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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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24)
  • 박준연
  • 승인 2018.03.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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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대형 로펌 생활, 고뇌와 보람에 대해

로스쿨 시절에도,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에도 학자금 대출만 아니었으면 로펌에 취직하지 않고 변호사로서 보다 하고싶었던 일을 했을 것이라는 자학을 종종 듣는다. 요컨대, 로펌에서 주니어 변호사로서 일하는 것은 높은 보수를 받는 것 이외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다.

로펌 생활에 대해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는 흔히 "워라밸"로 줄여부르는 일과 그 외의 생활 사이의 균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로펌에서 1년에 몇 시간 이상을 일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평가와 상여금 책정에서도 업무시간은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거기에 더해, 업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업무시간도 불규칙적이 되기 일쑤이다. 때로는 업무시간을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측 사정, 절차상의 이유로 미리 세워놓은 계획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일리가 있는 비판이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단지 로펌 변호사뿐만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 누구나가 경험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또다른 비판은 안건에서 주니어 로펌 변호사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것이다. 대형 로펌에서 담당하는 안건 대부분의 규모가 큰 만큼, 안건 팀 역시 대규모로 꾸려진다. 팀 내에서 주니어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제일 막내가 된다. 그러다 보니 안건 대리의 중요한 결정, 클라이언트와의 의사 소통보다는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좁은 범위의 업무처리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조직의 규모가 작아지면 안건별 담당 팀도 보다 소규모로 만들어지고, 주니어 변호사라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비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서 담당하는 안건의 종류도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파트너 변호사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 둘이서 한 안건을 담당하기도 한다. 내 경험으로도 안건의 성격, 규모에 따라 막내 변호사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달라졌다.

예전 회사 입사 동기들 중에서 내가 회사를 옮겨 도쿄로 올 무렵에 남아있는 동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회사를 옮겨, 혹은 정부나 재판소 등 공공기관으로 직장을 옮겨 변호사로서 계속 일하는 경우도 있었고, 드물지만 변호사 일을 아예 그만둔 동기들도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봐도, 로펌이라는 직장이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대형 로펌이라는 직장이 높은 보수를 받는 것 이외에 별로 좋은 점이 없는가 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안건마다 사실관계, 법적 이슈의 특수성이 있어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안건은 하나도 없지만, 특히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보면 새로운 법적 이슈와 관련된 안건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시간당 수임료가 비싼 대형 로펌에 수임하는 안건은, 다른 로펌, 변호사들이 담당하기 어려운 문제, 또 여러 관할권 지역이 얽히고 설킨 복잡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런 안건을 담당하다 보면 타성에 빠지지 않고, 일하면서 또 배워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또한, 로펌 내의 동료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다. 조직이 큰 만큼, 다양한 배경의 선배, 동료 변호사들, 또 서포트를 해주는 패러리걸, 다른 전문성을 갖춘 스태프들이 많다. 이들의 경험과 전문 지식은 대형 로펌이 클라이언트들에게 내세우는 강점이자, 팀 내부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독자들 중 로스쿨 봄학기를 마친 후 여름방학에 대형 로펌에서 일하게 되는 로스쿨 재학생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균형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대형 로펌이 모든 종류의 법적 이슈들에 대해 금방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이상적인 조직은 아니더라도,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 또 구성원 변호사들에 대한 업무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은 전문성을 갖춘 조직이다. 이 조직이 나에게 맞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직접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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