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6)- 꿀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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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56)- 꿀벌 민주주의
  • 강신업
  • 승인 2018.04.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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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오랫동안 인간사회의 권력투쟁은 살인, 처형, 폭동, 진압 등 유혈의 역사였다. 그러나 폭력에 의한 권력투쟁은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인간은 폭력이 아닌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방법들 중에서도 선거는 가장 중요한 권력투쟁의 방법이 되었다. 오늘날 현대 민주국가는 선거를 통해 얻은 표의 수에 따라 정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권력투쟁이 체제 내에서의 공개적인 의사교환과 집단선택이라는 평화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거는 사실 인간이 오랜 역사를 거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끝내고 집단의 영속을 위해 만들어낸 집단지성의 발현물이다. 오늘날 지구상 거의 모든 민주국가가 행하는 대의제는 사실 폭력의 폐해로부터 집단을 구해내기 위해 인간이 발명한 정치도구다. 그러나 효과적인 집단선택이 거저 주어지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의 자유로운 교환은 물론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의사를 집약해서 국정에 반영하는 조직과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고 구동되어야 한다. 대의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 구성원의 의사가 국정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선거의 한계는 바로 이 지점에 자리한다.

권력의 본질에 대해 성찰적 논고를 내놓은 사람들 중 단연 빛나는 마키아벨리(1469~1527)는 권력이 가진 역설(Paradox)에 주목하고 통치자와 민중 간의 공존이 가능한 권력관계를 논했다. 그는 군주론 20장에서 왜 군주가 정치적 기반을 민중에 두어야 하는가를 논하면서 군주에게 있어 “최선의 요새는 민중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고, “민중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어떠한 요새도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라 해도 귀족이나 군인 계급을 통해 민중을 억압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 즉 권력의 행사가 민중의 의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민중들의 대립되고 교차되는 수많은 의견이 정치에 반영될 때야 비로소 군주의 통치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군주정 체제에서보다도 공화정 체제인 현대 민주국가에서 오히려 민중의 의사에서 벗어난 정치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정치세력들은 권력의 획득을 민중의 의사에 기댈 뿐 이보다 더 중요한 권력의 행사는 많은 경우 민중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선거가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 때문에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치세력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대의제의 위기다. 요즘 국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욕구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의제의 기초가 되는 선거가 자본과 언론이라는 암초를 만나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국민이 대표를 통해 의사를 정치에 반영한다는 오래된 명제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정당민주주의가 국민의 의사의 왜곡으로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정치참여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토머스 실리는 『꿀벌의 민주주의』에서 꿀벌이 지구상에서 오래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로 민주주의와 최적화된 집단선택을 지적했다. 꿀벌들은 집터를 고를 때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수많은 의견교환을 통해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다고 한다. 실리는 꿀벌의 예를 통해 현명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조직을 구축하고 공동이익과 상호존중에 기초한 개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며 집단적 사고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인간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체제임을 역설한다.

대의제가 위기에 처하고 직접민주주의 욕구가 강하게 분출되는 요즘 꿀벌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행동양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지도자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집단 구성원들의 의사가 십분 반영되는 민주주의다. 현행 대의제의 개선과 보충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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