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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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08)
  • 박준연
  • 승인 2017.11.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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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누군가의 덕분에

일본어의 ‘덕분에(お陰様で)’라는 표현은 우리말이나 영어의 ‘thanks to’와 다소 차이가 있다. 후자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받은 데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면, 전자는 구체적인 고마움 표시의 대상이 없어도 전반적인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데 쓰는 표현이다. 예컨대 잘 지내냐는 질문에, 덕분에 잘 지낸다, 바쁘냐는 질문에, 덕분에 일거리가 많다고 답하는 식이다. 이 차이를 막연하게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나한테 덕분에라는 말을 하면, 제가 한 것도 없는데, 하고 저항 아닌 저항(?)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일본어 표현은 생각보다 심오한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내게 어떤 행위를 해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그늘"에 있을지도 모르고, 거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번주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이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보낸 추수감사절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변 동기들은 다음 학년 여름 일할 곳도 거의 다 정하고, 명절 분위기에 들떠있는 휴일 직전, 나는 간만에 로스쿨 도서관에서 공부 장소를 옮겨 대학 중앙 도서관인 봅스트 도서관에서 기말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주변 동기들과 비교하여 취직 결정이 늦어지는 것은 혹시나 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해서가 아닌가 하는 회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도서관 창 밖의 눈부신 뉴욕의 가을 풍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황급히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회사, 그러니까 나중에 뉴욕에서 일하게 된 회사의 인사 담당 변호사 T의 전화였다. 내가 지원한 시기가 늦어진 결과 결정도 많이 늦어졌지만 서머 어소시에이트 프로그램 오퍼를 주겠다는 연락이었다. 전화를 끊고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금 더 힘내서 계속해 볼까.

그렇게 로스쿨 생활의 첫 고비라면 첫 고비를 넘기고 찾아온 또다른 시련은 졸업을 전후한 금융 위기와 불황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로스쿨 공부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여 졸업을 하고, 취직할 회사도 결정하고, 또 바 시험도 마친 상황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업계 뉴스는 불황의 여파로 로펌에서 변호사를 대규모로 해고했다는 소식, 로스쿨을 졸업한 1년차 변호사의 채용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채용을 취소한다는 소식이었다.

3년 남짓을 힘들게 마쳤다는 안도감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이번엔 무사히 회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회사에서 파산 분야 업무를 할 동기를 제외하고는 업무 시작 시기를 늦추겠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회사에서 전무후무한 1년차 변호사의 업무 시작 연기(deferral)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생활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면 일을 시작하고 바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시기였기도 했지만,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주변의 같은 상황에 처한 로스쿨 동기들도 같은 걱정이었다.

실제로 채용을 연기하기보다는 아예 채용을 취소한 회사도 많았고, 내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 취직을 알아보기에는 채용을 하는 회사 자체가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나중에 회사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들 그런 걱정과 싸웠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회사에서 발표한 업무 시작 시기 그대로 일을 시작하고 취업과 졸업 때의 걱정도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럴 때 하기 쉬운 착각은 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대단해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마침 회사에서도 추수감사절을 맞아 고맙다는 인사가 오고가는 시기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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