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인생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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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인생의 쉼표
  • 신희섭
  • 승인 2018.08.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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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8년 이상 해오던 일을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그래서 그동안 투자한 것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마음이 무거웠다. 하고 싶은 일이 원하는 대로 안 되었을 때, 그런데 그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면 안 될 때,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것. 그것은 무력감을 넘어선다.

만약 책임져야 할 가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라면 이런 실패의 경험은 인생전체에서 볼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많은 성공한 이들이 이야기 하듯이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실패하고 저기서 실패해 보면서 실패하지 않을 법을 배워갈 수도 있다. 맷집도 키우면서 마음의 근육도 튼실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 그러한 조언이 쉽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그러니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서는 하려던 일을 못하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은 무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적인 것이다.

한편 주변에 보면 50세를 넘어서 혹은 60대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다. 절치부심하여 새로운 경력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 가는 분도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들에게 40대가 경험하는 실패는 어찌 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며 절망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다. 인생은 상대적이다. 20대의 수많은 고민들이 30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지나가는 청춘의 훈장이다. 30대의 잠 못 이루는 고민이 40대에게는 그저 그 시간을 넘어 다음 인생을 만드는 자양분일 수 있다. 40대에게 인생의 끝일 지도 모를 일이 50대와 60대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계시일 수도 있다. 다만 경험하는 순간, 그때는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100세 시대이다. 어쩌면 더 오래 살 수도 있는 시대이다. 그런 관점에서 의지만 있다면 무엇인가를 새로 할 수도 있는 시간대는 꽤나 길다. 물론 이것도 그 사람이 가진 철학적 입장과 건강상태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 했다. 내가 걱정한 것 보다 관리를 잘 해두어서 뒤 처리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새로 일할 수 있는 몇 가지 여지를 만들어두었다는 말도 들었다. 고마웠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대처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친구에게 한 마디 했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우선은 잘 쉬어.”

그렇다. 친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어려운 판에서 경쟁하며 몇 년간 수많은 밤을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일을 그만둔다고 할 때 남은 아쉬움은 자신의 고민과 고통 받았을 크기보다 더 클 것이다.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고 무능력해 보일 것에 대한 걱정은 아직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의 인생에 겹쳐질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결정이 책망 받아야 할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쁘지만 수고한 것은 수고한 것이다. 좀 더 잘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지나간 일에 대한 바람일 뿐이다.

쉬는 것이 필요하다. 폐업을 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 다음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머릿속이 온통 지금 정리할 일들로 가득할 텐데. 그리고 아쉬움과 자책들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과연 미래의 명료한 그림이 그려질까?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쉰다는 것은 하던 일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잘 안될 때도 쉬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하는 일이 잘되고 있을 때도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할 일을 고려할 수 있다. 쉴 수 있을 때 자신이 자신에게 수고하고 있다고 칭찬을 할 수 있으며 더 잘할 수 있다고 응원도 할 수 있다. 작은 실패들을 복기해볼 수 있으며 작은 성공들의 이유를 따져볼 수도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은 내 자신의 문제로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친구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이 내게는 스승이 된다. 이기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인생의 어느 순간. 쉬는 것이 필요하다. 쉬도록 강제되는 것 보다는 쉴 수 있을 때 스스로 쉼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긴 인생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일들에 번민하고 희희덕 거리고 있는 나를 차분히 들여다보기 위해 쉬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잠깐의 쉼표를 찍으면서 “그래 수고하고 있다.” 한 마디 날릴 수 있는 사소한 사치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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