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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북유럽의 관문, 핀란드③
제임스리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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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8  14: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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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전편에 이어...

‘암석교회’를 나와서는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건축한 ‘러시아 루터교회’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원로원 광장’은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지역으로서 ‘원로원 광장’ 북쪽 언덕 위에 광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에는 헬싱키의 아이콘인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눈이 시리도록 하얀 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곳이 바로 ‘헬싱키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1852년 러시아 지배하의 공국으로 있었을 때 건축되었으며, 건립당시에는 ‘성 니콜라스 교회’라고 불렸는데, 현재는 핀란드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으로서 핀란드 루터교회의 헬싱키 교구에 속해 있다.
 

   
▲ 헬싱키 대성당

마침 광장에는 국제 자원봉사기관이 주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나라별로 메시지가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는 수 십 개의 곰 모양의 조형물들이 광장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대성당 앞 광장의 중앙에는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 대제’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동상은 러시아 지배 때인 1894년에 세워 졌다고 한다.

핀란드를 침략한 러시아 대제 동상이 ‘동상을 철거하자’는 많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이유는,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잊지 말자’라는 취지로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 동상을 그대로 보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알렉산더 2세’가 통치시절에 핀란드인들의 숙원인 핀란드어 사용을 허용하고, 또한 오늘날의 국회에 해당되는 원로원을 핀란드 인으로 구성하도록 정치적인 배려를 하였기에, 이에 대한 핀란드 국민들의 호의도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광장의 주변은 북쪽의 ‘헬싱키 대성당’ 외에도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헬싱키 국립대학’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에는 상가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광장바닥은 수만개에 달하는 화강암으로 조성 되어있었다.

‘부정부패 투명지수 1위’라는 국가답게 ‘대통령궁’을 비롯한 정부청사 건물들이 검소하면서도 시민들이 쉽게 접근이 용이한 곳에 위치한 것을 보면서, 후진국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옹성 같은 건물에 철통경비를 서는 그러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다가왔다.

핀란드의 대통령이 서민과 더욱 친근한 소통을 위하여 ‘마켓시장’ 앞에 ‘대통령 궁’을 세운 노력이 엿보인다.

‘원로원 광장’에서 남쪽으로는 ‘헬싱키 항구’와 ‘시청사’ 사이에 ‘마켓 광장(까우빠뜨리)’이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시골장터에서 볼 수 있는 각종 과일과 야채류, 농수산물, 생활용품, 아이스크림, 커피 및 먹거리 등을 파는 노천상들로 북적거렸다.

이 ‘마켓시장’은 ‘대통령궁’과 ‘헬싱키 시청사’를 마주 하고 있고,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장이 열리며 일요일에는 폐장한다고 하는데, 마침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2시가 다되어서 그런지 파장 분위기가 살짝 느껴졌다.

나는 30대 중반의 중국여성이 훈제연어를 파는 것을 보고 연어샐러드를 사서 먹었는데, 그 중국인 주인여자가 덤으로 뜨끈한 수프를 건네는 것을 보고는 아마도 같은 동양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 같았다.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니 헬싱키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을 오가는 국제 페리인 ‘실자라인’ 한 척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 핀란드와 스웨덴을 오가는 페리(실자 라인)

시간을 체크한 후 이번 여행의 백미인 ‘수오멘린나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하였는데, ‘수오멘린나 섬’은 현지어로 ‘핀란드 요새’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이 섬을 방문한 후 빨리 공항으로 서둘러 가야 했기에, 시간을 절약한다는 의미에서 비싼 택시요금을 감수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선착장이 있는 ‘마켓플레이스’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도착하니 약 20 여명의 승객들이 선착장에 있었는데, 동양인은 나 한 명밖에 없어서 그런지, 다들 나를 쳐다보면서 눈인사를 해서 나 역시 살짝 눈웃음으로 답례를 하였다.
 

   
▲ 수오멘린나 섬 입구 전경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니 저 멀리 아담한 모습의 요새가 마음에 다가왔는데,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핀란드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섬은 스웨덴이 핀란드를 침공한 후 죄수들을 동원하여 약 6킬로미터에 달하는 화강암 성벽을 쌓았는데, 후에 러시아침공 시에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섬의 등대 겸 교회인 ‘러시아 정교회’가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화강암 성벽이 쭉 이어졌는데, 바로 이곳이 요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섬의 어디를 가든지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모습에 발길을 멈춘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정도로 이곳은 엄청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슬픈 침략의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을 읽고 나니 더욱 더 마음이 짠하였다.

결론은 바로 ‘이런 감성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매력을 가진 섬이었다.
 

   
▲ 섬 안의 건물 모습

약 5시간에 걸친 ‘수오멘린나 섬’ 탐방을 마치고, 다시 ‘헬싱키 항구’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내리자마자, 광장에 있는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약 20분을 기다려 버스에 오르니 승객들이 약 10 여명 정도 타고 있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다음 일정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버스는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까지 실제로 3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중간 중간마다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많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기내에서 음료를 주문했더니 일반 저가항공사처럼 모두 일일이 계산을 해서 돈을 받는 통에 영 이미지가 다 구겨져 버렸다.

항공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말대로 이 나라는 ‘수많은 호수와 섬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곳에서 항공기로 약 45분 거리에 있는 스톡홀름은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제주거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나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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