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개소리가 난무하는 세상, 서수자 시인의 “아주 낮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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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개소리가 난무하는 세상, 서수자 시인의 “아주 낮은 소리”
  • 오시영
  • 승인 2018.03.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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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소리는 언제나 전쟁이다. 소리는 진동을 생명으로 한다. 떨림, 공기의 파동을 통해 소리는 우리에게 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리를 귀로 듣는다. 하지만 귀로만 소리를 들어 버릇하면 소리의 참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리는 많은 것을 속이기 때문이다. 까닭에 소리는 눈으로 보아야 하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공감되어야 한다. 소리는 떨림이기에 듣는 이가 떨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소리는 진정한 참소리가 된다. 소리는 꽃잎 속에 숨어 있다가 톡 하고 향기로 터져 나오고, 달빛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팍 하고 은은한 빛으로 튕겨 나온다. 그러다 소리는 마지막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달된다. 아니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침묵으로 촉수를 펼쳐 천리를 더듬는다. 참소리의 촉수에 걸려들면 모두 자지러진다. 참소리는 그렇게 위대하다.

개소리를 늘어놓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개소리는 시끄럽고 소란하다. 세상을 더럽히고 듣는 이를 오욕시킨다. 개소리란 개가 짖는 소리라는 본연의 뜻 이외에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않은 말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개가 짖는 소리야 당연히 개소리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개 아닌 사람이 개소리를 늘어놓으면 그 사람은 개가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스스로 개소리를 늘어놓으면 그는 이미 개 같은 사람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이기에 “개 같은 놈”이라고 지칭되고 마는 것이다. 정치판에 때 아닌 개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의 김기현 울산시장 비서실 압수수색에 대해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에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입니다.”라고 비판하면서 시작된 개소동은 지금 한창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6·13지방선거에 내세울 적당한 후보자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유한국당인데, 현재 자유한국당의 현역 울산시장으로 그나마 재선 가능성이 있는 김기현 현 울산시장의 동생이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울산 지역 건설현장의 레이콘 납품 압력을 핑계 삼아 형인 울산시장의 비서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경찰이 광견병에 걸린 정권의 사냥개”가 되어 벌리는 야당탄압으로 재선을 방해할 목적의 부당한 공권력행사이므로 “미친개인 경찰을 몽둥이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경찰을 맹비난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에 의해 졸지에 광견병에 걸린 미친 사냥개가 되어 버린 경찰이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라는 팻말을 들고, 무학대사의 태조 이성계에게 말했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라는 고사를 인용하며 자유한국당과 장제원 수석대변인을 졸지에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미친개로 반사해 버렸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의 평소 논평을 볼 때마다 공당의 대변인으로서 말이 거칠어 “언젠가 말로 사단이 나겠구나” 싶더니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문제는 불난데 기름 붓는 격으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마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냥개 피하려다 미친개 만난다.”라는 인용문구를 게시함으로써 검찰과 경찰을 대하는 의식구조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에 사과할 의사가 없음을 강고히 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경찰은 더 들고 일어났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악화되자 급기야 홍 대표와 장 수석대변인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경찰 전체를 미친 사냥개”로 매도한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 같은 일부 경찰(황운하 울산경찰청장 등을 지칭)”들의 행태가 그렇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친 사냥개에서 졸지에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가 되어 버린 경찰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크게 반발하고 말았다. 홍 대표나 장 수석대변인의 눈에 경찰은 여전히 “사냥개”에 불과하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지난 9년 동안 집권하면서 경찰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했던 여당 시절이 끝났음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함은 문제 중의 문제이다. 자신들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때라면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검찰을 주물럭거리면서 지시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을(?) 아래 것들이 정권 바뀌니 겁도 없이 들이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귀 더렵혀진 세상이지만, 아주 좋은 소리도 있다. 한 번 들어보자. 서수자 시인의 “아주 낮은 소리”라는 시집에 실린 같은 제목의 시를 보기로 한다. 등단 30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한 서수자 시인의 위 시집에 실린 시들의 깊이가 대단하다. 울림이 아주 크다. 일흔이 넘은 노년의 관조가 시집 속에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에 깊이 배어 있다. 시인 등단 후 30년 동안이나 시집을 내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시인사회에서는 보통의 인내로 되는 일이 아니다. 시를 알차게 다듬고 다듬는 성찰의 참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들이 한 편 한 편 깊이 생각케 한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탯줄 끊긴 완두콩들이 떨어진다/ 독도그르 독도그르/ 아이들을 받아내는 소리// 누구의 손이 왔다 갔나/ 바람도 없는데 꽃이 피고 꽃잎 떨어지는 소리/ 박꽃에 달빛 쌓이는 소리// 안타까워라/ 움켜도 움켜도 한 줌 손을 빠져나가는 물모래소리// 먼 사람이 내게 와 새벽이 올 때까지/ 하룻밤을 조근조근 풀어내는 소리/ 아침 안개 속에 연꽃 봉오리 터지는 소리// 비 그치고 날 들자 낙수 구멍에 낙수 소리/ 이어졌다 끊어졌다/ 아무도 없는 집을 한나절 지키네// 두레상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등어 토막 슬쩍 밀어내는 소리// 쉼 없이 흘러가는 첫새벽 강/ 내 몸에 갇힌 시간이 몸 비트는 소리// 걱정마라 걱정마라/ 내 머리맡에 앉아/ 잠들 때까지 어루만져주는/ 아주 낮은 소리”(전문, 위 시집에 수록, 2018, 천년의 시작 간)

시인은 “아주 낮은 소리”라는 한 편의 작품을 통해 “소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바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듣는 신비”를 경험하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가정주부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완두콩과 플라스틱 바가지”를 통해 “생명의 절연을 통한 생명의 창조”를 경험한다. 완두콩줄기에서 분리된 완두콩은 그 자체로 보면 생명의 상실이지만, 어머니의 몸에서 탯줄의 분리를 통해 한 아기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듯 독도그르, 독도그르라는 완두콩 구르는 소리에서 완두콩의 독립, 새로운 완두콩으로서의 완전체를 발견하며 경이로워하고 있다. 아주 작은 소리에 귀 기울였기에 가능한 시인의 생명창조이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소리 없는 바람과 달빛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우리가 잡아내지 못하는 바람이 다녀간 곳에 꽃이 피고 꽃이 지며, 조용한 밤 달빛이 박꽃에 쌓인 탑의 시간에 감사해 한다. 달빛이 박꽃에 쌓여 박을 열매 맺는 경이로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그 바람에 꽃향기라는 선물을 실어 보내는 꽃의 따뜻함을 시인은 온 세포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느끼도록 유발하고 있다.

셋째 연에서 시인은 살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용히 지켜보며 안타까워한다. 움켜쥐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손바닥을 흘러내리고 마는 물모래의 한계를 그냥 지켜본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물모래를 한 움큼 쥐어보지만 모두 씻겨 내려가고 맨 손바닥만 쳐다보던 그런 경험 말이다. 하지만 서수자 시인은 물모래가 씻겨 내려간 맨 손바닥을 보며 절망하는 대신 남이 듣지 못하는 물모래 빠져나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행복해 한다. 움켜쥐려 몸부림칠수록 헛되고 헛된 것임을, 그러기에 물모래 흘려보내듯 그리 흘려보내며 있는 그대로의 맨 손바닥을, 깨끗해진 손바닥을 오히려 감사해 하라며 그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를 듣고 있다. 넷째 연에서 시인은 사랑의 소리를 노래한다. “아침 안개 속에 연꽃 봉오리 터지는 소리”를 그리워하던 이가 찾아와 새벽이 올 때까지 밤새 속삭이던 사랑을 먹어야만 피어나는 소리로 깨닫고 있다. 연꽃 봉오리 터지는 것은 온 밤을 가득 채운 사랑의 소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꽃은 사랑하는 이고, 연꽃 봉오리 터짐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하룻밤이 평생의 염원일 수도 있고 정성일 수도 있다. 그런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을 쏟아야만 비로소 연꽃 한 잎 봉오리 터지며 속내를 보여주는 완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수자 시인은 다섯째 연에서 비 그친 후 간헐적인 낙숫물 소리에서 깨어 있는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비 그친 후 마지막 남아 있는 한 방울의 낙숫물이 빈 집을 지키는 위대한 파수꾼임을 눈치 챈 시인의 신뢰는 대단하다. 빈 집, 모두가 문을 따고 들어갈 도둑질의 대상, 침략의 대상이 되어 버린 그 빈 집에도 지키는 이 있음을 세상에 경고하고 있다. 정신줄을 놓지 않은 시인의 세계는 강고하다. 모두가 비어 버렸을 것이라고, 일흔이 넘은 노년의 시인의 세계에 무어 채워진 게 있겠냐고 가벼이 여길 때에도 노시인은 스스로 한 방울의 낙숫물이 되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생애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천군만마의 적군의 돌진 앞에 홀로 선 용맹한 장수가 아니겠는가? 지키는 그 빈 집, 외로운 성을 허투루 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 시인은 여섯째 연에서 가난한 가족의 깊은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두레상은 여럿이 둘러 앉아 먹는 상이다. 가족들이 두레상에 둘러 앉아 요란하게 숟가락질을 해대면서도 차마 고등어 한 토막을 먼저 먹지 못한 채 “고등어 토막 슬쩍 밀어내는 소리”를 통해 서로 양보하는 사랑의 정경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는 다시 하루 온종일 수고하고 들어온 남편을 위해 서로 양보하는 그 곳에 어찌 고등어의 비린내가 스며들 공간이 있으며, 서로 갖겠다며 부정불의를 저지르는 세상의 탐욕이 끼어들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 한 토막의 고등어를 가족을 위해 양보하며, 슬쩍슬쩍 밀어내며 그 소리에 이미 배가 불러버린 가족들의 사랑의 충만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를 그려 보여주고 있다.

서수자 시인은 마지막 일곱째 연에서 “걱정마라 걱정마라”하는 어머니의 소리, 신의 소리를 들으며 평안히 잠이 든다. 인생을 온 몸으로 살아온 노시인의 몸이 여기저기 삐거덕거리고 못 살아본 세상, 못 걸어가 본 인생길을 걷고픈 작은 욕망들로 내재적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살라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잊혀 진 손길이 쓰다듬듯 들려오고, 세상 걱정과 욕망을 내려놓고 이제는 평안히 쉬어도 아름다운 시인의 일생을 지켜주겠다는, 완성시켜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의 소리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아주 낮은 소리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아주 위대하다. 그 소리에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있고, 감사함이 있고, 깊은 울림과 진한 떨림이 있다. 그 소리는 찾는 이만, 들을 줄 아는 이만 듣는다. 눈으로도 보이지 않고, 귀로도 들리지 않고, 오직 맑은 영혼으로만 접할 수 있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꾼들의 개소리가 난무하는 난장판에서 돼지가 꿀꿀꿀 짖어대고, 개들이 컹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무학대사의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개들의 세상은 개판일 뿐이다. 정치꾼들의 개 같은 소리에 온 국민이 귀를 씻고픈 고통에 시달리는 세상에 그래도 서수자 노시인의 “아주 낮은 소리”는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노시인의 시를 음미해보자. “플라스틱 바가지에/ 탯줄 끊긴 완두콩들이 떨어진다/ 독도그르 독도그르/ 아이들을 받아내는 소리// 누구의 손이 왔다 갔나/ 바람도 없는데 꽃이 피고 꽃잎 떨어지는 소리/ 박꽃에 달빛 쌓이는 소리// 안타까워라/ 움켜도 움켜도 한 줌 손을 빠져나가는 물모래소리// 먼 사람이 내게 와 새벽이 올 때까지/ 하룻밤을 조근조근 풀어내는 소리/ 아침 안개 속에 연꽃 봉오리 터지는 소리// 비 그치고 날 들자 낙수 구멍에 낙수 소리/ 이어졌다 끊어졌다/ 아무도 없는 집을 한나절 지키네// 두레상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등어 토막 슬쩍 밀어내는 소리// 쉼 없이 흘러가는 첫새벽 강/ 내 몸에 갇힌 시간이 몸 비트는 소리// 걱정마라 걱정마라/ 내 머리맡에 앉아/ 잠들 때까지 어루만져주는/ 아주 낮은 소리”. 어찌 좋지 아니한가? 우리 모두 한 주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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