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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트럼프의 자부심과 교만 사이, 진정한 힘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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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0  10: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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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힘은 강할 때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힘은 어떤 것일까? 도날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 연설을 통해 “힘의 위대함”을 강조하였다. 미국은 최고 화력의 현대형 무기들로 무장되어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였다. 한반도 주변에 세 척의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이 대기하고 있음을 은영 중 과시하며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가 진행 중에 있음과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강자의 자부심과 교만이 동시에 느껴지는 연설이었다. 중학교 시절, 삼위일체라는 영어 참고서 속표지에는 이런 명언 - 한 사람이 열 마리의 말을 끌고 물가로 갈 수 있지만, 열 사람이 한 마리의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 없다 – 라는 서양 속담이 인쇄되어 있었다. 수없이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네 삶은 어찌 보면 한 마리의 마부에게 끌려가는 말의 신세일지도 모른다. 재갈이 물리고, 마부의 채찍질과 끌림에 의해 물가로 인도되는 말 같은 존재, 그게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나약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인간은 물을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열 마리의 마부에게라도 저항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까닭에 정신에서 진 사람은 패자일 수밖에 없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잡혀 먹히지 않는다는 옛말이 이를 이름일 것이다. 용기를 내어야 할 때 용기를 내는 자가 진정한 힘 있는 자이다. 아무리 힘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들 제대로 써야 할 때 쓰지 못하면 그 힘은 오히려 흉기가 될 뿐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와 관련하여 사건을 은폐하고 가짜 사무실을 만들어 검찰의 압수수색을 무력화시킨 범죄행위에 조력해 왔던 한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부장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변호사는 국정원 직원이었고, 검사는 국정원 임시파견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급자로서 이를 지시하고 주도했던 자들은 오히려 국정원이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해 온 국가기관임을 강변하며 떳떳하다는 표정으로 언론에 내비치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극이다. 아니 차라리 희극이다. 그 불법을 저지른 상급자들이 진정 한 인간이라면 먼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불법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조직 속의 한 개체에 불과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그들은 철면피하게도 그러한 자기 속죄의 회심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만일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면 이 세상은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문명화된 인간은 목적의 정당성을 위해서 수단의 정당성도 동시에 갖출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기무사, 국군사이버사령부, 경찰 등 국가 권력기관들이 총동원되어 국가권력을 오남용하여 왔다. 민간인 사찰, 도감청, 국가예산횡령, 댓글공작을 통한 총선 및 대선 개입, 문화계 블랙리스트 차별 등등 말로 할 수 없는, 모든 범죄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범죄행위를 저질러왔다. 이를 청산하는 절차 과정에서 앞서의 두 명의 자살자가 발생하였다.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그들의 자기 책임인식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죽음 앞에 검찰의 일부 검사들은 수사자들을 향해 “너희가 그들을 죽였다!”라는 울분을 토해 냈다고 한다. 물론 술 한 잔 먹고 그러한 격분을 토해낼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울분의 토로는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다. 냉정해야 할 때 냉정해야 하고, 뜨거워야 할 때 뜨거워야 한다. 그들 가족의 입장에서야 슬픔이 크겠지만, 그들의 죽음은 자업자득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상급자들의 부당한 지시에 따랐던 것은 그들에게 힘이 부족했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용기를 내었다면 그들은 그 용기가 씨앗이 되어 힘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직업적으로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추궁하거나 변호하는 직업에 종사하여 왔다. 부하직원이 잡혀 와 상관이 시켜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탄하는 수많은 피의자들을 향해 그 자살한 검사는 “왜 용기를 내어 그러한 부당지시를 거부하고 고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범죄행위를 실행하며 가담했는가? 그를 통해 당신도 인사나 금전 등으로 이득을 취한 것이 있지 않은가?”라고 추궁했을 것이고, 변호사 역시 그들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변호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이 그러한 위치에 처하게 되자,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해 온 것에 스스로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겁도 났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당하고 그동안 법조인으로 쌓아온 모든 공든 탑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비극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냉정하게, 평상시의 평정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불법행위 지시를 과감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조직에 몸담게 되면 개체가 소멸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조직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개체의 독립성을 상실하기 쉽다. 그러기에 조직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조직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들이 자살할 용기로, 차라리 모든 사실을 밝히고 국민과 역사 앞에 속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필자는 그들의 심적 압박감과 고통의 크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심정은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비극적이다. 모스크바 삼상회담이 없었더라면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이 없었을 것이고, 남북 극단대치라는 오늘의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만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이나 이의 저지를 위한 4·19의거도 없었을 것이고, 북한의 재침 위험이라는 허위사실을 퍼뜨리며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허위 선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등장도 없었을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12·12사태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비극도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평화로웠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대로 된 과거 잘못에 대한 청산이 합법적 절차에 의해 진행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의 과거 정권 하에서의 적폐청산이 최초의 합법적,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적폐청산의 첫 단추일지도 모른다. 자칭 보수라는 이들, 보수정당이라는 이들은 이러한 적폐청산절차를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정치적 반격을 가하려 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이 제대로 민주주의 정부를 가지려면 합법적 선거를 통해 10년 정도씩 각각 세 번 정도(60년 정도)의 정권 교체가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교체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금과 같은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절차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 잘못하거나 불법을 저지르면 다음 정권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사실이 확고해질 때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때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경험칙의 일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적폐청산의 특징은 최고 책임자만을 처벌하는 정치적 결단이 아닌 직접 실행자 역할을 해온 중간간부나 하위 공무원까지 모두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여태까지의 다른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물어 고위공직자만을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꼬리자르기식 보여주기식 처벌만을 해왔을 뿐으로, 영혼 없는 실행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어 왔다. 지시받고 어쩔 수 없이 그 행위를 해온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동정론과 공직사회의 흔들림을 막아야 한다는 자기변명이 통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직접 불법에 가담한 하위직 공무원 모두를 처벌하는 저인망식 처벌을 통해 향후 모든 공무원들이 상급자의 불법지시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어 어떤 불법에 대해서도 “YES”라며 불법을 자행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무한반복의 범죄집단화현상을 단절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적폐청산절차는 아주 좋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범죄행위를 기획하거나 실행한 자 모두를 처벌하는, 그리하여 시스템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의 인식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자살한 어떤 검사의 장례식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 자리에서 술 한 잔 걸친 어느 지청장이 고함쳤다는 “너희들이 그들을 죽였다.”라는 토로는 참으로 어리석다. 지독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고함친 검사는 검사의 자격이 없다. 스스로 옷을 벗어야 마땅한 검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백한 증거에 의해 범죄혐의가 있는 자에 대해 적법절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수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를 두고 적법절차를 통해 수사를 담당해야 할 검사의 직위에 있는 자가 수사검사를 향해 살인자라고 외치는 것은 “검사의 냉정함”을 결여한 행위이다. 자기 가족일지언정 법을 위반하였다면 수사해야 하는 것이 검사라는 직업이다. 그게 검사이다. 그렇게 냉정해질 자신이 없으면, 검사를 하면 안 된다. 그러한 냉정함이 결여되었기에 댓글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방해하기 위해 검사가 앞장서서 가짜사무실을 급히 마련하고 거짓 서류들을 비치하고 압수수색 나온 검사들을 천연덕스럽게 안내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검사가 용기를 내어 이 사무실은 조작된 사무실이고, 여기에 비치된 서류 역시 허위의 서류이며, 이렇게 국정원이 범죄은폐행위를 범죄조직보다 더 치밀하게 저질렀다라고 자백했더라면, 그 검사가 진정 용기 있는 검사이고, 검사의 직분에 충실한 검사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라고 검사가 있는 것이다.

촛불은 우리에게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누구든지 옳은 생각을 갖고, 옳은 소리를 하고, 옳은 행동을 할 때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학습화시켰다. 이러한 학습효과는 다시는 그 이전의 국민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DNA를 우리 세포에 심어버렸다. 우리는 “용기의 다리” 또는 “진정한 힘의 다리”를 건너온 경험을 통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즉시 행동할 것이며, 역사의 물줄기가 잘못 꼬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바른정당에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아홉 명의 국회의원들이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였다. 말이야 문재인 정부의 신적폐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라지만, 내년에 있게 될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연장을 위한 호구지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의 모습은 왠지 초라할 뿐이다. 아무리 당당한 척 미소 짓고 있지만, 그들에게서는 비굴하고, 야비하며 천박한 정치꾼의 술수만 읽힐 뿐 위대한 시대정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승민 의원으로 상징되는 따뜻한 보수는 더 죽어야 한다. 확실하게 죽지 않았기에 보수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적폐청산에 더욱 앞장서야 하고, 보수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 실현을 위해 온 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자칭 보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와 경북의 심장부에 가서 매일 얻어터져 가면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해 대구와 경북이 얼마나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국가안보와 정의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그런데 그러한 모든 공든 탑들이 무너져 내린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다시 그 탑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피를 토하며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저렇게 아홉 명의 정치 철새꾼이 새어나가 버리는 것이다. 보수의 기치를 내세웠다면 유승민 의원으로 상징되는 바른정당은 보수의 집결지라 할 수 있는 대구와 경북의 민심을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바른정당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역사적 물꼬틀기 작업을 하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가서 계란세례를 받고,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물벼락을 맞더라도 “진정한 보수는 이런 것!”이라며 보수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힘은 용기에 있다. 용기 없는 자는 제발 지도자의 전면에 나서지 마라. 개처럼 짖지 말고 사람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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