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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총회 재판국의 명성교회 농단과 대한민국 사법부의 농단, 잘라라!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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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4  12: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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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 몸이다. 한 숨 쉬어 삶이고 한 숨 거두어 죽음이니, 삶과 죽음의 거리는 불과 한 숨이다. 이 한 숨이 평생이고, 평생이 이 한 숨이니, 어찌 삶이 살았다 할 것이며, 죽음이 어찌 죽었다 할 수 있겠는가? 삶과 죽음이 하나이고, 얽힘과 풀림이 하나인 게다. 2018년, 대한민국은 얽히고설킨 칡넝쿨의 시대이다. 고려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던 이방원의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찌하랴”를 노래하는 자가 떼 지어 입추(立錐)이고, 내 비록 죽어 한 줌 흙이 된들 곧아지리라 절규하는 자가 홀로 송곳이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일백 번 고쳐 죽는 죽음을 노래하지만 그게 사람다운 삶이고, 이방원의 “하여가”는 삶과 부귀영화를 노래하지만 그게 사람답지 못한 죽음이니,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인 세상살이를 어이할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3회 정기총회가 칡넝쿨처럼 엉켜있는 어두운 이 땅에 한 줄기 빛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가녀린 빛줄기가 점차 강도를 높여 이 세상을 밝힐 거룩한 빛이 되려한다. 어둠 속에서 죽은 줄도 모른 채 죽어 있던 참된 기독인들의 선한 영성을 깨우고 어둡고 썩어빠진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다. “깨어 기도하라!”고 질책했던 초대교회 예수의 정신을 새롭게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이번 정기총회가 기독인들에게 선물하였다. 이러한 깨우침은 곧 세상을 향해 올바른 소리를 주창할 수 있는 정당성을 스스로 확보하게 될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명성교회의 기독교 내의 위치는 대한민국 대기업 삼성에 맞먹는다. 하지만 삼성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삼성의 구성원들은 돈을 받고 삼성의 지시를 따르지만, 명성교회의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시간을 내어 기독교 교리(잘되었던 잘못되었든)에 바탕한 목사(김삼환 원로목사이든 그 아들인 김하나 위임목사이든)의 지시(가르침)를 따른다는 점이다.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자발적으로 매달 교회에 헌금하면서, 또 교회에서 하는 각종 예배나 봉사활동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참여하면서 위임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거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러한 무리로 등록된 자가 10만이 넘고 매주 예배에 참석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며 반복적으로 교육 받는 이가 2만에서 5만을 오가니, 그 위력의 크기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폭탄이 날아들면 삼성의 대부분의 직원은 나 살겠다고 도망을 갈지 몰라도, 명성의 대부분 교인은 그럴수록 더욱 단단히 뭉쳐 환란을 극복해야 한다며 결집한다. 그게 영원한 천국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무서운 힘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명성교회 주변에서는 명성교회 교인이 아니면 장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교회 주변이 서로 명성교회 교인과 교인으로 얽혀 만수산 드렁칡처럼 서로가 서로의 삶을 담보하고 있는 곳, 믿는 자들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보다 현실 속에서 “이 땅의 짧은 삶”을 위해 교회에 충성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명성교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명성교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김삼환 은퇴목사의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큰지 교인이 아니면(그것도 교계의 깊은 속사정을 알지 못하면) 감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인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목사의 한 마디 말에 교인들과 장로들의 합리적 판단이 힘을 잃고,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자가 “예수의 의심 많은 제자 도마(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의심하다가 스스로 예수의 옆구리 상처와 손의 못자국을 보고 믿은, 믿음 약한 제자로 성경에 기록된 자)꼴”이 되어 믿음이 없는 자로 치부되어 버리는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곳이 바로 명성교회였던 것이다.

장로교의 특성은 목사보다 장로가 마치 주식회사의 이사회처럼 교회의 모든 사역을 주도하는 종교단체이다. 장로들이 초대교회의 예수의 열두제자처럼 합의를 통해 교회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대형교회가 되면 장로의 힘이 무척 약화되고 만다. 소형교회를 보면 장로 수가 한 두 명에 불과하거나 2-3천명 규모의 교회인 경우에도 장로 수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그런 범주 내에 있다. 그런 까닭에 장로 수가 적으면 한 명의 장로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교사 한 명인 시골 학교에서 그 교사가 교육부나 교육청의 모든 행정사무를 보는 것처럼 한 명이 전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명성교회처럼 교인 수가 많고, 부목사와 장로(목사와 장로가 합하여 당회를 구성한다)를 합하여 그 수가 100명이 넘어 버리면(대한민국에 이런 수의 장로를 두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다) 장로의 힘은 거의 없어지는 것과 같게 되고 만다.

결국 대형교회에서는 혼자서 백의 힘을 사용하던 소형교회 장로가 100분의 1 이하로 그 힘이 줄어들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주 반대의견을 개진하면 어떠한 위원회 구성 시 그 장로를 위원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왕따를 시키기 때문에, 일부 장로들이 위임목사(기업의 최고 CEO에 해당된다)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 아닌 아부를 하게 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폐해가 장기화되면 어느 사이 대부분의 장로들이 위임목사에게 순치되게 되고, 무슨 일을 시켜주면 그것이 존재감이 되어 더욱 충성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대형교회가 되면 개별 장로들의 예산통제권도 약화되고, 목사의 목회 활동 지침에 대한 간섭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자기 담당 분야가 아니면 교회 돌아가는 일을 장로들조차 서로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위임목사는 70세까지 장기집권이 가능(목사의 근무 기간이 길고 나이가 많아지면 거의 모든 장로들이 해당 목사의 교육 하에 장립되게 되어 위임목사의 권위에 눌리게 된다)하기 때문에 일단 대형교회가 되면 어느 누구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명성교회 김삼환 위임목사가 2015년말에 은퇴한 후 2년 남짓 위임목사를 청빙하지 않다가 지난 2017년 11월 12일 자신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한 데서부터 이다. 교단 헌법에 의하면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을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교회의 특수한 면이 모든 목사는 “노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명성교회가 속한 동남노회(지교회가 지역별로 모여 노회를 만들고, 노회가 전국적으로 모여 총회를 구성한다) 당시 부노회장이던 김수원 목사(부노회장이 노회장이 되는 것이 관행이다)가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청빙되는 것을 반대하자, 명성교회가 영향력을 행사하여(명성교회는 교세가 크기 때문에 주변에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많은 소규모교회에 경제적 지원을 하여 왔고, 명성교회 출신의 부목사들이 좋은 교회에서 훈련된 훌륭한(?) 목사라는 평가가 일반화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교회에서 자기들 교회의 위임목사로 청빙함으로써 명성교회 출신 목사들이 전국적으로 포진되어 명성교회의 사실상 지지자 역할을 한다, 실제로 목회를 잘 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노회장으로 승진될 김수원 부노회장을 관행과 달리 배제시켜 버리고 자기들 의견을 따르는 목사를 노회장으로 새롭게 선출하여 위 김하나 목사 안건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졸지에 노회장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김수원 목사는 동남노회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총회재판국에 재판을 신청하였고, 노회장 선출 절차가 잘못되었다는 총회 재판국의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김수원 목사는 명성교회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결의도 부당하다는 재판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총회 재판국은 8대7로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은 정당하다(즉 은퇴하는 목사라고 했으므로 김삼환 목사는 2년 전에 이미 은퇴한 목사여서 “은퇴하는(현재진행형) 목사의 아들”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총회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림)고 판결을 하고 말았다. 총회 헌법에 의하면, 총회 재판국의 판결은 그 즉시 효력이 발생하지만, 총회에 재판 결과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총회 헌법은 “헌법에 대한 해석 전권은 총회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총회 재판국의 판결에 대하여 “재판국이 중대하고도 명백한 법규적용의 착오를 범한 때”에 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수원 목사의 동남노회비상채책위원회는 위 규정을 들어 재심청구를 하였고, 제103회 정기총회는 총회 재판국의 재판 결과에 대해 위 사유(법규적용의 명백한 착오)를 이유로 총회 재판국의 재판 결과를 부정함으로써 명성교회의 세습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의 총회재판국원(법원의 판사에 해당한다) 전원(15명인데, 이미 반대하였던 7명은 잘못된 결정이 부끄럽다며 스스로 사직하였으니, 결국 명성교회 손을 들어 준 8명이 강제교체된 것이다)을 새로 선출하였다. 이제 새롭게 구성된 총회 재판국에서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다시 재판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총회결의가 1,360명 참석(재적 총대는 1592명이다)에 반대 849표(명성교회 반대), 찬성 511표(명성교회 지지)로 총회 재판국의 재판결과가 부정됨으로써, 새롭게 구성된 총회 재판국이 총회 결정대로 김하나 위임목사의 청빙을 불허할 것인지, 아니면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다시 허가할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명성교회는 총회 재판국의 결과가 총회에서 인정될 수 있도록 전국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명성교회 출신의 다른 교회 목사들과 그 교회 소속 장로들,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지원해 온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 김삼환 목사처럼 아들을 세습시키고 싶어 하는 입장에 있는 목사들이나 장로들,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역지지 세력 교회 목사들과 장로들을 중심으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과 511명이 “은퇴한 목사의 아들”은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이 아니므로 총회 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어서 총회 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결론에 동조토록 하였다.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정신은 살아 있어, 명성교회의 교세나 금력, 인간적 관계 등에 얽매이지 않고, 총회 헌법을 총회 헌법대로 올바르게 해석하여 옳은 결정을 내렸다. 그 근저에는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구성체로서 하나님의 것”이라는 기독교의 기본정신이 깔려 있다. 교인들의 헌금(위임목사가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긴 기업이 아니다)과 헌신을 통해 형성된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와 같은 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피로 산 결합체”일 뿐 위임목사의 사유재산이 아니므로 그 아들에게 세습될 수 없다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 세속의 힘이 강한 이 시대에 명성교회의 거대한 힘에 굴복하지 않고, 많은 총대(각 교회에서 총회에 대리인으로 파견된 목사와 장로들)들이 교회의 본질을 순수하게 지켜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하겠다. 이러한 기독교 정신은 스스로 자정의 길을 걸음으로써 세상에 본을 보이고, 썩어가는 세상을 향해서도 제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하겠다.

한국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 강요에 무릎 꿇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갖지 말라”는 십계명을 위반하고, 하나님 아닌 일본의 신 앞에 무릎 꿇은 변절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각이 이번 명성교회 사태에서 의로운 선택으로 나타난 것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숭실대학교는 기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이다. 숭실대학교는 1937년 일본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면 학교를 폐교시키겠다고 겁박하자, 일본의 겁박에 분연히 항거하며 스스로 폐교하였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대한민국 종교단체 중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용기를 내보임으로써 민족정기를 지켰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학교발전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용기 있는 행동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정신을 지켜오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은 스스로 칡넝쿨을 풀었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키고설킨 잘못을 과감하게 잘라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농단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형벌의 화살을 맞게 될 농단의 협력자, 부역자들이 현직 법관이라는 가면 속에서 썩은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럴수록 검찰은 사법적폐세력척결의 칼날을 더욱 벼릴 것이다. 진실의 힘은 강하다. 총회 재판국의 결정을 총회가 바로잡듯, 대한민국 사법부의 적폐를 국민이 바로잡을 것이다. 그날이 한 줄기 빛으로 오고 있다. 저 빛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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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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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조심 2018-09-15 00:00:46

    이글은 콩을 가려내고 밥만 먹는 어린아이같단 생각이 듭니다. 글 솜씨는 매우 훌륭하나 콩을 재주좋게 쏙쏙 골라냈군요 명성교회 얼만큼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이단과 싸우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기도합시다"
    이렇게 나가야 안믿는자들에게 총회도 본이 되는겁니다 아수라장 국회와 다를게 없는 서로를 도려내는 집안싸움..이러니 0독교란소리나 듣는거지요
    이제부터라도 말 조 심 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하심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진실은 드러납니다 여론몰이에 앞서 우리모두 듣는귀가 열리기를 기도합니다신고 | 삭제

    • 더가까이 2018-09-14 17:36:46

      저 511명은 삯꾼 목사와 늑대의 탈을 쓴 장로들 맞죠?
      주님 앞에서 뭐라고 변명을 할지... 가엽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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