율적인 문제들도 해결될 것이다.

엄상익
박 변호사님께서 경찰로 간 동기 이야기를 하시니까 말인데, 나도 경찰을 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김성종이라는 작가의 ‘형사 오병호’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걸 보니 형사가 아주 멋져 보였다. 말단 형사 오병호가 사건 하나 해결하려고 서울역 앞에서 밤을 새고 혼자 잠복을 하고 이리 뛰며 저리 뛰는데, 그가 집념대로 사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이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원했고 면접을 본다고 해서 갔다. 면접은 인성 평가 같은 성격이었는데, 합격하면 경정이었다. 갔더니 경찰의 가장 높은 간부인 치안본부장과 그 옆에 네 사람 정도가 앉아 있었다. 경찰이 하고 싶다고 하는 나를 약간 떫은 눈초리로 보면서 “경찰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기분 좋은 곳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우리 어릴 때는 동네에서 순경만 만나도 “독사”라고 피하고, 경찰서는 ‘가서 얻어맞는 데’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으니까. 내 이력서에 음악을 한다고 적혀 있으니까 다음 질문으로는 “음악에 대해서 네가 뭘 아냐”고 묻기도 했다.
문학적 호기심으로 경찰이 되려고 했던 나는 그때 면접을 보고선 ‘이런 분들이 지휘하는 조직에 속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병호처럼 말단이면 몰라도 수뇌부라는 사람들은 당시 내 눈에 그저 ‘깡통’으로 보였다. 나를 면접 보는 그 자리에서도 상호 간에 엄격한 상하 관계가 이뤄져 있음이 다 드러나 보였다. ‘혼 빠져서 상부의 지시에 죽자고 따라야만 출세하는 조직’, 그 당시 내가 본 경찰은 그럴 조직이었다. 합격 통지를 받고도 나는 가지 않았다. “경찰을 모욕하냐”며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 말을 하고 보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렇지 않은 조직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전체가 이런 의식에 젖어 있다면 아무리 제도라는 껍데기를 좋은 것으로 바꿔 봐야 결국 다 그대로다. 개개인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출세하기 위해 상부에 무조건 복종하자’는 의식을 가져서는 결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박연철
경찰은 가진 권력이 큰데 숫자까지 많은 조직이라 위험성이 큰 것은 맞다. 조금만 잘못 돼도 경찰국가로 회귀할 가능성이 짙다. 그렇기에 제도 설계를 아주 세심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찰의 자정 기능이 상당히 잘 돼 있다는 점이다. 자체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고 그 결과 경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몰수한 돈이고 뒷돈이고 경찰이 몰래 취하는 돈이 상당히 많았고 또 그게 일상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물망처럼 매뉴얼이 딱딱 짜여져 있어서 개인의 일탈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다고 들었다.
경찰이 신뢰를 더 얻어서 지금보다 큰 권한을 갖게 된다면, 더욱 사회적으로 올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야 한다. 가진 권한 만큼 법의 집행을 엄격하게 하되, 경찰이라는 ‘사람’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누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는 피상적이고 학리적인 논의, 아니면 하나 먹고 하나 주는 식의 정치권 논의를 따라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국민의 시각에 서서, 국민에게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작용할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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