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달콤하고 말랑한 재판 상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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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달콤하고 말랑한 재판 상식 (2)
  • 임수희
  • 승인 2018.05.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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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후회스러운 음주운전,
약식명령으로 벌금이 350만 원이나?!

쿵! 아이쿠!
30대 초반의 홍씨, 차가 부딪히는 쿵! 소리와 함께 심장도 쿵!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 열심히 적응하며 윗사람들에게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고 힘들게 일해 온지 한 달! 드디어 첫 월급을 받고 친구들에게 한턱 쏜다고 술 한 잔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술이라면 소주 몇 병도 자신 있었던 데다가 친구들과 신나게 얘길 하다 보니 별로 취하는 느낌이 들지를 않았어요. 왠지 기분에 아직 말짱한 것 같고 대리운전비 2만 원이 슬그머니 아까워 졌지요.

그래서 도로변에 주차해 놓은 차 문을 열고, 일단 운전석에 털썩 올라탔어요. 시동도 한번 걸어 보았습니다. 부르릉~ 아 왠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한번 가 볼까? 하고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액셀을 살짝 밟아 차를 빼려는 그 순간?! 뒤에서 주행해 오던 어떤 승용차와 쿵! 하고 부딪히고야 말았던 거에요.

홍씨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 사고 내 본 적도 없었는데 음주 상태로 사고라뇨.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이쪽 차, 저쪽 차가 긁히고 찌그러지는 정도의 결과였어요. 그나마 홍씨 차량이 도로변에서 머리를 내미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상대 차량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준 덕분이었습니다.

그 운전자는 사고 수습을 하려다 홍씨한테서 술 냄새가 나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홍씨는 경찰이 들이미는 음주측정기에 훅~ 하고 불 수 밖에 없었죠. 혈중알콜농도 1.02%.

경찰이 종이컵에 따라 준 물로 입도 헹구고 또 여러 차례 다시 불게 하여 최종적으로 얻은 측정치였어요. 반박할 수도 없었죠.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치라는 말을 경찰로부터 듣자, 홍씨는 후회로 눈앞이 캄캄해 졌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홍씨는 검찰에서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으로 기소되었다는 통지를 문자메시지로 받았습니다. 한 달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벌금액수를 보고 또 다시 눈앞이 캄캄해 졌어요.

그런데 한 달 후! “○○지방법원 약식명령” 등본이 법원에서 날라 왔습니다.
“피고인을 벌금 3,500,000원(삼백오십만원)에 처한다.” 라고 쓰여 있지 뭡니까.

‘대체 이건 또 뭐지? 아니 그래서 벌금이 300만 원이라는 거야? 350만 원이라는 거야? 아무튼 이 많은 벌금을 대체 어떻게 하지?’

유감스럽게도 홍씨의 사례는 흔한 예입니다. 단 한 번도 범법을 저지른 적이 없었는데 떡 하니 음주운전으로 걸려서 벌금을 받게 되는 일 말이죠.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요.

우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절대로!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음주운전은 자신뿐 만 아니라 무고한 타인,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큰 고통에 빠트릴 수 있는 큰 범죄입니다.
 

 

홍씨의 경우, 분명히 짚고 싶은 점은, 음주상태로 핸들을 잡자 마자 경미한 사고로 경찰에 적발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이에요. 홍씨에게 운전면허취소와 벌금 350만 원은 매우 큰 불이익이지만, 만약 홍씨가 그대로 차를 끌고 도로에 올렸다가 더 큰 사고가 났다면, 중한 인명 피해라도 났다면! 정말 어쩔 뻔 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죠.

그런 끔찍한 일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면 벌금 350만 원이 결코 큰 것이 아닐 수 있어요. 홍씨의 목숨이나 신체, 또는 무고한 제3자나 그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크나 큰 피해를 예방하는 대가라고 한다면요.

그리고 도로교통법 제148조의 2에는 혈중알콜농도에 따라서 법정형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홍씨의 경우처럼 혈중알콜농도가 1.0%가 넘는 경우, 일단 벌금 30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법정형 자체가 벌금 300만 원이 최하한이에요.

즉 음주운전은 혈중알콜농도가 0.05% 이상인 경우부터 형사처벌되는데, 0.1%미만까지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법정되어 있고, 0.1% 이상부터는 300만 원 이상, 0.2% 이상부터는 500만 원 이상입니다.

3회 음주운전인 경우도 혈중알콜농도와 상관없이 500만 원 이상입니다. 최하한이 그렇다는 것이고, 동종 전과 여부, 단순 음주운전인지 또는 음주 사고를 낸 것인지 그 밖에 여러 양형 요소에 따라서 벌금이 아니라 징역형도 최고 3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벌금액이 상당하죠? 대리운전비 몇 만원 아끼려다가는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고 운전면허까지 취소될 수 있답니다. 술을 마시면 무조건 차를 두고 가거나 대리운전기사를 불러야 합니다.

그럼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하지 못하도록 거부하면 어떠냐고요? 아이고 안 돼요.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수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음주측정거부는 3회 음주운전인 경우에 준해서 벌금 50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징역형도 마찬가지로 최고 3년까지 받을 수 있고요. 같은 조항으로 호만 달리하여 형벌을 정하고 있답니다.

홍씨가 검찰로부터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으로 기소되었다는 통지를 받은 것은, 수사기관에서 처분 결과를 통지해 준 것에 불과하고, 최종적인 재판이 아닙니다.

법원에서 약식명령 등본이 날라 온 것이 법원의 재판입니다. 물론 이 역시 최종적인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약식명령이란 공판절차 없이 서면심리를 통해 간이하게 벌금, 과료, 몰수를 과하는 형사절차이기 때문에,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약식명령 고지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청구를 할 수가 있거든요.

사안에 따라서는 법원에서 약식명령으로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법원이 공판절차에 회부하여 심판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씨의 약식명령은 왜 검찰의 청구보다, 법정형 하한보다 50만 원이 더 높게 책정되어 왔을까요?

글쎄요. 양형의 조건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서 기록을 보고 사건 내용을 보아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아마도 홍씨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단순히 음주단속에 적발된 경우가 아니라, 거기에서 나아가 사고까지 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단순 음주운전과 음주운전 사고의 경우 후자가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검찰에서는 당초 그것을 모르고 단순 음주운전처럼 법정 하한인 300만 원의 약식 기소를 했던 걸까요. 그건 아니겠지요.

글쎄요. 기소권자의 구형 의중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추측해 보건대, 이 사건의 경우 홍씨가 핸들을 잡고 액셀 밟자 마자 사고가 났기 때문에 음주운전한 거리가 1m에 불과하다는 사정을 참작했을 수도 있겠어요.

어쨌든 홍씨에게는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었고 사고 직후부터 바로 후회하고 경찰의 조사에 순순히 응하고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였어요. 물론 사고 상대방에게 깨끗이 피해 회복도 해 주었고요. 이런 사정들을 모두 참작해서 기소권자가 법정 최저형으로 약식명령 청구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약식명령에 대해 정식재판청구를 하면 ‘형종상향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어 더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합니다. 같은 종류 내에서는 형이 중해 질 수도 있지만 그 경우 판결서에 양형의 이유를 적도록 규정되어 있어요.

이 규정은 원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었다가, 최근 2017. 12. 19. 개정이 되었어요. 법원에서는 이 개정 규정의 운용이 약식명령 제도의 적정화에 기여하면서도 피고인의 재판청구권 행사에 제약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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