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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차 하는 순간’과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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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차 하는 순간’과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회담
  • 신희섭
  • 승인 2018.04.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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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몇 해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단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데 필요한 책들을 신림동의 연구실에 두고 온 것이다. 다행히 강의는 오후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연구실로 향했다. 9시가 좀 안된 시각. 그 시간 연구실에 갈 때는 항상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래서 아무 망설임 없이 콩나물해장국집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늘 하는 대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주문하고 오후에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짰다. 
   
그렇게 국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연구실로 출발했다. 그리고 필요한 책들을 찾아서 학교로 향했다. 11시 쯤. 그 시간 학교에 가면 어김없이 가는 식당이 있다. 그래서 아무 망설임 없이 식당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늘 하는 대로 우거지 국을 주문하고 수업에 쓸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을 먹는데 잘 안 들어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왜 밥이 이렇게 안 들어가지.” 
   
그때까지 몰랐다. 정말. 2시간 반 동안 아침만 세 번째 먹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정신을 차린 뒤에 깨달았다. 내가 대식가라는 사실을. 
   
초단기 기억상실. 마음이 바쁘니 머리는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 위장은 왜 기억을 못한 것일까?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살 때가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 뭔가를 놓치는 경우들이 있다. 일명 ‘아차 하는 순간’들. 종이컵을 사러간 가게에서 음료수만 사들고 올 때. 중요한 것 묻는다고 전화해서 한참 다른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다시 통화해” 하고 끊을 때. 매번 막히는 길 인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다시 그 길로 들어섰을 때.     
   
이런 현상은 주의가 부족해서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일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단순하게 처리하라고 우리의 뇌는 몇 개의 단순화 기법이 있다. 기억을 저장할 때 나중에 꺼내기 쉽도록 하는 편의적 기억방법. 복잡한 사안들을 일반화하여 처리할 수 있게 만든 운용절차.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는 경로의존적인 습관. 특히 경로의존적인 습관은 마주한 어려운 상황과 만나게 된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경로의존성은 한 번 만들어진 제도가 그 뒤에 지속적으로 유지되려는 성향이다. 1948년부터 사용한 한국의 대통령제도가 대표적이다. 경로의존성은 개인, 조직,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좋게 보면 기존 제도의 유지이자 질서이고 나쁘게 보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차 하는 순간’의 경로의존성을 깨기 위해서는 주의를 집중하고 의도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기존의 행동습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경로의존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최대 관심사인 정상회담(頂上會談:summit)도 그렇다. 먼저 그 개념이 그렇다. 사전적으로 보면 정상회담은 “국가수반이나 국가정상들이 만나는 회의와 외교”로 정의된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이렇게 기억되고 사용한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상(summit)’이라는 용어는 1950년 2월 14일 처칠이 에든버러에서 연설을 하면서 처음 만들었다. 냉전이 한창인 1950년 처칠은 소련 최고위층과의 회담을 제한하면서 “정상에서의 회담(a parley at the summit)으로 인해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다.1) 언어감각이 뛰어나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던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세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했던 고어인 parley를 끌어다가 summit이라는 용어와 연결했다. 이때 summit은 산정상을 지칭했다. 그러니 원래 의미는 “산 정상에서 지도자가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산정상이 국가정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상회담』의 저자 레이놀즈는 이 시기 에베레스트 등정이 다시 시작되면서 인류 최고봉인 정상(summit)을 향한 인류의 열망과 도전의식과 경외감이 처칠로 하여금 이 ‘정상에서의 회담’이라는 용어를 선택하게 하였다고 해석한다. 실제 인류의 최고 정상정복의 꿈은 1953년 5월 처칠의 고국인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끈 4차 원정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다. 정상회담은 인류가 이제 정복할 더 이상 높은 물리적인 정상(summit)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과제일지 모르는 ‘평화’라는 관념적인 정상(summit)을 오르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가권력의 최고 위치(summit)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들이 만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만들어진 취지와 배경이 무엇이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가정상이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바라본다. 
   
우리가 개념을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개념이 가져올 결과도 편의적으로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일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수반 간의 만남이 지금까지의 교착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간절함은 확신으로 가장할 때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우리 모두가 원한다. 간절하게 바란다. 이 간절함이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그러나 간절한 만큼 한 편으로 신중해질 필요도 있다. 역사는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정치무대에서 중요했던 정상회담들은 그 결과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차원의 회담들이 있었다.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탈냉전의 계기가 된 1985년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제네바회담이 대표적이다. 1972년 닉슨과 브레즈네프의 모스크바회담은 데탕트를 만들었다. 반대 면도 있다. 1938년 뮌헨회담은 현상타파세력에 대한 유화정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인류차원에서 각인시켰다. 1961년 6월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잘못된 만남은 바로 다음 해 쿠바에서 상호 담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얄타 회의는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2차 대전이후 협력적 관리를 위한 회의였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미소간의 냉전을 규정한 회의로 자리 매김 되었다. 
   
다른 국가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과 북도 2번의 정상회담을 가졌었다. 이 회담들은 봄날의 벚꽃 같았다. 아름답게 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북한의 2차 핵 위기와 남북관계 대립으로 그 여운마저 아쉽게 되었다.   
   
2018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만든 과정들은 대단히 극적이었다. 또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현재는 준비과정보다 더 극적일 것이다. 준비 과정의 고단함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에. ‘선물’처럼 준비되고 있는 이 회담의 결과도 극적이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우리는 정상회담을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경로의존성은 대립과 갈등의 반복이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경로의존성을 탈피하려면 부단한 주의와 함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노력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아차 하는 순간’을 없애려면. 
   
자 이제 좀 더 냉철하게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상회담의 드라마를 관람해보자.

각주)-----------------

1) 데이비드 레이놀즈, 이종인 역 『정상회담』(서울: 책과함께, 2009),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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