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병역을 거부한 백종건 변호사, 그의 종교적 양심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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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병역을 거부한 백종건 변호사, 그의 종교적 양심을 듣다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11.15 11:1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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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유일의 ‘법조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세계적으로 우리만 도입 안해”
“운명같은 감옥, 피할 수 있었지만 직면했다”
“헌재 위헌결정 기대, 변화 있어야 할 시점”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첫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이래로 지금까지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내린 무죄 판결은 총 53건이다.

올해 들어서만 서른여섯 번의 무죄 선고가 났다. 지난해 7건이던 것에 비하면 다섯 배가 넘는 수치다.

현재 전국 법원에는 무죄로도 유죄로도 결론나지 않은 채 계류돼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600건이 넘는다. 대법원조차 110건의 병역 거부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정부의 변화만 기다리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사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6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 1,297명의 변호사 중 964명(74.3%)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답했고, 80%에 해당하는 인원이 ‘이러한 인권 침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속 시원히 위헌 결정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는 한 청년이 있다. 병역 거부로 인해 수감된 법조인의 첫 사례, 백종건 변호사(33, 사법연수원 40기)가 바로 그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취소되었던 그의 변호사 등록은 회복되고, 이미 형기를 마치고 나왔지만 그에게 내려졌던 유죄 판결은 소급해서 무효가 될 예정에 있다.

감옥 갈 앞날에도 불구,
‘법 제도 변화’ 위해 법조인 꿈 키워

 

 

감옥에 가는 것이 필연인 인생이라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무렇게나 그 인생을 내던져 버릴 법도 한데, 그는 일찍부터 그러한 자신의 삶으로 제도 변화를 일으켜 보겠다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를 향해 “쟤는 감옥에 간다”고 수군댔고, 고시공부 할 때는 “공부해 봐야 감옥 가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 했으며, 연수원 동기들로부터도 “감옥을 가게 되면 법원이나 검찰 임용을 못 받지 않냐”는 안타까움 섞인 말을 들었다.

이 말들은 때로 그를 힘겹게 했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게 자신이 안고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길 선택한 건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한 종파인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를 신앙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병역거부를 하게 되는 그 신념이란 성서에서 그들이 믿는 예수가 ‘원수를 포함하여 모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예수를 잡으러 온 병사들로부터 예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대항하려던 그의 제자에게까지 ‘칼을 내려 놓으라’고 말했다.

예수가 죽은 후 1세기에 활동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예수의 본을 완벽히 따랐고, 어떠한 경우에도 무기 사용을 엄격히 거부했다. 1~2세기 로마 제국 하에서의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병역거부는 곧 순교를 의미했다.

Conscientious Objection, 즉 ‘양심적 거부’는 현재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의’ 거부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백 변호사가 말했다.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과 같은 반인권적인 행태도 불과 몇 세기 전까진 법이 허용하고 있었어요. 여성에게 참정권을 비롯한 여러 권리가 주어진 것은 고작 120년 전 일이죠.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옳거나 선(善)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바뀌어야 할 잘못된 법이 분명히 있고, 그 변화는 누군가의 헌신과 노력으로 인해 이루어집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병역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양심을 보호해 주지 않는 한국의 불합리한 법을 개선하고, 옳은 법제도를 우리 사회에 도입하기 위해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부가 법조인(검사)이셨지만, 단순히 그 영향만으로 법조인이 되기를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은 길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장남인 백 변호사를 비롯해 아래로 동생 둘이 있던 때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에 갔다.

그의 어머니는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삼형제를 홀로 키워야 했고, 새벽부터 나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당시 대여섯 살에 불과했던 백 변호사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놓고 나가신 작은 상에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앉아, 밥과 국을 한 숟갈씩 떠서 동생들에게 먹이던 기억이 아직까지 많이 난다고 했다.

그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같이 지내던 다른 병역거부자가 출소할 시기가 되자, 옷가지를 주려고 들르신 그의 어머니께서 그 아들의 담당 교도관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교도관에게 자신의 아이를 잘 돌봐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얘 아래 동생이 있는데, 지금 고등학생이다. 그 애도 곧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올 텐데 그때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셨다고 해요. 감옥에 아들을 맡겨야 하는 그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아마 그러셨겠죠. 남편과 자식들이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는 심경이 어떻겠습니까.”

한편 백 변호사의 주변에는 그에게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서 권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따는 방안이나, 당시 중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군 면제가 되는 점을 이용해 중학교 중퇴를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백 변호사는 그러한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의 법제도를 변화시키는 것, 그로써 다른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가 품은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저로서는 그런 방법을 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졌어요. 저의 종교적 신념에 저촉되기 때문에 병역은 거부했지만, 대체복무가 마련되면 그것을 통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았어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힘들어 하는 가족들이 생각날 때면, 나의 그 선택이 옳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어요. 감옥에서도 여러 번 고민했죠. 그래도 늘 결론은 같았어요. 이 길이 옳다고 믿어요.”

‘대체복무제 반대’를 반박하다

그가 말했다. “국제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는 ‘새롭게 떠오르는’ 인권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전세계 국가 중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나라는 극소수이고, 사실상 거의 우리나라만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어요.”

우선 백 변호사는 ‘한국이 북한과 대치 상태에 있기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의 시기가 아니다’란 주장을 반박했다.

대체복무제는 평화 시에선 논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대체복무제는 징병제를 보완하는 의미로 행해지기에, 징병제를 하지 않으면 대체복무제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와 같이 안보의 위협이 상존(常存)하고 있는 국가인 이스라엘, 대만, 아르메니아, 쿠바 등도 병역거부를 처벌하지 않고 대체복무를 부과한다. 여성이 징집 대상인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당시 제기됐던 우려들과는 달리, 이들 국가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전후 국방력 변화(혹은 약화)는 거의 목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체복무 인력이 사회 곳곳에서 궂은일과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주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인력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독일이 오랜 기간 징병제를 없애지 못했던 이유는 이 대체복무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징병제를 안 하면 대체복무제도 없애야 하는데, 그럴 경우 대체복무인력이 하던 업무를 세금 등 사회적 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 국가의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매섭게 들끓었던 부정적인 여론까지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뀐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 변호사는 한국의 대체복무제 또한 이렇게 성공하는 제도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따가운 여론도 분명 변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할 경우 모두가 대체복무에 몰려 국방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고, 여호와의 증인 종교만 교세가 확장되는 효과를 누릴 것이다’란 주장도 그는 근거가 없다며 일갈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도 3만 명 넘는 인력이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이미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여기에 해마다 병역거부를 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수인 500~600명의 숫자가 더해진다고 해서 국방력 약화를 우려해야 한다면 ‘애초에 한국의 국방력은 걱정해야 될 수준’이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병역거부 인정을 통한 여호와의 증인 교세 확장 우려도 기우라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은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우려되는 부작용들은 대체복무제도 설계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 그 구체적인 설계는?

그럼 현재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우려들을 불식시키면서 그의 말대로 성공적인 제도가 되게 만들려면 대체복무제의 구체적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말했다. “기간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일반 군복무보다 어렵게 만들어야 합니다. 단순한 병역기피자들과는 달리, 종교적 신념에 기한 병역거부자들은 기간이 얼마가 됐든, 또 내용적으로 얼마나 더 힘들든 대체복무를 선택할 것입니다.”

현재 나와 있는 대체복무제 입법안에서는 일반 군복무의 1.5배(32개월) 또는 두 배(42개월)가 되는 기간을 대체복무기간으로 하고 있다. 또 대체복무 심사기간을 두고 있는데, 백 변호사는 실효성을 더 높이기 위해 이 심사기간을 1년 이상으로 길게 두거나, 대체복무 쿼터제 도입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즉, 현재의 한해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 숫자인 500~600명 선을 그대로 쿼터로 정하자는 것이다. 그 이상의 인원이 대체복무를 지원해 적체가 생기면 그만큼 심사 기간은 더 늘어난다.

대체복무를 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결국 약 2년 정도 심사를 기다리다가 3년간 대체복무를 하는데,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 청년기의 정점에서 최소 5년 이상 기간을 송두리째 떼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회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잖아요.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요. 예전에 육군 24개월, 공군 27개월이던 때는 고작 3개월 덜 복무할 수 있고 대학교 복학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육군에 지원자가 몰리지 않았습니까? 대체복무를 위해 5년이라는 시간을 쓰는 것은 보통의 경우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닙니다.”

법안에서는 대체복무자들을 치매 노인 등 중증 장애인 병 수발, 나환자촌에서 나환자 관리, 메르스 등 전염병 사태나 지진․해일 등의 국가적 재난에 우선 투입되는 인력으로 정하고 있다. 복무의 내용적인 면에서도 일반 군복무에 비해 결코 쉽지 않은 수준으로 설계한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실제 전쟁이 났을 때 전투에 임할 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민간의 부상자나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 평상시 지진이나 전염병 같은 국가적 재난을 맞았을 때 우선적으로 나설 사람, 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성심껏 돌볼 인력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시금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지한 양심이 아니고서야 대체복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설계하면 됩니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도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를, 국가는 들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악법도 법일까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변호사가 현행법을 어기면 어떡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백종건 변호사의 변호사 등록 거부결정을 내린 대한변호사협회도 ‘(그가) 현행법을 어겼기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사상이 근저에 깔린 이런 질문과 설명이 아쉽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일제 강점기 가인 김병로 선생은 일제 조선총독부의 법률에 맞서서 독립투사들을 도왔고, 군사 정권 하에서 이병린 협회장은 협회장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해 노력하다가 계엄령을 위반해 투옥됐습니다. 만일 그들이 ‘악법도 법이다’라고 여기며 ‘불합리한 법이어도 지켜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면 그런 위대한 행적을 남길 수 없었겠죠. 저의 행동이 그런 분들과 같은 의미로 여겨지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도 그분들처럼 옳지 않다고 여기는 법을 개선하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이고, 변호사의 사명인 인권옹호와 법제도 개선에 디딤돌을 놓고 싶습니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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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932 2017-11-22 16:35:27
나대지ㅁ,,,,아니다 맘대로 해라

하자 2017-11-16 16:02:06
비전투분야 병사월급으로 10년강제대체복무 시켜라

2017-11-15 21:08:41
인정할건 인정하자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다

Csr 2017-11-15 12:21:51
기자님의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종교적 신념도 중요하고 존중받아야하겠지만
국민으로서의 국가관, 국민으로서 지니게된 권리뿐만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책임/의무이행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시대의 환경에 대한 상황인식도 필요하구요! 책임/의무 이행과 함께 종교적신념/양심에 대해 여건 개선, 보완할수있길 소망합니다.

2017-11-15 11:53:42
아셨죠. 그러니까 밑의 양성징병 청원 동의 많이 해주세요. 그러면 님들이 원하시는 대체복무제도도 수월히 논의가 가능해지니까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1573?navigation=petitions

3차 양성징병 청원 시작했습니다. 12월 10일까진데 이번엔 주변에 많이 알려주셔서 꼭 20만 넘기면 좋겠습니다. 낙태법, 조두순청원도 몇일만에 수십만 넘기는데 이것도 꼭 넘겨서 답변 받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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