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 보수의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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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 보수의 위기와 기회
  • 신희섭
  • 승인 2018.06.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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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6.13지방 선거로 보수진영이 위기에 봉착했다. 여기서 보수진영은 보수 정당과 보수지지 유권자를 아우르는 의미이다.

선거가 끝나고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보수심판론’과 ‘보수정당-보수유권자구분론’ 등등 입장들이 다양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선거 패배의 후유증이다. 즉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보수진영의 자존심을 유지해보려는 노력들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한국 정치의 구조적인 변화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로 이어지는 안보주제, 문재인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도덕정치와 같은 이슈들이 얽히면서 만들어진 선거결과다. 이것만으로 진보-보수의 유권자구조가 완전히 진보우위로 돌아서면서 한국의 보수층이 전체 유권자 대비 30%미만으로 떨어졌는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한 개인들의 정치의식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시대분위기와 특정이슈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책에 의해서 판가름 난 선거고 시간이 지나면 보수 유권자 층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이 칼럼의 요지는 한국에서 보수진영은 구조적인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의 실책이나 보수 정당 지도자의 언행 문제와 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정도의 문제라면 몇 가지 정책 수정을 하고 정당 지도부 사퇴하고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다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보수에게는 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보수의 구조적인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몇 가지 사용해보자. 만약, 남북관계가 더 급격하게 진전이 된다면 보수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고 대응할 것인가? 만약 4차 산업혁명이 그저 명목만이 아니라 실제 인간 생활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이런 변화에 보수는 어떤 대처방법을 내어놓을까? 만약 인구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고 출산율이 1.2명 수준보다 계속해서 낮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래서 2100년이면 한국인구가 2천만 명에 불과한 상황이라면 보수는 어떤 미래 그림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 교육제도를 유지한다면? 즉 대학입시에만 매달려 있어 그 과정이 3천개가 넘을 정도로 복잡하기만 하고, 창의성을 가진 아이들을 외국교육제도로 밀어내고, 한국에 남아 있고 싶으면 창의성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수는 한국의 인적자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렇다. 보수의 난관 더 나가 보수 위기의 본질은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보수라는 이념이 가진 근본적인 약점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변화가 아니라 유지되고 지켜야 할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수의 핵심이니까. 보수주의를 단순화하자면 그저 ‘변화와 연속’이라는 세상의 두 가지 흐름에서 연속을 강조하고 변화를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논리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연속’선상의 ‘변화’가 점진적이지 않다면? 그 속도가 그저 적응하는 수준을 넘어서면? 북한 내부의 변화가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김정은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보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하며 어떤 대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보수에게 닥친 문제는 변화와 연속이라는 두 주제사이의 관계 정립이 아니다. 속도의 문제의 본질이다.

물론 잘 안 바뀌는 부분들이 있다. 인간의 성향, 국가 내부의 점진적인 정책결정과정, 국제체계에서 말하는 강대국들의 질서. 이런 요인들은 조금씩만 변하거나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들은 빠르게 바뀐다.

그렇다. 빠르게 바뀐다. 그 변화에서 속도가 생명이다. 남겨진 것은 적응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한국 정치상황을 보라. 2017년 대비 2018년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런데 2019년에도 더 큰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남한-북한-미국의 3각 축과 함께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3각 관계와 한-미-일의 남방 3각 관계 그리고 북-미-일의 새로운 3각 관계가 복잡하게 작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스라는 자원과 철도연결 사업으로 러시아는 한국과 더욱 긴밀하게 엮일 것이다. 국내정치에서는 많은 변화들이 예상된다. 1968년 서구정치는 68혁명 이후 뉴레프트(New Left)가 강력해지고 그 반발로 뉴라이트(New Right)가 등장하여 대립하였다. 한국도 2016-2017년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이후 유사한 구조로 새로운 좌우 대치를 보이고 있다. 미투 운동과 일상성민주주의가 대표적이다. 2020년에는? 그때는 총선이 있고 개헌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 위로 4차 산업혁명과 인구 변동이라는 구조적인 변동이 겹쳐질 것이다.

다시 핵심적 질문으로 돌아가자. 변화의 속도가 연속의 논리를 넘어설 때 보수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보수로 남을 수 있는가?

여기서 한국 보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이론과도 다르고 미국의 네오콘이라고 하는 신보수주의와도 다른 논리가 필요하다. 영국 전통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의 과격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영국의 귀족주의의 전통을 강조함으로서 1790년대 유럽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네오콘은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미국식 전통과 종교를 강조함으로서 1980년대에 미국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 보수는 대항할 반대이념이 없다. 과거 주적이었던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대항마를 변화로 잡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변화’자체를 거부하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와 ‘반동’으로 전락한다.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진보가 아닌 보수로 남기 위해서는 유지해야 할 전통을 변화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민주화’ 이후의 ‘선진화’를 강조했던 논리나 ‘공동체자유주의’논리가 이러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논리들이 나올 때만 해도 한국 보수가 지금처럼 급격한 변화에 강력하게 직면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좀 더 구체적인 논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시점의 보수 진영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보수가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를 담아내면서도 내적으로 논리 모순이 없어야 한다. 과거 전통에서는 단군의 ‘홍익인간’의 공동체적 가치, ‘선비정신’의 지식과 실천 그리고 놀이를 포함하는 지적가치, ‘비빔밥’으로 대표되는 조화와 창조의 가치들이 논리적으로 구체화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가치 조합이 현대적으로 성공적인 국가건설, 다른 나라들이 모방하고 있는 자본건설, 세계적인 사례로서 민주주의건설이라는 한국적 가치를 포용하고 더 나가 이를 넘어 변화까지를 한 몸으로 안을 수 있는 그런 논리가 제시되어야 한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보수가 튼튼해져야 진보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 보수에게 어떤 구체적인 답들이 있을지 논의를 모아볼 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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