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틸러슨 미국무부장관의 대화제의에 북한은 무조건 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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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틸러슨 미국무부장관의 대화제의에 북한은 무조건 응하라
  • 오시영
  • 승인 2017.12.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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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나이가 드니 주변에 존경할 만한 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존경의 대상을 내 연배보다 높은 분에게서 찾다 보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필자 연배의 사람들이 이제는 주변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평가받기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되기도 함을 새삼 깨닫는다. 필자도 주변에서 필자를 존경한다고 하는 이가 있을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괜히 자세를 가다듬게 되기도 한다. 예수는 고향 나사렛에서 자신이 존경받지 못했음을 한탄한 바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다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는 것, 다시 말해 오랜 기간 접촉을 통해 한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는 “국민의 존경”을 받고 사는 가치라 할 수 있다. 보수가 존경심을 잃게 되면 그냥 탐욕스러운 집단이 되고 만다.

정치사적으로 보면 보수주의라는 말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계기로 일반화되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정복고주의자들이었던 샤토브리앙 자작 프랑수아 르네 등이 1815년경 프랑스대혁명의 중심축이었던 시민들의 정치권력화를 부정하며 왕정복고를 주창하는 자신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한 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1830년대 영국 쿼털리 리뷰의 편집담당자이던 존 월슨 크로커가 토리당을 보수주의라고 불렀는데, 그 후 토리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보수당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프랑스의 봉건영주계급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보수주의는 종전의 귀족이라는 신분에 기초한, 다시 말해 자신들이 우월적 상위 계급신분자들로 당연히 하위 계급신분자들을 지배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분사회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다른 세력을 인정할 수 없고 “어찌 감히 우리에게 반항을?”이라는 가치관에 몰입되어 그러한 자들이 있으면 가차 없이 탄압하고 처단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국의 토리당 역시 로마 가톨릭교도였던 요크 공작, 즉 제임스 2세를 영국 왕위계승권자로 인정하려는 세력들을 비난하는 저속어인 토리(아일랜드어로 불법적인 가톨릭교도라는 의미이다)에서 따온 말로서, 결국 영국은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을 배척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교도인 요크 공작을 영국왕 제임스 2세로 모셔오는 몰가치적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토리라는 비속어에서 출발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두 상징, 즉 봉건귀족계급세력이 주축이었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신봉하지 않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가치조차 받아들이는 몰양심적 행위자들에 의해 보수주의가 근대적 가치체계로서의 보수주의가 정립되었다는 것은 겉으로는 아무리 번지르르한 가치를 부르짖지만 현대 민주주의에서 맞지 아니한 자체적 모순을 안고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거기에 보수라는 개념 자체가 확실히 정립되지 못했던 조선사회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율적 개화를 경험하지 못한 채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던 친일파들이 광복 후 국가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이 매판자본화되면서 경제권력까지 취득하게 되니 그들의 정경유착을 통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야합이 일상화되는, 유럽의 보수주의의 나쁜 점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한국에서 겪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내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가 장기적 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박정희 신드롬”이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민소득 3천 달러 이상이 되면 독재권력을 용납하지 않는, 다시 말해 허기질 때는 먹여만 주면 무조건 예, 예 했지만, 조금 배가 부르게 되면 “배부른 돼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가난하더라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은 “가난하더라도 인권을 존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존재 인식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뒤늦었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 가까이 되어서 “박근혜의 헛그림자현상에 의한 박정희신드롬의 자체적 붕괴현상” 경험을 통해 보수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았고, 그 동안 마치 혹세무민의 가치로 광야로 내몰리기만 했던 진보의 가치가 새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박정희신드롬에 갇혀 “우리를 가난에서 구해 준 구세주”라는 생각에 몰입되어 있는 일부 극보수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극보수를 깨우칠 비법은 우리에게 없다. 가치관의 새로운 정립은 스스로 자신이 유지해 온 가치관의 허점을 발견하고 병아리가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오듯 깨고 나오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가치관을 대신 깨부셔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이 평생 신봉해 온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수십 년 신념이 무너져 내리게 되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더 큰 지옥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자신의 가치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노후된 가치관을 붙잡고 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인간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6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북한은 1985년 12월12일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에 가입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1993년 3월12일 일방적으로 NPT 탈퇴한 후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였다. 이에 당황한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북한의 핵포기와 함께 다시 NPT 가입 및 IAEA(국제원자력기구) 가입에 합의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경수로 공급이 중단되었고, 북한은 2006년 10월9일에 1차 핵실험,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수소탄), 2016년 9월9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5차 핵실험, 2017년 9월3일 풍계리 일대에서 6차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단행하였고, 2017년 11월29일 ICBM급 미사일(화성-15형) 1발을 발사하였다. 화성-15형은 고각 발사로 총 53분 동안 최대고도 4475km, 수평비행거리 약 1000km가량을 날아갔으며, 정상 각도로 발사 시 사거리 최소 1만3000k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어 미국 워싱턴 D.C. 등 미국 본토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보수는 언제나 힘을 믿는다. 그리고 힘을 행사할 때 힘이 약한 자들은 대부분 굴복을 한다. 미국의 보수주의자, 매파는 언제나 미국의 군사적 힘을 우위에 내세우고 다른 나라와 외교를 전개한다. 그리고 여태까지 미국의 이러한 대외정책에 가장 잘 말을 잘 들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금 저항(?)을 해 보았지만 미국의 거대 압력과 국내 보수의 극심한 반발로 곧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의 최현대 역사이다. 우리가 보기에 북한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며 경제봉쇄와 외교적 제재를 수없이 받아 오면서도 자신의 독자노선을 걸어왔고, 급기야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북한은 미국에 저항하면서 국가경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국민들의 경제적 사정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했지만 그래도 독자적 경제체제와 국방체제를 갖추고 있다. 수나라 백만대군을 살수대첩을 통해 물리치고, 당나라 침공을 안시성에 물리친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그들의 핏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드디어 미국의 탈레슨 국무장관이 12월 12일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미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공동주최한 “환태평양시대의 한미 파트너십재구상토론회”에서 “북과 전제 조건 없는 만남이 가능”하다고 일방발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현실적이라고 첨언하였다. 종래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북미대화를 주창해오던 미국무부가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협상”을 시작하자고 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만나서 “날씨 얘기를 해도 좋고,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같은 날 워싱턴에서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밝혔다. 문제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 이다. 북한은 미국의 이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6차 핵실험과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로켓을 발사하였다고 판단된다. 물론 우리의 생각으로는 오히려 북한이 오래 전에 핵포기를 선언하고 한국이나 미국과 협상테이블에 앉았다면 보다 더 유리한 이익을 얻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믿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일 뿐 북한의 생각은 아니다. 북한은 우리의 이와 같은 생각을 천진하다고 하면서 만일 그 말에 응했더라면 리비아의 가다피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북한은 조금의 뜸을 들이겠지만 – 그들의 여태 형태로 보아 그냥 쉽게 덮석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 협상테이블에 나앉을 것이다. 미국무부장관 탈레슨의 말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갖는지,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나온 것인지, 실현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할 것이다. 그런 조건이 성숙될 수 있도록 문재인 정권은 외교력을 십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매파를 다독거리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본 아베 정권의 방해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 일본이야말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속으로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할 것이기에 노골적인 방해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방해까지야 하지 않겠지만, 분위기 조성에 찬 물을 끼얹는 도발을 일본이 계속 할 수도 있으므로 예의주시하면서, 문재인 정부도 탈레슨 미 국무장관의 위 제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보수는 전통을 고수하려 한다. 그런데 그 전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진보하지 않는 보수는 결국 1815년의 부르봉 왕정복고와 1830년 토리당의 변절 가치의 현재화일 분이다. 우리 보수의 가치는 남북통일, 평화로운 통일국가의 건설에 모아져야 한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통일이 아니라,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무능과 부패로부터의 단절을 보수 혁신의 첫 단추로 삼아야 한다.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장관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에 대한 국회의결에서 소극적으로나마 본회의 상정 보류를 통한 “국회 비회기 동안 검찰의 재량 구속권 행사”를 용인하려 한 것은 떳떳하지는 않지만 올바른 선택이라고 평가된다. 국회로부터 외면당한 최경환 의원에 대한 구속 영장의 집행은 열흘 후면 결정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의 핵보유와 버티기는 제3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른다는 전쟁발발의 위험성으로 우리를 옥죄어 왔다. 필자는 장사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우리나라에게 남북통일이라는 서프라이즈한 선물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고 누차 밝혀왔다. 제발, 렉스 틸러슨 미국무부장관의 “무조건 만나자.”는 제안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보수주의의 나쁜 생각만 버리면 보수는 참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기존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를 안정되게 하기 때문이다. 강자는 베풀어야 한다. 곳간을 열고, 약자를 도와 그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그래도 남는 장사가 바로 진정한 보수이다. 대한민국에 전쟁이 없어지고, 동서간, 남북간 갈등이 없어지고, 세대간 갈등이 없어지는 정의로운 가치가 아름답게 꽃피기를 소원한다.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무조건 응하라. 너희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제안 아닌가? 더 이상의 바보짓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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