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7)- 오늘, 시대정신,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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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7)- 오늘, 시대정신, 법치
  • 강신업
  • 승인 2018.04.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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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소위 적폐청산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과연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두껍게 쌓인 부패와 부정의 고름을 걷어내고 새 살을 돋게 할 치료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역사에서 정치보복이라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남기는 한낱 일회성 행사에 불과할 것인가.

한 시대의 정치는 시대의 산물이다. 정치가 시대의 물줄기 방향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개의 경우 한 시대의 정치현상은 상당기간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던 시대의 정신이 밖으로 분출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마치 지하로 흐르던 물이 밖으로 분출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듯 시대의 기운도 실체를 드러낼 때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시대엔 분명 그 시대만의 독특한 사상이 흐르고 있고, 한 시대 사람들은 보통 그 시대의 보편적인 정신 자세나 태도에 몸을 담그고 산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은 한 시대엔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시대정신(Zeitgeist)이 있는데, 이는 한 시대가 끝났을 때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 대한민국 국민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훗날 역사가들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두 명의 통치자가 같은 시기에 동시에 구속된 것은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를 통틀어도 매우 드물고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한 편에서는 법에 따른 당연한 심판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명백한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것을 두고는 마땅한 형벌이 내려졌다거나 오히려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적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살인자보다도 많은 형량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특히 뇌물죄라고는 하지만 본인이 받아먹은 게 1원도 없는데 어떻게 24년의 징역과 180억 원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도 정치보복을 목적으로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 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야 말로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취한 최악의 대통령이라고도 한다.

위 서로 상반되는 견해 중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모두 옳을 수도 있고 어쩌면 모두 그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지금 우리 시대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격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발등에 불이던 시절에는 산업화 지도자가, 민주주의가 오로지 희망이던 시절에는 민주화 지도자가 높은 평가를 받았고, 때문에 이들 정치지도자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소 법을 어기고 잘못을 저질러도 이를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정신은 이런 저런 이유, 그 어떤 이유로도 법을 어기거나 법을 피해가려는 지도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자는 국민의 공복이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 정치는 앞으로 박근혜, 이명박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이 권력 취득의 정당성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민주적일 경우 권력행사의 오류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면, 박근혜, 이명박 이후는 권력행사의 정당성 문제, 즉 엄격한 의미에서의 법치를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되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법치주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법에 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는 그 누구라도 그 업적과 상관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시대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법치국가로 나아가는 산고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오늘을 거울삼아 다시는 법치주의 이념을 책속에 가두지 말고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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