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컬링경기,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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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컬링경기, 너무나 인간적인.
  • 신희섭
  • 승인 2018.02.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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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평창올림픽이 한창이다. 1988년에 치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치르는 올림픽은 과거 올림픽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의 차이, 그간의 한국의 발전, 남북단일팀구성 등등. 이유는 많다. 또 한 가지 올림픽대회 마다 관심을 받는 종목들이 달라서도 그렇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관심을 받고 있는 종목이 있다. 여자 컬링경기이다. 스톤을 굴리고 청소 도구 같은 것(브룸)으로 죽을 힘을 다해 빙판을 닦는다. 얼핏 보면 왜 저런 고생을 사서할까 싶은 일을 하는 경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연신 소리 지르는 이 낯선 경기에.

이번 올림픽으로 많은 사람들이 컬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확실히 이번 국가대표팀 때문이다. “이 팀의 특징은?” 음... 답은 “마구 이긴다.” 도장깨기라고 불릴 정도로. 상대를 안 가리고 이긴다. '이렇게 하면 이기겠지' 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잘해서 이긴다. 일본에게 아쉽게 진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이긴다. 예선 1위로 준결승까지 단박에 오르도록 이긴다.

한국인들에게 여자 국가 대표 컬링 팀은 이번 올림픽 경기 최고의 스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비인기종목이었던 컬링이 이렇게 최고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관심을 받게 된 이유에는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약자의 드라마가 있다. 상대적 약팀인 한국 팀이 세계 강호들을 하나씩 물리쳤다는 점이다. 올림픽 경기 전 한국은 세계 랭킹이 8위였다. 출전 10개 팀 가운데 최하위에 속하는 8위인 한국 팀이 세계 랭킹 1위 캐나다, 2위 스위스, 4위 영국 등을 차례차례 ‘도장 깨기’를 한 것이다. 약자의 강자에 대한 승리는 하나의 드라마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호기심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두 번째 이유는 컬링이 팀 경기라는 것이다. 이번 대회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주장 김은정 선수는 계속해서 ‘영미’를 외쳐 댄다. 빠른 영미, 조금 늦은 영미, 다급한 영미, 목청 터지게 부르는 영미. 이 다양한 영미는 같은 팀 선수인 김영미 선수의 이름이다. 다양하게 불리는 ‘영미’는 컬링 팀 선수들 간의 스위핑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기 위한 일종의 구호이자 암호이다. 전세계 어떤 선수가 ‘영미’를 들으면서 작전을 간파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모든 선수들이 의성출신 선수들이다 보니 작전지시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나는 들었다. 경기 중에 한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내린 작전지시를. “야를 던져서 야를 맞춰서 야를 밖으로 보내라.” 지시대명사의 올바른 사용 예. 이 팀이 아닌 어떤 선수도 ‘야’의 쓰임새를 알 수가 없다. 고향친구와 언니동생으로 뭉쳐진 이들의 팀워크만이 ‘야’가 어떤 스톤인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자신들만의 지시대명사를 사용해서 만드는 이들의 팀워크는 보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야”와 “영미.” 이 또한 얼마나 인간적인가!

세 번째 이유는 컬링 경기에 변수가 많고 그 변수들을 이겨내기 위한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의 과정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한 게임은 8개의 스톤을 던지는 각 엔드가 총 10개 있고 총 2시간 30분이상이 소요된다. 선공과 후공, 상대방의 스톤을 놓는 위치나 자신의 스톤이 이동하는 속도와 강도,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선수들의 심리상태, 스위핑을 해야 하는 거리 총 2.7km와 이것을 버텨줄 체력, 이 모든 것이 변수다. 물론 모든 스포츠경기는 변수가 많다. 이번 올림픽 내내 실격으로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게 한 쇼트트랙을 보라.

그런데 개인 경기와 달리 팀 경기는 더 많은 변수들이 있다. 선수 한 사람 한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더 조바심을 내는 사람이 있고 그날 컨디션이 다를 것이며 기본적으로 실력도 다를 것이다. 경기 중간 중간 잘못 던지는 사람을 원망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많은 변수들을 이겨내려면 죽도록 연습하는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경기 선수들도 죽을 4년에 한 번 있는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여자 컬링 팀이 관심을 받는 것은 선수들 개인마다 가진 각기 다른 취향을 잘 엮어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이들의 색깔을 연결해주는 것은 고향친구로서의 우정과 오랜 시간 같이 연습하면서 만들어진 동료애 그리고 이 과정을 이끌어주는 리더십일 것이다. 김은정의 근엄하고 진지한 “영미”를 외쳐대는 리딩. 이것이 이들을 똘똘 뭉쳐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팀 경기는 어렵다. 언제든지 팀 정신은 휘발될 수 있다.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국가대표의 팀 추월 경기를 보라. 이것을 보면 컬링 ‘마늘 자매’들의 선전은 더욱 돋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엮어내는 드라마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스포츠는 정직하다. 노력하면 쉽게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포츠 경기에는 운도 따른다. 결과는 신만이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는 흥미진진한 것이다. 그런데 여럿이 같이 해야 하는 스포츠는 더 중요한 변수가 있다. “같이”한다는 정신.

같이 한다는 것. 이것만큼 인간적인 것이 있을까? 능력이 유한한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같이” 해나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고 정이 든다.

4차 산업혁명시대 도래와 AI가 인간을 대체해가는 공간이 많아지고 있다는 걱정들이 많다. 이런 환경 변화도 결국은 인간이 이겨내야 한다. 그것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살을 부비대면서. 다가오는 시대에도 우리는 우리가 나갈 방향과 속도를 정해갈 것이다. 같이 “영미”를 외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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