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91) -족보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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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91) -족보사기
  • 신종범
  • 승인 2017.11.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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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공직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사무실 직원이 종친회에서 전화가 왔다며 전화를 연결해 준다. “신종범 변호사님 맞으시죠? 저는 종친회에서 족보 관련 일을 맡고 있는 신00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제가 변호사님 보다 나이는 많은 것 같은데 항렬은 변호사님께서 저희 할아버지뻘 되시네요. 하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 종친회에서 우리 조상님들의 족보와 역사에 대하여 어린 자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동보감’을 발간하게 되었는데 변호사님께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받아 보시고 조언도 해 주시고, 종친회에 좋은 일 하신다 생각하시고 책 값으로 적당히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변호사님 같은 분이 문중을 위해 도움을 좀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네... 종친회 일 보시느라 고생하십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 볼 생각도 들지 않은 채 그렇게 전화 통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며칠 후 두꺼운 책 한 세트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바로 그 ‘대동보감’이었다. 한 세트에는 3권의 책과 함께 안내문이 있었는데 책 대금과 입금계좌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종친회 모임에 몇 번 나가 보았을 뿐 종친회에 기부를 하거나 한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종친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적혀 있는 대금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계좌로 입금하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종친회 일을 보고 계시는 분이 떠 올랐다. 안부도 전할 겸 겸사겸사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종친회에서 ‘대동보감’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느냐고 물으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종친회에서 발간한 족보는 전에 이미 구입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전화를 끊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동보감’에 동봉된 안내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종친회 사무실이냐고 물으니 얼버무린다. 나에게 온 ‘대동보감’이 우리 종친회에서 만든 것이 맞냐고 물으니 그런 것은 아니고 자기네들이 여러 성씨의 족보를 쉽게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 왜 종친회를 사칭했냐고 하니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보내드린 ‘대동보감’은 그냥 보시라고 하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그 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기를 당할 뻔한 것이다. 당시 고소를 하려고 했는데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하지 못했고, 그 일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얼마 전 종친회를 사칭해 2만여명에게 ‘대동보감’을 팔아 40여억원을 챙긴 일당이 사기 등의 피의사실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보도를 접하였다. 일당 중 일부는 구속되었다고 한다. 잊고 있었던 몇 년전의 ‘대동보감’ 사건이 떠 올랐다. 피의자들은 학교 동창회나 종친회 명부에서 피해자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보한 뒤 전화로 "(대동보감 등을) 구매해주면 문중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속여 책 3권을 20만 원에 파는 등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당한 사건과 거의 유사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 보니 이와 같이 종친회를 사칭해 족보 등 책자를 판매한 사기 사건이 2010년 등 이전에도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범죄수법도 거의 동일했다. 범죄피해자들도 주로 고위공무원, 교수, 의사, 법조인 등으로 유사했다. 약해지기는 했지만, 문중과 혈연 그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의식을 이용한 범죄가 아닌가 생각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음에도 종친회라는 말에, 변호사님 같은 분이 문중에 도움을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아 일일이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필자와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다. 어리석기 때문에 사기 피해를 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기 피해자들을 대리하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가 있다.

몇 년전 종친회가 아님을 확인한 후 바로 고소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 때 고소를 했더라면 피해를 조금은 줄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직도 책장 한 쪽 구석에 꽂혀 있는 그 때 배송된 ‘대동보감’을 보니 왠지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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