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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법학자 이시윤의 소송야사(訴訟野史) 12- 신군부의 법조비리 소탕의 실비사건
이시윤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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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8  17: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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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윤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前 감사원장, 헌법재판관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가 쿠데타(12・12사태)로 집권하고 전두환・노태우 중심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3권을 장악하던 때의 일이다. 이는 사회의 엘리트층이라고 할 판사・검사・변호사를 길들이는 이른바 ‘군기잡기용’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에 적용하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법률’이 있는데, 이에 따라 국가를 대리하는 국가소송수행자가 검사로 지정되지만 검사가 소송수행에 적극적 열의가 없어 국가가 피고로서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집행도 문제없고 피고 측 국가의 법정방어력도 허술하여 ‘노다지’라는 말이 돌았고, 성공보수금을 두둑이 받으며 법조계에 돈을 뿌려 물을 흐린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크게 돌았다.

미국에는 대량사고도 다중의 피해가 있는 경우는 정부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원고가 되어 제기하는 부권(父權)소송이 제도화되어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 영국석유회사(BP)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로 그 일대를 오염시킨 사건에서 그 연안 주정부들이 BP를 상대로 부권소송을 제기하여 200억불의 배상을 받아낸 사건도 있었다.

어떻든 이러한 우리나라 제도 운영의 허점을 이용한다는 것을 신군부가 알고서 국가배상사건 대리변호사를 중심으로 20명 정도의 변호사를 서빙고 보안사령부로 연행하여 물고를 내는 사건이 있었다.

변호사들이 판검사들을 직접 대접하는 대신에 판검사실에 종종 ‘실비’라는 명목으로 10만원 내외의 점심・저녁값 등 식사비를 사무실 총무에게 조용히 놓고 가면 판검사들은 이것으로 식사비 등을 해결하는 풍조가 서울과 수도권에 확산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이들을 취조하여 법조계의 고질적인 비리의 척결에 착수한다는 명분으로 나선 것이다.

보안사에 끌려간 이 변호사들이 실비제공 상황을 순순히 자백할 리 만무하므로 수사관들이 옷을 전부 벗기고 담요를 몸에 감아 묶는 ‘담요말이’를 한 끝에 2층 계단에서 발로 차서 계단에서 구르게 한 뒤 혼비백산의 상태에서 실비를 바친 판검사의 이름을 대라는 조사를 시작하였다. 누구에게 실비를 제공하였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날 것이니, 판검사 인사배치표를 제시하면서 제공받은 자와 제공 액수를 말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대충 자백한 변호사가 태반이고, 배치표에 올라 있으나 최근 퇴직한 판검사를 대는 약삭빠른 변호사도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에서는 이렇게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실비를 받은 판검사 이름, 받은 횟수와 액수를 종합하여 통계표를 만들어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각 통보하여 해당 판검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도록 하였다.

이의 통보를 대법원과 법무부에 같이 보내, 꼭 같이 인사처리하라는 통보 아닌 지시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대법원장이 이영섭 선생이었는데, 행정부의 일개 부처인 법무부와 사법부를 동일 차원에서 인사처리를 요구함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큰 모욕으로 느낀 것이다. 그가 후에 대법원장 이임의 고별사에서 이를 술회한 것은 이미 본지 7화 ‘오욕과 회한의 대법원장’에서 필자가 다룬바 있다.

이 실비 고문사건에서 가장 희생이 컸던 곳은 인천지원과 지청의 판검사였다. 이 중에 나중에 대한변협회장까지 지낸 검사도 있었다. 이 지역 실비 제공의 명수였다는 천하 모범생 D모 변호사가 실비제공내역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둔 수첩이 그대로 보안사에 압수되었기 때문이었다.(최근 서울 강서구의 재력가였던 송씨가 피살되기에 앞서 유지들에게 건넨 금전의 세목이 적힌 금전출납 장부가 압수되었듯이)

그런가 하면 희생이 없었던 곳은 영등포 지원・지청의 판검사였는데, 그곳에서도 실비제공으로 소문이 나 있던 모 변호사는 2층 계단에서 발길질을 당해 계단을 구르면서도 계속 함구하였고, 모진 뭇매를 맞으면서도 묵비권을 철저히 행사하는 의리(?)를 발휘함으로써 그 지역의 실비제공의 채증을 할 수 없게 하였다. 만일 이 분이 입을 놀렸다면 당시 영등포 지원장을 비롯하여 뒤에 유명세를 탔던 인사들이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변호사는 그 사건 직후에 크게 분노하였던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에 입당했다가 야당 집권 후 급작스럽게 고위직인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출세와 대통령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였는지 그 고위직 취임사에서 ‘이 한 몸 다 바쳐서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어떤 유행가 가락에 대입시켰다가 구설수에 올라 50일을 넘기지 못한 채 중도하차한 바 있다.

실비사건은 법조계에서 ‘신군부의 삼청교육대’ 사건으로 비유되는 극적인 사건이다. 목적은 좋았다 하여도 수단에 야만성이 있는 문제의 사건이기도 하였다. 이때에 ‘법조계의 물타기’로 사법시험 합격자를 150명에서 300명으로 급작스럽게 증원도 하였다.

신군부는 삼청교육으로 시정잡배들을 소탕하고, 실비사건으로 법조계를 정화하며, 나아가 과거의 소위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에 대하여 보안사에 감금한 상태에서 뒤에 재판으로 다툴 수 없도록 일사부재리의 기판력이 생기는 제소전화해제도까지 이용하여 그들 재산의 국가 헌납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등으로 나갔다. 말하자면 삼위일체로 군기를 잡아 나갔다. 자신들은 엄청난 부정축재를 하고 그들 형제는 왕조시대에 쓰던 ‘대군(大君)-경한대군’이라 불리워지면서 호사를 누리던 군사쿠데타 세력이었지만 나름대로 초창기에는 최소한의 국가경영의 통치철학은 있었던 것 같다. 쿠데타의 주역 선배들로부터 한 수 배운 것 같다.

최근 국가기록원이 비공개 기록문을 공개하였는데, 삼청교육대상자를 무인도에 수용하는 안도 세웠다고 한다. 신군부가 경찰서 별로 쿼터를 주어 교육대 대상자를 채우도록 하였다고 한다. 잡배들로 주어진 쿼터를 채우기가 모자라 검사에게는 잘하지만 경찰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 이른바 ‘얌체’로 지목되던 의사들로 그 쿼터를 채우는 등 잡배 아닌 사람이 고역을 치르게 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인생사에는 우연한 불행도 생길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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