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피해자증인과 진실발견
상태바
[기고] 피해자증인과 진실발견
  • 이순철
  • 승인 2018.06.19 1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철 전 목원대 법학과 교수(Dr.iur. Hamburg)

I. 들어가며

독일 법조인과 법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Bender,/Nack/Treuer, “ Tatsachenfeststellung vor Gericht”(법정에서의 사실인정, 이하 원서)은 제 3장. 신문론(Vernehmungslehre)에서 피해자증인의 보호와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형사법 최고의 원칙들이 부딪치는 상황을 다룬다. 이른바 미-투 운동으로 국내 전공자들과 실무자들의 이목을 끌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II. 사실의 인정

널리 법원의 재판은 인정한 사실관계에다 법률을 적용하여, 법적결과를 말하고, 법률관계를 확정하거나 진행될 절차를 진행함에 필요한 결정을 내려주는 일이다. 한편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은 자기들이 인정한 사실관계가 재판부에 의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만, 법원은 결코 수사기관이 인정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관이 아니라, 증거의 힘을 빌어 독자적으로 발견하고, 판단하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실인정이라는 것이 법조인만이 할 수 있거나 하여야 하는 작업이 아니다. 상식과 논리를 갖춘 경험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하는 일이다. 사실인정이야말로, 법조문을 가져다 붙여서 주문과 이유를 적어내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재판의 태반을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III. 피해자증인

독일의 형사절차에서 각별한 보호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피해자증인”(Opferzeugen, victim witnesses) 이라는 것은 법률 자체가 알지는 못 하는 개념이다. 통상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있는 범죄피해자, 예컨대 저연령층의 어린이나 여성들, 성적 자기결정권에 반하는 범죄의 피해자들을 일컫는다. 피해자 증인은 직접 겪은 기분 나쁜 일을 보고하여야 한다는 데에 대하여 제 3자에 대하여 수치심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에 더하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지가 남다르면서도, 범인의 범행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대응하는 일도 빈번하다. 예컨대 아버지나 남자 형제 또는 가까운 손윗사람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증인에 대한 신문은 수사 시작부터 특별히 고도로 보호자스러운 보살핌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IV. 논점

그렇다면, 피해자증인 등이 이른바 2차 피해(Reviktimisieren)를 최소화 하면서, 그들의 진술로써 피고인의 혐의를 확인하고 처벌할 수 있는 길을 무엇인가. 다시 말해, 형사상 최고 원칙인 진실의 발견이냐, 아니면 피해자증인의 보호를 위해서, 전통적인 증거재판과 진실발견의 요청을 양보해야만 하느냐가 문제이다. 실무상으로는 이른바 “진술대진술”(Aussage gegen Aussage) 상황이 문제다. 한 형사사건에서 두 개의 서로 상충하는 진술들이 피해자증인과 피고인에게서 서로 대립하고, 달리 객관적 증거가 없을 때, 법원은 경험상 불가피하게 그리고 의문의 여지가 있는 사실인정만으로 판결해야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V. 구체적인 계기: 보름스 사건

루터 95개 반박문 게재로 유명한 보름스에서 1993부터 1997 사이에 독일 형사소송 역사상 전무후무할 만큼 광범위하고도 치열하게 전개된 전부 3개의 성학대행위 형사소송 사건(Wormser Prozesse)이 벌어졌다. 시작은 관할인 Mainz Landgericht(주 법원)에서, 한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한 이혼청구중에, 같이 난 딸아이가 성학대에 시달렸다는 비난을 제기함으로써였다. 사건은 가족사이의 적대감으로 상승작용을 하였고, 주변 어린이 보호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여자 어린이들에 대한 사건들로 확대되었다.

그 중 어떤 두 아이들은 같이 지내던 할머니로부터 신고를 받은 보름스의 어린이 및 청소년 보호청(Jugendamt)이 보름스의 빌드봐서 연맹(Wildwasser e.v. 베를린에 본부를 둔 소녀 성학대 방지 및 보호 시민연대)에 자문을 구하게 된다. 빌드봐서의 여성운동가는 어린이들에게 뮌스터 대학 심리학 교수 Tilman FürnissFurniss가 만든 기법(해부학적으로 수정된 인형, 동화구현, 어린이들에 의한 청문 유사 질문, 암시적인 대답으로써 하는 질문 등)에 따라 신문하고, 광범위한 어린이 학대행위가 발견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서 그 결과는 빌드봐서가 의뢰한 한 소아과 의사에 의해서도 확인까지 되었다. 이에 따라서 25명의 사람들이 총 16명의 자기 또는 타인의 어린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어린이들은 Spatzennest im pfälzischen Ramsen지역 어린이보호시설(Kinderheim)에 수용되었다.

사건은 세 개의 공판, 즉, 보름스 I, II 그리고 III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 지칭되고 진행되었다. 보름스 1 사건에서는 7명이 이혼한 여성의 가족 중에서 기소되었고, 보름스 II 에서는 그 녀의 전남편의 가족 중 13명이 기소되었는데, 그 중에는 두 명의 공통의 자녀들을 보살폈던 할머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수사부터 공판에 이르기까지 아마추어적인 증거채택과 함께 잘못 기소된 피고인들의 신산한 운명, 그 가족들과 소년청의 결정으로 인해서 심각하게 손상된 어린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이 일련의 사건들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집에서 나와 시설에 수용될 때까지 산부인과적으로 전혀 이상징후가 없었던 한 소녀를 수용 5일째에 의사 두 사람에게 보였더니, 아이의 질과 항문에 이물 투입(vaginal- und anal-penetrierende) 상흔이 발견되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성적 학대행위가 있었다는 고도의 개연성” 진단이 내려졌다. 사건이 터지자 검찰과 언론매체들은 강력한 보도로써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나의 어린이 포르노 집단이 적발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유명한 Der Spiegel은, “대부분의 의학적 현상과 광범위한 어린이증인들의 진술에 의할 것 같으면, 피의자들에 대한 비난의 많은 부분을 의심할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한다”고 단언하면서, 사실로 기정화 되다시피 한 보도에 열을 올렸다.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재판 판결 이전에 이미 여론으로 유죄가 확인되었던 셈이다.

원서 저자들의 표현으로, 무자비할 만큼 정의감에 투철한 여검사는 131일간의 공판 기간 동안 믿기지 않을 만큼 격정적으로 변호인 측을 공격하였고, 변호측은 맹목적인 분노를 가진 페미니스들이 철부지 아이들을 꼬드겨서 성폭력을 보고하게 하였다고 맞받았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Missbrauch mit dem Missbrauch”(성 학대 개념의 오남용)라는 용어가 정착되는 계기가 된다.

사후적 평가지만, 총체적 증거상황은 조종되었을 개연성이 높은 어린이들과 소아과 의사들의 감정서들에 터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의 광범위한 상처에 대하여 대개 자연적인 원인들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것들이었다. 여러 가지가 피고인들의 책임을 묻기에는 불확실한 점이 있었지만, 검사는 각 피고인들에게 13년까지의 징역을 구형했다. 재판장이 세 번 씩이나 바뀌면서, 1996부터 1997년까지 총 25개 사건에서 진행된 세 개의 소송은 모두 무죄로 결말이 났다. 재판장 Hans E. Lorenz 판사는 선고에서, 구두로 판결이유를 낭독함에 있어, “보름스의 집단 성 학대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선언하고, 오랫동안 고통의 길을 간 모든 피고인들에게, “우리는 사과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법률적 관점에서 평가할 때, 이른바 어린이 성학대 피해자들에 대한 진술들은 기억오류(Erinnerungsverfälschung)와 작화(Konfabulation)(주로, 인식상의 오류, 기억오류 등으로 인한 객관적 오류를 안고 있는 진술형태들) 현상으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사회심리학적 전문가, 그리고 성 학대 범에 대한 투철한 정의감을 가진 활동가들에 의한 질문방식이 중대한 결함, 특히 암시(Suggestion)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찰 측은 검토를 거치지 아니하거나 그것에 모순되는 혐의들을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어린이는 이른바 행위 시에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다른 경우들에서는 부모들이 이른바 행위 시에 이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기까지 하였다. 공판에서 마인쯔의 법의학자 Reinhard Urban 교수는 그 여자 어린이의 상처가 오래 된 것이 아니라, 신선하다는 감정을 냈고, 보름스 사건 II에서, 집에서가 아니라, 집을 떠난 다음에 생긴 것이라고 확인했다.

피고인들이 전원 무죄판결을 받은 다음 빌트봐서는 여성 활동가와 결별하였지만, 1997년 6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종전 행동양태에 확신을 가지고 계속하겠다고 보고하였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거나 달리 어떠한 조치도 뒤따르지 않았다. 다만, 독일 연방대법원(Bundesgerichtshof)은 1999년 이 소송의 영향을 형사소송 증거의 신빙성 판단에 필요최소한의 조건(Beweiswuerdigungsanforderungen)을 다는 것으로 반영하였다. 이로써 보름스 사건은 독일 법조계에서 증언, 특히 피해자증인의 진술에 대한 증거평가 방법에 관하여 획기적인 변곡점을 이룬 것이다.

VI. 결론

원서에서, 저자들은 사실심 판사들에게, 형사절차를 통해서 2차 피해자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 특히 사회교육학 문헌들에서 고집스럽게 주장되는, 그러나 시의성을 잃은지 오랜 연구들과 Worms 사건들에서와 같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보통은 없다고 선언한다. 특히 1996년 Busse/Volbert/Stelle, “공판에서 어린이들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한 경험에 관한 연구”(Belastungserleben von Kindern in Hauptverhandlungen)을 빌어, 장기간의 신문을 통해 2차적 외상스트레스를 준다는 것(Retraeumatisierung)은 체험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고 한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법정에서의 진술은 카타르시스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 절차의 결과와 상관없이 - 사건을 다루었던 협조자들(behandelnde Hilfsteller)에 의해서 오늘날 주로 추가적인 피해자 치료과정(Fortgang einer Opfertherapie)에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저자들의 결론에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내용을 요즘 유명세를 탄 미-투 사례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일,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는 일은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형사법의 최고의 이상임을 확인했음을 법조와 학계에 밝혀두고자 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