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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바이킹과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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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바이킹과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④
  • 제임스리
  • 승인 2017.12.2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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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불법체류자’ (꿈과 비전 발간, 2017)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전편에 이어...

여행 셋째 날.
오늘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새벽에 눈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이 잠을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와 샤워를 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컵라면을 꺼내 먹고는 인터넷 서핑을 하였다.

기온이 영상 13도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시려 사진을 찍고 다니기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체감온도가 낮았으나,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숙소 주위를 찬찬히 걸었다.
 

▲ 관광열차 모양의 차량

‘베르겐’은 1년 중 맑은 날이 약 세달 정도 밖에 안 된다는데, 오늘이 그 중 하루로서 하늘은 맑고 푸르며 햇볕은 따스했다.

‘어제 피오르드 투어를 할 때, 오늘같이 날씨가 좋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내 떨쳐버리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곳 베르겐은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에 잡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로서 인구는 약 25만 명에 달한다. 오슬로 서쪽 49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며, 대서양 연안의 작은 만에 있는 낭만적인 항구도시이다.

현재의 수도인 오슬로가 정식으로 수도가 되기 전에 1850년까지는 베르겐이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12세기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한 상인들이 바로‘한자’이고, 그 상인들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생긴 것이 바로 ‘한자동맹’인데, 베르겐은 이 한자동맹의 주요도시로 200년 이상이나 노르웨이 서해안의무역을 지배하면서 오늘날의 활발한 무역항의 기반을 구축하였다고 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국민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는 ‘그리그’의 생가는 바닷가에 접해있었는데, 산책로를 걷다보면 그리그의 생가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 그리그는 죽은 후에도 이곳에 묻히고 싶어 하여, 사후에 소원대로 이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연륜을 머금은 육중한 대문의 교회를 지나 숙소 뒤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베르겐 전경은 알록달록한 목조건물들과 서로 어울리며 평화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 브뤼겐 역사지구를 대표하는 목조건물 모습

그 옆에는 주변국가로 운항하는 국제선 페리터미널이 있었는데, 많은 승객들이 국제선 페리를 타려고 터미널에 운집해 있었다.

이곳이 국제 항구도시라 그런지 각양각색의 선박들이 부둣가에 정박해 있어서 충분히 이 선박들을 눈요기 할 수 있었다.

다시 산에서 내려와 군대 병영을 찾았다. 담벼락을 따라 옛날에 사용하던 검은 색 포신들 몇 개가 외롭게 놓여있었다.

현지어로 항구라는 뜻인 브뤼겐 역사지역은 한자동맹을 통해 북유럽 최고의 항구로 떠오른 베르겐의 중심지역이다. 길거리를 따라 삼각형의 지붕을 가진 3층 목조건물들이 처마를 맞대고 항구를 향해 나란히 길게 늘어서 있었다.

1979년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백 년이 넘은 목조건물들이 다른 유럽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색깔로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 건물들은 몇 번의 대형화재로 소실되었지만, 망치와 톱만을 쓰던 전통기법으로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렀는데, 현재는 선물가게와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건물들 뒤쪽으로 이어진 미로 같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아직도 허름한 목조건물이 있었는데, 이곳 역시 현재는 선물가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시장은 브뤼겐 역사지구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각종 어류를 파는 생선가게, 과일가게, 기념품 가게, 노점상들이 한데 어울려 한국의 재래시장 같은 훈훈한 시장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건너편 바다 쪽을 바라보니 범선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버스 정류장에는 등교 길에 오르고 있는 천진난만한 초등학생들 십여 명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정겨운 모습도 보였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맥도날드 건물로 들어갔다. 아마도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수 많은 맥도날드 건물 중 가장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아침햇살이 유난히 따사롭게 얼굴에 와 닿았다. 2층짜리 빨간 색 시내 투어버스도 그 모양이 다른 곳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미니열차 모양의 관광차량도 눈에 띄었다.

저 멀리 고급호텔이 보였다. 마침 그 앞에서는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회원 몇 명이 ‘심해를 뚫어 원유를 발굴하는 것을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 공항로비의 벽화

오늘 오후에는 항공기로 이곳을 떠나 북유럽 마지막 방문국가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가야하기에 베르겐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바로 몸을 실었다.

베르겐 공항에 도착해서 차 한 잔에 빵 하나를 먹으며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출발시간까지는 약 2시간이나 남았다.

오슬로에서의 경우처럼, 이곳에서는 차 한 잔에 빵 한 조각만 먹어도 대략 만 오천 원에서 2만원은 기본으로 나오기 때문에, 마음대로 무엇을 먹기가 영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 일본식당 앞 진열장에 스시 팩(5조각)을 팔고 있어서 차 한 잔과 같이 주문하니 약 4만원이나 나왔다. 그러니까 달랑 스시 5조각과 좀 전에 먹은 빵 값 2만원까지 포함하니 점심식사 값만 약 6만원이나 든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였다.

노르웨이를 떠나면서 제일 아쉬웠던 점은, 노르웨이의 최고의 조각가인 ‘구스타브 비겔란’이 지은 세계최대의 야외 조각공원인 ‘비겔란드 공원’을 시간상 가보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 것이었다.

또한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겨울에 이곳을 찾아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이번에는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마음에 잔뜩 남았다.

▲ 베르겐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다음에 방문할 구실을 남겨놓아야 다시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면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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