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정답개수형, 여전히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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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정답개수형, 여전히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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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0.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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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개수형’ 결정(2004.8.26., 2002헌마107) 바로 읽기

1. 머리말

지난 8월 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정답개수형 문제유형 채택심의’취소 청구(2002헌마107)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번 각하결정에 대해 한국고시 2004년 9월 3일자(제417호) 제3면의 [사시 “정답개수형, 문제될 것 없다”]는 제목 아래 실린 기사는 ‘정답개수형이 출제되더라도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기각결정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서 이번 각하결정의 정확한 의미와 각하결정에 이른 배경을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사건개요 및 결정내용 - 헌법재판소 인터넷사이트 [헌법재판소>주요판례>이달의 선고사건]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인용, 자세한 내용은 결정문 전문을 참고바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상경 재판관)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2004년 8월 26일(목) 법무부장관이 2001. 9. 18. 사법시험관리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정답개수형 등 새로운 문제유형을 출제하기로 하는 제44회 사법시험 제1차 시험의 출제방향 및 기준에 관한 심의․의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하여 위 심의․의결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판청구를 각하하였다.


(1)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2002. 1. 8. 제44회 사법시험 제1차시험의 응시원서를 접수하고 2002. 3. 1. 시행될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자이다. 피청구인(사법시험관리위원회위원장 법무부장관)은 사법시험 제1차시험의 문제유형이 단순하고 문제수준이 낮다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에 따라 2001. 9. 18. 사법시험관리위원회 제2차 회의를 개최하여 문제수준 향상 및 문제유형의 다양화를 추진하기로 하여 정답조합형․정답개수형 등 새로운 문제유형 10%~15% 출제하기로 하는 내용의 ‘제44회 사법시험 제1차 시험의 출제방향 및 기준’을 심의하고 의결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정답개수형 문제는 수험생간에 변별력을 가릴 수 없어 사법시험을 운에 맡기는 것이어서 청구인의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위 심의사항 중 ‘정답개수형 문제유형의 채택심의’를 취소해 달라고 2002. 2. 7.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2001. 9. 18. 제2차 회의에서 확정한 제44회 사법시험 제1차시험의 출제방향 및 기준에 관한 심의사항 중 ‘정답개수형 문제유형의 채택에 관한 심의․의결’(이하 ‘이 사건 심의․의결’이라고 한다)의 위헌 여부이다.

(2) 결정요지

가. 행정행위로서 시험출제업무를 담당하는 시험위원은 법령규정의 허용범위 내에서 어떠한 내용의 문제를 출제할 것인가, 어떤 유형의 문제를 출제할 것인가, 특정 문제유형을 어느 정도 출제할 것인가 등 시험문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입법자가 사법시험 제1차 시험의 시험방법에 대하여 출제담당시험위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논술형이나 면접이 아닌 선택형 또는 선택형과 일부 기입형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고, 그 외 시험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 즉 시험의 난이도, 문항수, 문제유형, 출제비율, 배점비율, 시험시간, 출제범위 등은 시험위원들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정답개수형 문제를 출제하기로 한 심의․의결은 장차 시험출제의 권한을 갖고 있는 시험위원들에 대한 권고사항을 채택한 것으로 법적 효력이 없는 사실상의 내부적인 준비행위에 불과하고 설사 그 내용이 공고의 형식으로 게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무부장관이 행정정보의 공개차원에서 알려준 것에 불과하거나 앞으로 시험위원들에게 그와 같이 권고될 수도 있으니 그에 대비하라는 일종의 사전안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사건 심의․의결은 행정심판이나 행정쟁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행정처분이나 헌법소원심판청구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3) 결정의 의의

이 결정은 ‘사법시험’의 출제방향 및 기준에 관한 심의․의결이 직접적으로 시험위원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였다고 할 것이다. 행정행위로서의 시험출제위원의 출제행위는 재량행위임을 밝혔다.


3.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

(1)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고 심의․의결한 것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이유 없어서 기각 된 것이 아니라 심판청구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각하되었다. 곧, 시험위원들이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더라도 수험생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사법시험위원회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고 심의․의결하였더라도 그 심의․의결은 사실상의 내부적인 준비행위에 지나지 않아서 시험위원들에게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할지 말지는 시험위원들의 재량에 맡겨져 있고, 따라서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정답개수형문제출제’ 심의․의결에도 불구하고 정답개수형문제가 반드시 출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면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되므로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고 출제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 ‘출제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각하결정을 내린 것이다.

(2) ‘시험문제출제는 시험위원들의 재량행위’라는 판단이 갖는 의미

(ᄀ) 이번 결정에서 ‘시험문제출제는 시험위원들의 재량행위’라고 판단한 것을 두고,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할지 말지는 시험위원들에게 맡겨져 있어서 시험위원들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할 수도 있고, 출제하더라도 수험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되겠다. 왜냐하면 이번 결정에서는 심판청구요건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있어서 ‘정답개수형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되는가’하는 본안심리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ᄂ) 심판청구요건과 관련하여 ‘시험문제출제는 시험위원들의 재량행위’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헌법소원심판청구요건 가운데 ‘공권력행사’와 관련해서이다. 곧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적법하려면 ‘공권력행사’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되어야 하는데, 과연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고 심의․의결한 것이 공권력행사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가 이번 심판청구에서 핵심쟁점이었는데 이 쟁점과 관련해서 ‘시험위원들의 시험출제행위는 재량행위’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ᄃ)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고 심의․의결한 것이 규범구체화행정규칙, 곧 사법시험법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에 해당하거나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면 심의․의결 자체가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게 되므로 ‘공권력 행사’가 바로 인정되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한 행정규칙이나 행정계획안에 불과하다면 예외적으로 법령에 의해 그 실시가 확실히 뒷받침될 경우에만 ‘공권력행사’에 해당하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정답개수형문제출제’ 심의․의결을 ‘사실상의 내부적인 준비행위’로 보고 있어서 심의․의결 그 자체가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진 않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공권력행사에 해당되는가 하는 문제만 남는다. 만약 (i) 시험위원들이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면,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정답개수형문제출제’라는 심의․의결이 바로 ‘정답개수형문제 출제’라는 행정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예외적으로 ‘공권력행사’에 해당하게 되지만, (ii) 시험위원들이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면,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고 심의․의결했더라도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공권력행사’에 해당하는 경우에 속하지 않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시험위원의 시험출제행위를 재량행위로 보고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은 시험위원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단순한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시험위원들은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정답개수형문제 출제’라는 심의․의결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은 예외적으로도 공권력행사에 해당하지 않게 되어 이번 심판청구에 대해 부적법 각하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4.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평가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의 대상인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는 심의․의결이 ‘공권력행사’에 해당하지 않아 심판청구가 부적법각하됨으로써 본안에 대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게 되어, [정답개수형문제 출제가 수험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가], 곧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면, 정답개수형문제의 구조가 단순히 OX(正誤)문제의 집합에 지나지 않아, 지문을 다 아는 수험생, 두 개를 모르는 수험생, 나아가 네 개를 모르는 수험생이 모두 정답을 맞힌 것으로 평가되어 점수를 얻게 되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다른 것을 합리적 이유 없이 같게’ 취급함으로써 수험생들의 평등권이 침해되는가]에 대한 본안심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만약 지문이 10개인 정답개수형문제에서 지문 하나에 10점씩을 배정한다면, 100점 아니면 0점이 있을 뿐, 10점에서 90점까지는 모두 0점이 되어 결국 10개 중 9개를 아는 사람이나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나 같은 평가를 받게 되는 정답개수형문제는 그 구조상 수험생들의 ‘아는 만큼 평가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전부(all)’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이 있을 뿐 ‘얼마만큼(something)’은 없다. 수험생들이 양단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길들이고 사행심을 부추기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all이거나 nothing이라기 보다는 something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을 다루기 때문에 all과 nothing사이에서 끊임없이 이익형량을 해야하는 법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비춰 보더라도 정답개수형문제가 수험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전에 국제법의 출제범위와 관련해서, 국제법학회에서 공표한 범위와 당시 사법시험을 관리하던 행정자치부 고시관리과에서 제시한 지침이 달라 시험위원들이 담당부서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어 수험생들과의 약속을 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에서 시험위원들의 전폭적인 재량권을 확인해 준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며, 이번 결정이 과거 고시관리담당부서의 관치행정에 따라 수험생의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졌던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시험위원들이 실질적인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엇보다 주무부서에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여 시험위원들의 실질적인 재량행사가 보장되도록 뒷받침해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5. 부적법각하결정의 이유에 대한 타당성 검토

(1) 법이론적인 측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심판청구요건인 ‘공권력행사’와 관련하여 일관되게,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 행정규칙이나 행정계획안이라도 법령에 의해 실시가 확실시 될 경우 예외적으로 ‘공권력행사’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원칙에 대한 예외의 인정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라야겠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 따를 경우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게 되는,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처럼 정답개수형문제의 출제여부는 시험위원들의 재량에 맡겨져 있더라도 일단 출제가 되면 기본권침해가 확실시되는 경우에는 기본권침해의 가능성을 시험위원의 재량에 맡길게 아니라, 기본권침해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곧, 공권력행사의 예외적 인정범위를, 실시가 ‘확실시’되는 경우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실시가능성과 기본권침해가능성을 각각 평가해보고, 실시될 경우 기본권침해가 확실시되는 경우는 실시가능성이 확실하지 않더라도 기본권침해의 확실성을 감안하여 ‘공권력행사’의 예외적인 경우로 인정함으로써, ‘기본권침해’가 ‘재량’에 맡겨져서 재량에 따라서는 기본권이 침해될 수도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제되면 기본권침해가 확실시되는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는 심의․의결이 2001년이래 2003년까지 해마다 반복되는 데도, 심의․의결에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시험출제위원들의 재량에 따라서는 출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험생들의 기본권침해가능성이 오직 시험위원들의 손(재량)에 달려 있게 만들기보다는, 기본권침해가 확실시되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재량행사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보호라는 헌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2) 현실적인 측면

헌법재판소가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사실상의 내부적인 준비행위에 불과하고 시험문제출제는 시험위원들의 재량행위’라고 하여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의 법적인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데는, (i)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주무부서인 법무부의 내부결정을 추인 해주는 형식적인 기능에 그친다는 비판(배종대, 법률저널, 제203호, 2002. 8. 13.,7쪽)이나 (ii) 2002년이래 3년 동안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지 않았다는 점 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심판청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법무부가 시험출제행위는 ‘재량행위’이고 실제 정답개수형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공권력행사’의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지 않음을 주장한 것은 수험생들의 거듭된 이의제기(법무부 인터넷사이트, [법무부>사법시험>사법시험에바란다]참조)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 관계자가 시험출제가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답개수형문제는 지문수 5개 내외에서 출제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법률저널, 제179호, 2002. 2. 5., 1쪽)과는 모순된다고 생각된다. 법무부관계자의 ‘정답개수형문제 출제유도’는 바로 시험위원들의 ‘재량권행사에 대한 제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지 않는 것이 시험위원들의 적극적인 재량권행사라기 보다는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상황에서 주무부서관계자의 ‘출제유도방침 변경’에 따른 결과라면, 헌법재판소는 2002년 이래로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지 않았다는 결과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살펴서 실제 시험위원들의 재량권이 행사되지 않았다면,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사실상의 내부적인 준비행위에 지나지 않아 ‘법적인’ 구속력은 없더라도 사법시험관리위원회 위원장인 법무부장관이 임명하는 시험위원들에게 사법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미칠 ‘사실상’의 구속력을 고려하여 ‘심의․의결’이 공권력행사의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본안심리에 들어가서 정답개수형문제의 출제가 수험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밝혔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6. 맺음말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 당시 법무부 주무부서관계자가 수험생들의 거듭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답개수형문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수험생과 같이 하지 않고 정답개수형문제출제방침을 굽히지 않은 데는 일본 사법시험에서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일본에서는 2002년 사법시험 헌법, 민법, 형법 총60문항 가운데 12문항이 정답개수형문제로 출제되어 정답개수형이 전체의 20%나 차지하였다(고시연구, 통권340호, 2002. 7., 257쪽-310쪽 참고). 일본에서 출제되고 있다고해서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도 출제방침을 고집하는 것은 맹목적 추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2003년 이후 일본사법시험에서도 정답개수형 문제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 외무고시나 법원행시 등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전히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어 수험생들의 평등권(‘아는 만큼 평가받을’ 권리)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본안심리를 통해 ‘변별력없는 정답개수형문제 출제가 수험생의 평등권(아는 만큼 평가받을 수 있는 권리)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수험생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단순히 OX(正誤)문제를 여러 개 모아서, 문제출제는 쉽지만 정답은 찾기 어려운 정답개수형문제에 의존하여 수험생들의 단순암기력을 시험하기보다는 출제자들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여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수험생들의 생각하는 능력(사고력)을 시험하는 것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사고력을 키워주게 되어 법률개방을 앞둔 우리나라 법조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시험위원들에게 시험문제출제에 있어서의 전폭적인 재량권을 확인해 줌에 따라 앞으로 혹시라도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어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되면 이는 전적으로 시험위원의 책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재량권의 행사에 따르는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된다. 법무부에서도 이번 심판청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직접성요건의 충족여부'와 관련하여 “새로운 유형의 문제로서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시험위원의 재량사항인 점을 고려하여 볼 때, 만약에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어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험위원의 출제행위’라는 고도의 재량이 인정되는 별개행위에 의하여 이뤄진 것이므로 이사건 심의․의결이 직접적으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시험위원이 고도의 재량권을 행사하여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함에 따르는 기본권침해는 이 사건 심의․의결이 아니라 시험위원의 출제행위라는 별개행위에 의해 이뤄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록 정답개수형문제출제가 수험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본안심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법무부가 답변서에서 심판청구의 ‘부적법각하’만 주장할 뿐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면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본안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헌법소원심판절차상 법무부의 부적법각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본안심리’를 하게 될 경우 따로 답변서를 제출할 기회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면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점은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정답개수형문제출제가 기본권침해를 가져오는 것이 명백하다면, 현재 법무부 문제은행에 쌓여 있는 ‘정답개수형문제’는 유형전환을 하든지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정답개수를 고르는 문제’의 지문은 그대로 둔 채로 ‘정답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라는 ‘정답모두고르기형문제’로 유형을 전환한다면 지문을 다 아는 수험생, 두 개를 모르는 수험생, 네 개를 모르는 수험생이 모두 같이 점수를 얻는 경우는 피할 수 있어서 최소한 수험생들의 평등권은 침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OX(正誤)문제의 집합을 통해 수험생들의 단순암기력을 시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험생들의 사고력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정답개수형문제는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사법시험관리위원회에서는 1차시험 출제방향 및 기준과 관련하여 더이상 ‘정답개수형문제를 출제하라’는 심의․의결을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이 글을 통해 이번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이 ‘정답개수형문제가 출제되어도 수험생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기각’ 결정으로 잘못 인식된 데서 비롯된, ‘정답개수형, 문제될 것 없다’는 오해가 바로 잡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헌법소원심판청구인 장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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